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빛나는 책 <빛을 비추면>
나 : 이 책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읽어야 해요.
회원 : 깜깜한데 어떻게 읽어요?
나 : 어두워야 빛이 잘 보이잖아요. 불을 끌게요.
회원들 : (불을 끄고 손전등으로 책장 뒷면을 비춘다) 와~~~~~ 넘 이뻐요! 대박이에요!
그림책은 늘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 읽은 김윤정, 최덕규 작가의 <빛을 비추면>은 내 인생에 책이 주는 가장 큰 경이로움을 선사한 그림책이다. 이 책을 밝은 곳에서 보면 뭔가 비어 보이는 면이 많은 그림의 연속이다. 두꺼운 책장을 넘기면 청록색 색지가 나오고 ‘빛을 비춰봐’라고 써있다.
본격적인 글의 첫 페이지는 산에 남산 타워 같은 타워가 있는 도시 풍경이다. 담박에 서울의 풍경이란 느낌이 온다, ‘빛은 어둠을 밝히고’라고 시작한다. 이 짧은 구절은 마치 창세기에서 ‘빛이 있으라’라고 장엄하게 명하는 신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리하여 그림책 모임의 장소인 ‘마르코 책방’의 불을 끄고 회원들이 책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였고, 나는 준비한 손전등을 첫 페이지 뒷면에 비추었다. 빛을 비춰보라는 작가의 말을 따라 빛을 비추니 빈 페이지에 빛이 밝혀지면서 아름다운 도시의 밤풍경이 펼쳐졌고 우리 놀란 얼굴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와 대박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쓸쓸한 그림들이 여러 모양의 빛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책장의 뒷면을 하나씩 비추면서 빛은 어둠을 밝히고, 그리운 사람에게 인도하고, 따뜻함을 나눠주고, 주위를 환하게 하고,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다양한 서술을 만난다. 작가의 글은 책장 뒤에 비치는 빛에 의해 힘있게 우리의 마음을 강타했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하나의 물질로 만지고 빛을 비추는 행위를 통해 책을 완성해 나간다는 즐거움이 있었다. 저자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내는 것 같은 발견의 즐거운 탄성들이 오갔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감탄을 하니 그 강도가 한층 올라갔다. 우리 모두는 <빛을 비추면>이라는 책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빛만큼 그런 빛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빛이 생명을 만들어내고 키워내고 주위를 따뜻하게 해주고 꿈을 꾸게 하고 소망과 축복이 된다는 문장에서는 엄마가 하는 일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엄마이고 아내인 내가 빛을 발하는 방법으로 엉뚱하게 나는 화장을 해서 내 얼굴에 빛을 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30대가 되어서부터는 립스틱 바르는 것 외에는 화장을 안 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내 눈썹을 보니 많이 숱이 줄어서 눈썹을 정리하고 연필로 그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첼로 동아리 선생님 한 분이 뷰티샵을 운영해서 용기를 내서 눈썹 문신을 하고 화장을 좀 하기 시작했다. 그중 제일 중요한 부분은 얼굴에 생기를 주는 화장품인 ‘볼터치’였다. 주황빛이 도는 크림 타입의 볼터치를 발랐더니 얼굴이 환해 보였다. 누군가 내 뒤통수에 대고 전등을 비춘 것 같이 내 모습이 달라졌다. 눈썹이 진해지고 볼이 불그레해진 것뿐인데. 나는 내 몸에 빛을 장착하는 법을 배웠고 <빛을 비추면>의 저자의 말처럼 나에게 빛을 비춰주었다.
우리는 마음 속에 장착된 그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산다. 내 얼굴의 빛은 반짝이는 볼터치를 바르면 되지만 내 안의 빛을 어떻게 발견하나? 책의 저자는 마음 속에 빛을 나누어보라고 권한다. 빛은 나눌수록 커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책 모임을 만들고 이렇게 모여 마음을 나눈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외면의 빛의 상실을 통해 내면의 빛을 발견하는 것 같다.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빛이 선명해지듯, 나의 눈썹과 얼굴 혈색이 희미해질수록 좋은 삶을 살고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고 늘 배우며 살고자 하는 빛은 더욱 커진다. 알베르 카뮈가 <결혼>이라는 에세이 집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Au milieu de l’hiver, j’apprenais enfin qu’il y avait en moi un été invincible
겨울 한 가운데서 나는 꺾을 수 없는 여름이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드디어 발견했다.
내 안에는 아직도 꺾을 수 없는 당당한 여름이 있다는 것을 <빛을 비추면>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이 빛은 사람들을 향해 너그러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내 얼굴에 빛을 비출 볼터치를 온라인 쇼핑에서 주문했으나 배송이 지연되어 나는 주문취소를 했다. 주문취소에도 불구하고 볼터치는 배송되었고 포장을 열어 나는 얼굴에 발라보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판매자는 내가 주문 최소를 했으니 자동으로 반송을 진행했는데 개인적으로 연락도 없이 처리해 버렸다. 우리 집에 자주 오는 집배원 아저씨는 내가 그날 받아야 하는 택배 상자가 반송해야하는 볼 터치인 줄 알고 그 회사로 발송해 버렸다. 내가 받아야 하는 옷은 볼터치 회사로 가 버렸으니 이 옷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집배원 아저씨와 여러 번 통화와 문자가 오갔다.
오늘 아침 머리를 감고 있는데 딩동 벨이 울려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싸고 잠옷 차림으로 대문을 열었더니 집배원 아저씨가 미스터 블랙으로 서 있었다.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와 검은 선글래스를 쓴 집배원님은 거듭 죄송하다고 하고 곧 내 옷이 돌아올 거라고 했다. 잠옷 바람에 손으로 수건을 붙잡고 대화를 나눴다. 이상하게 나는 그의 실수에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이런 배달 실수가 그의 업무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의 미안해하는 모습이 내 아들인 것처럼 안쓰러웠다. 택배 기사님들, 배달업에 종사하는 많은 분 덕분에 시골에서도 이렇게 편리하게 사니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 미스터 블랙으로 나타난 이 집배원님께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고 있으니 큰 빛을 비추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는 빛이다’라고 말한 옛날 옛적 한 신부님의 일화를 <침묵 수업>이라는 책에서 읽었다. 수도사 지망생과 신부님과 대화를 하는 중에 신부님이 지망생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고. 지망생은 수도사 지망생이라고 하니까, 그건 너에 관한 이야기이고 너는 누구냐 재차 묻는다. 지망생이 머뭇거리자 ‘너는 큰 빛에서 나온 한 줄기 빛이야’라고 가르쳐 준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존재이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는 중년의 여인, 집집마다 기다리는 우편물과 상품을 배송해 주는 모든 택배 기사님들, 집배원님들, 또 그림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빛을 찾으려는 내 친구들, 집안에 해가 되어야 하는 아빠 엄마, 삶이 주는 과제를 가지고 분투하는 모든 이들이 마음에 작은 빛을 발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마도 볼터치를 바를 때마다 빛에 대한 생각은 떠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