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클래식 페스티벌 「BBC Proms」를 보고..
명색이 음악교사라고 해외에 나갈 때면 그 도시에 있는 대표적인 공연장을 검색해서 한두 편 정도 클래식 연주회를 보는 게 커다란 낙이자 습관이 되었다. 이번에도 생애 처음 영국을 방문하면서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를 필수 코스로 넣었다. 미리 예매해 둔 오페라《피가로의 결혼》을 관람하면서 코벤트 가든 Covent Garden의 수준 높은 오페라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우연히 현지에 사는 한국분과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로열 알버트홀 Royal Albert Hall'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1871년 개관한 역사 깊은 공연장으로 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의 남편 알버트 공에게 헌사하기 위해 지어진 곳인데 여행을 준비하면서 왜 눈여겨 보지 못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날 숙소로 돌아와 바로 '로열 알버트홀' 웹사이트에 접속했더니 마침 잔여 좌석이 있는 공연이 하나 있었다. 그것도 자그마치 베토벤의 교향곡《합창》이라니..
'로열 알버트홀'은 런던의 청담동이라 불리는 사우스 켄싱턴 South Kensington 지역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돔 형태의 외관도 특이하지만 묵직한 외관과는 달리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인테리어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공연장을 찾은 런던 시민들이 공연 시간을 기다리면서 끼리끼리 담소를 나누는 공간은 펍과 카페의 요소를 둘 다 갖추고 있는 자연친화적이면서도 고급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클래식 공연장에 있는 카페는 막연히 좀 묵직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온 나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한 균열이었다. 무엇보다 이날 영국 최대의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인 <더 프롬즈(BBC 프롬즈)>를 관람한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클래식'에 대한 나의 편견과 고정관념 깨부수기였다.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 콜로세움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는 '로열 알버트홀'은 내부에 있는 복도도 원형의 형태로 이어져 있었다. 시간도 넉넉하겠다 공연 보러 온 사람들 구경도 할겸 원형 복도의 출발점에서 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수많은 출입구들을 지나쳤다. 괜히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내 자리는 어디쯤일지 설렘밤 호기심반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는 게 어렵기도 했다. '로열 알버트홀' 웹사이트에서 내 이메일로 날려준 E-티켓을 휴대폰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내가 예매한 좌석이 뜻하는 '아레나 Arena'가 뭘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사실 이날 연주회는 영국의 대표 방송사인 BBC가 주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이자, 매해 7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열리는 영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클래식 음악 축제인 '더 프롬스 The Proms'였다. 물론 나는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도 그걸 모르고 그냥 평범한 연주회인 줄로만 알고 갔으니 전석 매진으로 티켓이 없는 경우도 많다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 1895년에 시작되어 자그마치 128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더 프롬스 The Proms'는 정통 클래식 연주회의 틀에서 벗어나 관객들이 자유롭게 바닥에 앉거나 서서 공연을 관람하는 '프롬나드 Promenade'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프롬나드 Promenade'라는 말 자체가 '산보', '산책'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관객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음악을 감상하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아레나 Arena'라는 글자와 함께 화살표 표시가 되어있는 곳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니 온 천지가 붉은 조명으로 물들어 있는 거대한 홀이 등장했다. 그곳 맨 꼭대기 '갤러리 Gallery' 스탠딩석까지 가득 메우고 있던 관객들.. 그것만으로도 내겐 이미 커다란 감동이었다. 게다가 내 자리는 따로 정해진 좌석이 없었다. 그저 1층 무대 앞 공간에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자유롭게 앉거나 서서 연주를 감상하면 되었다. 객석도 없고 단차도 없는 공간이었으므로 키가 큰 외국 남성들 사이에 있으려니 무대가 잘 안 보이는 흠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로열 알버트홀의 웅장한 스케일과 아름다움에 반한지라 그런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끼리끼리 모이거나 둘러 앉은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공연을 관람했다. 여행 내내 줄곧 걷기만 해서 다리가 좀 아팠던 나는 바닥에 그냥 주저 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근데 그것 또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로열 알버트홀'에서 베토벤의《합창》과 함께 했던 시간은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클래식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작지 않은 균열을 가져왔다. 엄숙함을 무대와 연주자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고, 잡소음이 없는 고요함만이 클래식 공연장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혜택이자 권리라고 여겼다. 우아하고 세련된 드레스 코드로 로비에 등장하는 관객들을 볼 때면 근사하고 멋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모든 게 고상한 콘서트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더 프롬스 The Proms'에서는 공연 중 옆사람과 좀 속닥거리더라도 맨 바닥에 앉아 공연을 보거나 서서 관람해도 아무도 내게 눈치를 주거나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정장이 아닌 편안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가도 그저 흥겹게 베토벤의《합창》을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 곳..
어떤 기준에서 옳은 답은 어떤 기준에서는 틀릴 수 있다. 어떤 문화에서 배척되는 답은 다른 관점에서는 수용될 수도 있다. 결국 다 바라보기 나름 아니겠는가? 오랜 약소국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에 방어하는 본능적인 유전자가 조상 대대로 되물림 된 데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입시 위주의 획일적 교육이 만연하여 편견과 고정관념의 틀에서 유난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자기만의 기준이 되는 정형의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못된 습성이 있다. 거기서라도 끝나면 다행일 텐데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옳다', '그르다' 매도하는 것은 가히 폭력적이다. 비혼이나 독신을 결심한 사람을 면전에 놔두고 '사람이 결혼이라는 것도 해봐야 사랑도 줄 수 있고 사랑하는 법도 알아가면서 살 수 있다'라고 말하는 건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 언어와 정서 폭력의 위기에 있는 아슬아슬함이다. 관계 속에서 무엇 때문에 그런 긴장감을 유도하면서까지 자신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주입하려는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랑을 줄 수 있고 사랑하는 법을 알아갈 수 있는 대상이 이 세상에 오직 사람뿐인가? 때로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아름답게 사랑할 수도 있는 거고, 그 과정에서 정말 특별하고도 따듯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할 수도 있는 거고, 종교에 귀의한 성직자들은 신과의 특별한 교감과 믿음을 통해 초월적인 사랑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객석도 없는 맨 바닥에 자유롭게 앉거나 서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콘서트를 관람하는 프롬나드 형태의 '더 프롬스 The Proms'가 가능했던 것도 어쩌면 '클래식 음악회는 귀족들이 즐기던 전통에 맞게 그에 적절한 드레스 코드를 갖추고 가지런히 정렬된 객석에 미리 도착해서 잡담과 수다를 자제하고 최대한 우아하고 고상한 모드로 감상해야 하는 거'라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항한 어느 누군가의 용기와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