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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테의 꽃 Apr 24. 2023

그 어떤 광풍이 몰아쳐도

Symphony No.6 in F, Op.68「Pastoral 전원」

작년 봄 즈음이었나..

점심 무렵 학교 연습실 통로에 있는 창문을 열어 놓고 잠시 밖을 내다보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에 기분이 한결 산뜻해졌다. 바람에 실려 있는 것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풀냄새였다. 할아버지 산소에 가는 길이나 오래전 할머니의 옛 시골집에서 맡았음직한 냄새.. 아니면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을 때 그 빗소리에 섞여있던 냄새였을까? 또는 사방이 칠흑 같이 어두워 하늘에 박힌 별들이 더욱 선명해 보이던 여름밤, 평상 위에 모여 앉아 옹기종기 수박을 갈라먹던 그 밤의 바람에 실려 있던 풀냄새였나? 문득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조·종례 시간마다 암송하게 했던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기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의「풀」은 시인이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두기 20일 전에 쓴 유작이다. 여고시절 완고한 담임선생님의 반강제적인 훈육에 의해 기계처럼 암송했던 시 한 편을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기억을 더듬거리며 겨우 되새겨 본다. 이 시는 '풀'과 '바람'이라는 생명체를 통해 민중의 건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그린 작품이라는 교과서적인 해석부터 여러 다층적인 논란이 있지만, 나는 엉뚱하게도 이 시를 되새기며 작곡가 베토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어떤 광풍이 몰아쳐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 자신의 악상을 한뜸 한뜸 오선지에 채워나갔을 악성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김수영의「풀」을 '저항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실로 베토벤의 음악에는 곳곳마다 저항과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시 빈에서 유행하던 고전주의 형식을 탈피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창출해 낸 것을 비롯해서 스무 살 무렵부터 발생한 귓병으로 죽음을 심각하게 고민했을 만큼 절망했지만, 청각 장애라는 치명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합창교향곡>이라는 대곡을 인류에게 남겨준 것도 그렇다. 불운한 운명에 맞서 그토록 정면으로 저항하고 온몸으로 항거했던 작곡가가 또 있을까? 반면, 김수영 시인은 4.19 혁명 시기 근대적 시민의식에 일찍 눈을 뜬 사람으로 남다른 정직성으로 자신을 날카롭게 직시하던 시인이었다. 나 역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버린 비운의 시인과 수백 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 작곡가로 살다 간 작곡가에 대해 온전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자유와 저항의 시인'이라 묘사되는 김수영 시인의 정신과 베토벤의 음악에는 분명 상통하는 면이 있다. 시와 음악, 그 재료는 다르지만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cmy-daxIZk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삶과 음악은 1800년경의 격동하는 시대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계몽주의의 이상을 알고 있었고,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흡수했으며, 프랑스혁명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았고, 자신이 이상화했던 나폴레옹에게 실망한 후 왕정복고라는 정치적 억압 속에서 말년을 보냈다. 청년 시절 유망한 피아노 비르투오소이자 작곡가였던 그였지만 청각 상실 때문에 연주 활동을 그만두어야만 했고, 그 후 오직 작곡으로만 살아간 최초의 음악가가 되었다. 베토벤이 남긴 9개의 교향곡 중 여섯 번째인 <Symphony No.6 in F Major, Op.68>은 'Pastoral(전원)'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표제음악(Program Music)으로 각 악장마다 시골 생활의 정경을 나타내는 제목을 갖고 있다. 베토벤은 이 작품에서도 여러 가지 파격적인 작곡 기법을 선보였는데 그는 당시 교향곡의 전통적인 악장 구성인 4악장 체제를 벗어나 5악장으로 작곡하였으며, '전원'이라는 표제처럼 그가 사랑하던 자연을 다양하게 그려냈다.




베토벤은 1798년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고, 1818년에는 거의 들을 수 없게 되었다. 1802년 10월 하일리겐슈타트 마을의 여름 숙소를 떠나기 직전, 베토벤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오늘날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 불리는 것으로, 자신이 죽은 후에 동생이 읽어보도록 써 놓은 편지다. 하지만 유서를 썼다고 해서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당시 그의 고통과 자괴감이 얼마나 컸는지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통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6년 동안 나는 절망적인 고통을 겪었다. 몰지각한 의사들 때문에 더 악화되었고,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해마다 좌절되었으며, 결국 이 병이 낫지 않으리라는 사실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구나(이 병을 치유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든지, 아니면 치유가 거의 불가능할 거야). 원래 불같고 활발한 기질을 타고난 데다 사교계의 기분 전환 거리에도 쉽게 이끌리는 내가 이제는 나 자신 속으로 움츠러들어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때로 이 모든 것을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아아,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중의 슬픔은 정말 내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더 크게 말씀해 주세요. 저는 귀가 먹었으니까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정확해야만 하는 이 한 가지 감각의 결함을 내가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느냐. 한때는 나도 그 감각을 최고 수준으로 갖고 있었는데. 이 직업에서 그 정도로 완벽한 감각의 소유자는 일찍이 거의 없을 정도였는데. 아아, 그럴 수는 없다. 그러니 내가 너희들과 즐겁게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물러나야 하는 것을 보더라도 나를 용서해라. 나의 불행은 이중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오해받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동료들과 함께 있으면 편안해질 수가 없다. 세련된 대화나 생각의 교환도 불가능하니까. 나는 거의 외따로 살아야만 해. 마치 사라진 사람처럼 말이다. 꼭 필요한 사항 외에는 사회적인 교류도 할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접근하면 불같은 공포감이 나를 사로잡고, 내 비참한 상태가 노출될까 봐 두렵다. 시골에서 지낸 지난 여섯 달 동안에도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 현명한 의사는 청력을 최대한 보호하라고 지시했는데, 지금의 내 마음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거야. 가끔은 누군가를 만나고자 하는 욕구에 굴복해서 내가 그 지시를 거스르곤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곁에 있는 누군가는 멀리서 들리는 피리 소리를 듣는데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누군가는 목동의 노랫소리를 듣는데 나는 그것도 듣지 못하니, 얼마나 굴욕적인 일이냐. 그런 일들로 인해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절망에 빠져 들었다. 이런 일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아마 나는 삶을 끝장내버리고 말았을 거야. 나를 다시 삶으로 불러온 것은 오직 나의 예술뿐이었다. 아아, 나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불러내기 전에 이 세계를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




오래전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다 보면 '내가 정말 교사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그 어려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만 생겨났다. 원래 교직에는 뜻이 없던 내가 어쩌다 뒤늦게 음악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땐 자신도 없었고 인생에 답조차 없어 보였다. 하지만 뭘 하든 음악과 함께하고 싶어서 선택한 꿈이었고, 스스로 좋아서 도전한 공부였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도 너무 힘들 때는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을 자주 찾아들었다. 천상계 멜로디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환희의 송가' 선율에 귀를 내맡기다 보면 마음이 차분히 안정되면서 합창으로 이어지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이 작품이 청각을 거의 상실한 이후 완성되었다는 데 매번 엄청난 감동이 밀려왔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나는 그래도 건강하잖아'라고 다독이면서 말이다. 그때 이 음악을 들으면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는데 이 작품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말로도 부족할 만큼 베토벤의 정신과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대작이다.


친애하는 베토벤 선생님께..
많은 좌절과 고독 속에 생을 사셨지만, 당신이 남긴 음악으로 인해
이 지구별 어딘가에서 절망과 상처로 울부짖고 신음하는 많은 이들이
살아갈 새 희망과 용기와 꿈을 얻습니다. 그것만큼은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에서 늘 평안히 안식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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