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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킴 Nov 08. 2022

고독한 삶 적응기

귀국 후 1인가구, 프리랜서로서의 삶에 익숙해지기까지

 올해 큰 변화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프리랜서를 시작했고, 서울로 거처를 옮겨 혼자 살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에 집에서 일하는 건 익숙했다. 물리적으로 옆에는 없었지만 가상으로 늘 대화를 나누던 동료들은 더 이상 없었다. 집에는 더 이상 함께 사는 하우스 메이트가 없었다. 혼자 조그만 방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고 있자니 빈 공간만큼의 적막감이 자꾸 나를 집어삼켰다. 내 속에서 외로움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외로워서 주 5회씩 약속을 잡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났을 당시엔 강아지가 되어 꼬리를 흔들며 기뻐했다. 하지만 혼자 있는 날이 이틀 이상이 되면 다시 어깨가 쳐지고 우울함에 빠져버리곤 했다. 고독함을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해줄 누군가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루하루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까지 약 4개월 정도 걸렸다. 오랜 몸부림 끝에 느낌표가 떠오른 순간이 있었다. '아! 나는 지금 황금기인데 이 거대한 자유에 바보같이 쫄아 있었구나!' 부모님 잘 살아계시지, 싱글이지, 아이도 없지... 뭐 하나 걱정할 관계가 없었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이걸 ‘외로움’으로 받아들이고 실컷 우울해했을까. 관점이 순식간에 휘리릭 바뀌었다.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며 다짐했다. 이제 고독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마음은 순식간에 평온해졌다. 오히려 환희의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고독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작업실을 구한 것이었다. 바깥 공기를 마시며 자전거를 타고 작업실에 가면 작업실 동료들이 나를 맞이한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 자기만의 작업을 하면서 시시콜콜한 농담부터 영감까지 주고받는다. 고정적인 장소에서,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게 크나큰 안정감을 주었다. 


 약속을 잡는 대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특히 에리히 프롬의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통해 고독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프롬은 종교 개혁과 산업 혁명 이후 인간이 개인화되면서 온전한 자유가 주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무한하게 주어진 자유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내가 느낀 불안이 사회 구조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우울해질 때면 나만의 비공개 블로그에 내 감정을 탈탈 쏟아냈다.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날 것 그대로 타이핑을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시간 날 때면 아침, 저녁으로 10분 명상을 하기도 한다. 눈을 감고 깊이 호흡하며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누그러졌다.


 집안에 들인 녹색 식구들 또한 따뜻한 힘이 되었다. 처음으로 대형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창가 앞에 서있는 떡갈고무나무의 올곧은 줄기와 널찍한 녹색잎을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식물 식구는 조금씩 늘어났다. 초에, 쁘띠, 동글이, 행복이에게 물을 주며 덕담을 건넸다. 그들을 세심하게 챙길수록 내 안에 사랑이 솟아났다. 아담한 공간에 나를 포함해 네 개의 생명이 함께 숨을 쉬니까 묘하게 차분해졌다. 


 더불어 몸을 움직인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주 2회 헬스장에 가고, 이번 달엔 재즈 댄스까지 배우고 있다. 특히 헬스장에서 2시간 운동을 마치면 해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해진다. 작년에 비해 살이 많이 빠졌고 회춘한 느낌마저 든다. 자존감이 스윽 올라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을 하는 가운데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을 추가하니 정신 건강까지 한결 좋아졌다. 


 새로운 삶이 더 이상 외롭지 않다. 혼자만의 시간이 더 좋아졌다. 요즘 '받아들인다'는 말이 유행처럼 가볍게 떠돌고 있지만,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긴 여정이 필요했다. 앞으로 고독한 삶에 순풍만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우울할 때 기분을 풀어낼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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