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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테의 꽃 Jan 20. 2024

매일이 작은 축제처럼

Reality _영화 《La Boum》

아침에 휴대폰 어플로 날씨를 확인하니 미세먼지도 없고 날이 적당히 흐린 게 자전거 생각이 간절했다. 오전에는 도서관에 갔다가 오후엔 자전거를 타는 게 계획이었는데 하필 어제부터 계속 비가 온다. 산책하기에 적당히 좋은 날은 미세먼지 때문에 집에만 틀어 박혀 있어야 되고, 미세먼지가 물러가고 깨끗한 하늘이 모습을 드러낼 땐 비가 오거나 한파가 닥치거나.. 세상 참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자전거로 산책로를 한 바퀴 빙 돌고 싶은 욕망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어서 털모자에 방한 장갑, 두꺼운 점퍼를 장착하고 집을 나섰다. 밖은 아까보다 많은 비가 내리는지라 순간 좀 망설이기도 했지만 머리는 감으면 되고 옷은 빨면 된다. 자전거를 타고 익숙한 산책로에 진입하니 흐린 하늘과 비 때문에 시야도 뿌옇고 산책하는 사람 하나 보이질 않는다. 가다 보면 빗줄기가 조금 잦아들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얄팍한 내 바람일 뿐이다. 어찌어찌 학교 앞을 지나 금강보행교까지 다다르니 비에 옷이 젖어 살짝 한기가 돈다. 자전거를 얼른 거치대에 반납하고 걷기로 했다. 금강보행교를 걸어 시청 앞까지 도착했는데 거기서 또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가는 건 정말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시 거주 4년 차 동안 오송역에 갈 때를 제외하곤 버스를 타는 일이 거의 없어 정류장이 어딘지도 모르고 방향 감각도 제로인데 다행히 청사까지 가는 BRT가 있어 무사히 집까지 잘 돌아왔다. 뿌연 세상, 버스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비, 공기 속에 가득 찬 습기는 비좁은 시내버스 안에서조차 낯선 인상을 자아낸다. 하지만 결코 불쾌하지는 않았다.


모험이라기엔 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외출이라 보기엔 조금 엉뚱한 일탈이라 할 만 하지만, 내겐 나름대로 작은 즐거움이다. 그냥 가끔은 조금 엉뚱한 시도, 익숙하지 않은 작은 일탈을 꾸며 보는 것도 삶을 팽팽하게 유지해 나가는 자극이 된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햇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이 더 짧아지다 보니 기분도 가라앉고 몸도 움츠러들기가 쉽다. 자전거를 타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이는 내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때마다 몸소 경험하는 바다. 중년기에 기분을 잘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가끔은 마구마구 화를 내는 사람보다도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처럼 아무런 감흥이 없는, 무감각한 사람들이 더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상대의 호의와 작은 친절에도 시종일관 차가움과 냉소로 일관하는 그런 모습들 말이다. 몸속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잘 관리해서 기분을 조절하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몽글몽글 감성을 자극한다면 그리 대단할 것 없는 하루도 썩 괜찮은 날이 되고는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xL5AbVeFF8&pp=ygUMcmVhbGl0eSBseW9u

La boum _Vladimir Cosma, 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

아름다운 프랑스 여배우 소피마르소가 출연한 영화 《La Boum, 1980》의 'Boum'은 '축제', '서프라이즈 파티'와 같은 뜻을 갖는다. 영화는 여태 본 적이 없지만, 삽입곡 'Reality'는 어릴 때 너무 좋아했던 곡이라 따로 피아노 낱장 피스를 사서 매일 연습도 하고 중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 친구들 앞에서 연주도 했던 그런 추억이 있다. 며칠 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 곡의 원작자인 블라디미르 코즈마(Vladimir Cosma, 1940~ 루마니아)가 편곡하고 리옹 국립 오케스트라 연주로 직접 지휘한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정말 근사했다. 유튜브에는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이 연주한 위 버전이 있다는.. 아까 자전거를 타면서도 몇 번 반복해서 들었지만 며칠 이 음악 때문에 참 행복했다. 음악 덕분에 매일이 작은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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