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안락사)를 다룬 책「IN LOVE 사랑을 담아」를 읽고..
지난번에 도서관에 갔다가 서가에서 우연히 책 표지와 제목이 예뻐서 눈에 들어왔던 책..
하필 그 타이밍에, 그 장소에서 내게 울림을 주는 어떤 책이나 음악을 만나는 것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인연(因緣)'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스치듯 지나치던 모퉁이에서 놓치지 않고 이 책을 발견한 내 눈알들 기특하고 칭찬해^^ 책은 바로 대출해서 속독으로 한 번 읽고 소장용으로 구입 후 밑줄을 그어가며 한 번 더 읽었다. 얼핏 보고 부부 중 한 사람에게 닥친 시한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혹시 스위스에 있는 '디그니타스'와 '페가소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스스로 세상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작가의 남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스위스 취리히 외곽에 있는 비영리기관이자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자살이 가능한 '디그니타스'에 지원서(무슨 입학시험도 아니고)를 제출하고 어렵게 승인을 받은 후 부부가 함께 스위스로 향하는 전 과정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고, 고령화가 가져올 여러가지 문제나 대책들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숙제로 자리 잡았다. 개인적으로 자살과 안락사는 명백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고령화의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도 안락사를 법으로 인정하는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건강하셨던 우리 이모부 역시 몇 년 전 알츠하이머병으로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이미 상수를 넘기시고 요양원에서 휠체어에 의지하거나 누워만 계신다. 게다가 상태가 좋지 않을 땐 아들과 손녀도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현재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많이 슬프겠지만, 그런 상태로 천수까지 누리며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유교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고의 뿌리에서부터 이미 서양인들과는 큰 차이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가족 또는 본인이 말기암이나 불치병에 걸린다 하더라도 '죽을 권리'나 '안락사', '생명 중단 선택'에 대해 각 개인이 갖는 거부감이나 찬반 논쟁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리라. 하지만 나는 저자의 남편인 브라이언이나 그의 선택을 지지해 준 에이미가 결단력 있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훗날 내가 죽을 날짜를 내가 정할 수 있다면.. 나는 우선 장례식이라는 칙칙한 명칭부터 바꿔버리고 싶다. 내 추모식에 올 사람들을 정해놓고 직접 정성스럽게 초대장을 제작할 거다. 추모식은 사나흘씩 절대 필요 없고 딱 하루 세 시간이면 족하다. 부의금 따위는 일절 금한다.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과 환타색으로 사방을 온통 환하게 칠해놓고, 진행에 쓰일 음악도 내가 애정했던 곡들로 미리 선곡해 놓을 거다. 새까만 옷을 입고 슬픈 얼굴로 오는 사람들은 출입 금지, 드레스 코드는 화사한 플라워 디자인과 밝은색이다. 1시간 정도 추모식이 끝나면 내가 사전에 준비해 놓은 와인과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즐기면서 나를 추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할 것 같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에너지가 0인데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미련으로 억지스럽게 부여잡고 있는 생에 대한 이미지는 내가 상상하는 노년의 아름다움이나 경외심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이 느끼는 노년에 대한 불안감이나 고독사 문제, 사회가 준비해야 할 시스템이나 가족의 부양 그로 인한 세대 간 갈등 등 초고령화 시대를 직면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책을 읽고 기사를 찾아보니 작년 2023년 기준, 약 300명의 한국인이 디그니타스 · 라이프서클 · 엑시트인터내셔널 · 페가소스 등 조력 사망을 돕는 스위스 4개 단체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되며, 최소 한국인 10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나는 현재 미혼이라 이대로 영원히 싱글로 살아간다면 내가 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렸을 때 실질적으로 나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된다. 현재 전 세계적인 1인 가구 증가 추세만 보더라도 '존엄사'나 '안락사', '조력 자살'의 합법화는 시대 흐름에 따른 또 하나의 차선책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영원히 '안락사 금지국'으로 남는다면 나는 언젠가 기꺼이 스위스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를 돌봐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슬프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설령 내게 자식이 있다 치더라도 부양의 책임과 부담을 온전히 떠맡기며 의지하고 싶지도 않다. 모든 갈등과 불행은 의무와 족쇄를 채우는 데서 시작된다. 훌륭하신 조상님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세상 누리고 산다. 우리 문화와 관습이 가진 장점이 많지만 그와는 별도로 이제는 그만, 미개와 야만으로부터 벗어나자. 안락사 합법화를 위한 적극적인 논의를 서둘러 주세요! 독서 모임 추천도서로 정말 제격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EfHZtCKJGY&pp=ygURdGhlIHdhdGVyIGlzIHdpZGU%3D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순간, 때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칼라 보노프의 'The water is wide'.. 담담한 기타 선율에 칼라 보노프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사랑은 아름답고 따뜻하고 처음엔 보석처럼 화사하지만, 낡고 차갑게 식어버리면 아침 이슬처럼 사라져 버린다'라는 가사처럼 우리 삶도 결국은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주어진 소명 잘 감당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다가 그저 담담히, 아침 이슬처럼 맑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에이미 블룸의 이 책 <IN LOVE>를 읽고, 죽음을 떠올리는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 권 책과 함께 참 멋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