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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Apr 15. 2024

처연하지만 의연하게

4월 14일

꿈이라는 단어가 어느새부턴가 무게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꿈은 언제나 하늘에 띄우는 풍선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안간 나를 짓누르는 무게추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꿈을 운운하며, 하고 싶은 일을 운운하며 나를 쓰는 글의 책임을 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바쁜 일상을 핑계로 별다른 것도,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하루의 빈도가 늘고 있다. 나를 쓰는 글의 온도는 차가워졌다. 냉소를 품은 문장들의 고드름처럼 뾰족해진 끝은 항상 내 마음을 향한다. 그게 나를 참 아프게 한다.


요즘에는 주변 사람들은 만나면 철없이 내 고민들을 늘어놓는다. 줄곧 나보다 몇 발자국 앞선 걸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떻게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냐고. 지금의 당신이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고민이 따랐고, 통증을 겪었으며, 실패를 딛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냐고. 다소 개인적이고, 마음속 쉽게 꺼내지 못할 대답일지언정, 나는 염치를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 정도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몰라서, 그 막연함이 가져다주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에 파묻히는 게 너무 싫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둘러싸는 모든 관계마다, ‘당신’을 질문했다. 어떻게 당신이 되었느냐고.


지금껏 별생각 없이, 단어 깊은 곳에 서식하는 조밀하고 세심한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할 겨를 없이. 어렴풋이라기보다는 아득함에 치우 친 막연함을 따라서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는 나의 오늘, 대체로 어제, 아마 내일이 두렵다고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글을 쓰려고 펜을 들거나 자판을 두드려도 좀체 문장에서 문장으로, 단어에서 단어로, 걸음에서 걸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들이 다반사가 되었다. 아득한 마음에 줄을 그어내듯 써가는 문장일지라도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 내가 살아낸 하루를 오롯하게 기억하겠다는 다짐도 이제는 점차 희석되어 가는 듯하다. 좀처럼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해도, 부득불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아니, 이제 알았다. 나는 막연함을 걷고 있구나.


나는 나를 정의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고,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정의하거나 다짐한 삶이 점차 내가 처해있는 환경과의 괴리를 만들고,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수록 나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막연함을 걸어가는 사사로운 마음속에는 삶을 해치는 온갖 아픔이 염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되고자 할수록, 이제는 그 의미마저 상실해 버린 나를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처연하게 지키려 할수록 불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오늘은 꿈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별 다른 고민 없이 에디터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마음이 참 이상하게도, 가장 취약하고 병약한, 내가 될 수 없다는 슬픔 이면에는 간직한 꿈을 어떻게든 이뤄내겠다는 의연함이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내가 한 말에 언제까지나 책임을 쉽게 유기해 버리는 사람인지라 이러한 다짐조차 나를 부정하는 궤변이 될 수 있다 한들, 마음속 부풀어가는 무언가를 쉽게 떼어내거나, 등한시할 만큼의 용기조차도 없는 나는 다양한 마음의 소리 중 가장 애처롭고, 가엾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거다. 나를 연민하다가도, 가혹하게 나를 다그치는 의연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꿈이 있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좋아하는 일을 따라 삶을 살겠다고 글에 적기도, 당장의 엉킨 숨을 고르기도 벅찬 요즘이어서 이런 식의 글을 쓰는 것이 과연 나한테 무슨 유익이 있겠냐는 생각을 곧 잘한다. 그러면서도 난 글쓰기를 끊어낼 용기조차도 없는 사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당장은 아득한 길 앞 손에 닿는 무언가를 굳게 붙잡고 방향 없이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어느 곳도 응시하지 못하며 손이 닿는 감촉에만 의지하여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것뿐이다. 참 궁상맞게, 주책맞게, 누구 하나라도 붙잡고 힘들다고 말하는 요즘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는 섣불리 잘 지낸다고 대답하기가 어려운 요즘이다. 별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나도 그저 의연하게, 내가 마음에 품은 가엾은 목소리처럼 처연하지만 의연하게 내가 지나치는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잔뜩 불어난 꿈의 무게를 이고 매일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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