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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May 22. 2024

당신에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가 될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만, 조심스레 안부를 묻겠습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아무래도 잘 지내는 척을 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아닌 나로 점철된 '척'을 하다가 결국에는 의미 없는 일이구나 마음을 다잡고 잠시 멈춰 섰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 물어보신다면, 저는 여전히 커피를 팔고, 종종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종종 불안하고 외롭다가, 모쪼록 웃음 지었습니다. 애써 '척'을 하다 멈춰 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제는 '척'을 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사랑받고 사랑하며, 위로하고 위로받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대상이 누가 되었든, 눈이 마주치면 웃어 보이겠다며 다짐했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단지 어딘가에 저의 단상, 상념, 복잡한 마음가지들을 모조리 늘어놓으면, 그 어딘가에서 나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을까요? 그렇게 게을리 글을 쓰다, 부단히 글을 쓰다, 다시 게을리 글을 쓰기를 반복하며 어쨌거나 나의 하루를 기록하였습니다. 써온 글들이 내 키를 훌쩍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나를 속여서라도 좋은 글이면 상관없다'는 양으로 글을 썼던 걸까요? 사실 제 글에 제가 속아 넘어간 것에 가깝겠군요. 그때부터 제 글에는 제가 사라졌습니다. 욕망과 자의식으로 점철된 못난 글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겠는데, 좀체 마음이 서지를 않더군요. 사실 이렇게 쓰는 글도 퍽 별로입니다만, 마무리를 지어야 마음이라도 후련하지 않을까 갈무리합니다.


한편으로는 아쉽습니다. 어쨌거나 이건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며 부단히 적었습니다. 쓰다 보니 묻어난 자신감으로 어떤 때는 제가 황새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자신감은 오래지 않아 스스로가 부끄러워 황급히 씻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제가 뱁새임을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여하튼, 언젠가 제가 잘 지낸다 말할 수 있을 때 편지드리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어색하게 주고받는 인사가 재밌습니다. 시시콜콜 나누는 대화는 요즘 계절을 닮았습니다. 이제는 옷을 팔지 않지만, 커피만큼은 열심히 팔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크게 불안하거나 조급하지도 않습니다. 글쓰기를 멈춘다고 속상하거나 아쉬운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입니다. 안으로 굽는 글이 아닌 밖으로 향하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다른 이들의 마음으로 향하는 글을 쓰고픈 마음입니다. 어쩌면 이야기를 팔아먹고 살고픈 마음이지만, 지금으로서는 흘러가는 대로 마주하는 오늘에 망설이지 않고픈 마음입니다.


다소 두서가 없습니다. 이렇다 할 경황도 없었네요. 모쪼록 저는 잘 지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만큼, 가벼이 끝내겠습니다.


언제까지나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박시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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