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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Jan 08. 2024

여행은 떠나는 맛이 최고

치앙마이 여행 1

태국 하면 떠오르는 것은 코끼리다. 90년대 어머니가 지금 내 나이였을 즈음 아버지랑 태국 방콕에 여행을 가셨다가 코끼리 모양의 퓨터 맥주잔과 코끼리 조각상을 사 오셨고 올해 내 친구도 방콕에서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 동전 지갑을 선물로 사 왔다. 코끼리처럼 묵직하고 순한 이미지는 아마도 태국이 불교국가라는 이미지와 겹쳐진다. 남성 국민은 1년 동안 승려가 되어야 하는 불교 국가인 태국에 그렇게 많다는 사원들을 보고 싶어졌다. 21세기에 종교가 물질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는데 치앙마이의 그 많다는 사원은 어찌 생겼을까 궁금해졌다. 그것도 방콕이 아니라 치앙마이라는 작은 시골 도시에서 불교와 선량하다고 세계에 소문이 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가 성공회 교회를 다닌 지 1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공동체 내에서 많은 사귐이 있었고 나는 특별히 캘리그라피 동아리를 만들어서 12월 11일~14일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4일간 캘리그라피와 그림 콜라보 전시회를 열었다. 동아리를 만들고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여하신 분들 각자의 예술론과 방법론의 꽃이 피었다. 전시회에 나와 온종일 손님을 맞이하고 작품을 설명하고 점심을 나눠 먹고 하다 보니 서로를 좀 더 알아가는 좋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글씨를 쓴다는 기능뿐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 오고 가는 중이었고, 공동체 식구들도 전시회를 응원해 주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와 학철씨가 치앙마이로 떠난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여행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 주셨다. 청운의 꿈을 안고 유학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이 교우들이 보내 준 포근함은 학철씨 마음에도 풍성히 일렁이고 있었으니 그의 37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 은퇴기념 여행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이 출장을 다녔으면 이렇게 마일리지가 많은 것인지. 을의 위치에 있었던 그 출장들은 얼마나 스트레스였을지 상상이 안 된다. 이 마일리지를 싹 써버리고 기나긴 세월 동안의 출장도 아디유!  신혼여행 이후 처음으로 해보는 둘만의 해외여행이다. 퇴사한 남편은 한가로이 치앙마이에 관한 블로그와 동영상을 4박 5일 동안의 여정을 다 짜고 비행기 표 및 에어비앤비 예약을 마쳤다. 그리하여 우리 여행은 목요일에 시작. 인천 공항을 향해 떠났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인천 공항은 낭만적이었다. 친구가 공항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라고 기프티콘까지 선물해 줘서 차돌된장찌개로 점심을 맛나게 먹고 커피까지 느긋하게 마셨다. 공항은 한산하고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공항은 여행을 떠나는 많은 사람들의 흥분과 기대감이 충천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 아닐까 싶다. 게이트 대기의자 사이사이에 분홍색 난초꽃이 피어 있다. 싱가포르 오키드 가든에서 많이 보았던, 엄마가 ‘양란’이라고 부르던 꽃들이다. 진분홍 색 어여쁜 오키드가 열대 남국으로 어서 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탑승해서 먹은 식사는 정말로 훌륭했다. 화이트와인에 청경채가 곁들여진 대구요리. 샐러드와 과일까지 화려한 색이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버터에 볶은 쌀밥도 왜 이리 맛있는지. 홀가분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남편이 그런다. ‘난 말이지 여행을 가서도 회사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 여행이 끝나가면 머리 아픈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회사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어. 마음이 엄청 쫄렸거든.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마음이 편해’


공항의 면세점에서 나는 향수 향기가 복도로 흘러나와 사람들에게 손짓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것 같지만 나에겐 명품도 와인도 화장품도 다 필요 없다. 떠날 수 있는 자유 하나로 기분이 공항 천장을 뚫고 올라갈 기세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남국으로 갈 수 있다니.      


6시간의 비행 동안 2024년 신년 책모임에서 읽을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들었다. 비발디의 사계며 모차르트 플롯과 하프를 위한 협주곡 등등 유명하고 감미로운 멜로디에 빠져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약간 엉덩이가 아프려고 할 때 비행기는 벌써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6시간의 비행은 딱 적당하다. 치앙마이 공항에 내리니 공항 내 공기는 예상보다 서늘했다.     


치앙마이 공항은 인천국제공항에 비하면 동네 버스터미널같이 작았지만 설레는 여행자에게 정겹게 보였다. 택시 승강장에 나오니 벌써 안내원들이 택시를 타도록 도와주었다. 여성 택시 운전사분이 우리를 태우고 숙소인 아스트라 콘도까지 왔다. 150바트를 냈다. 전 세계의 택시 운전사들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운전하는 것 같다. 운전대 방향이 반대라 어색하기는 하지만 태국 말로 들리는 라디오 방송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밤공기는 서늘해서 긴팔, 반소매, 민소매를 모두 허락하고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 온도를 다르게 느끼고 있는 이곳은 여행지라는 표시인 것 같았다.     

콘도에 도착해 짐을 풀고 콘도 앞에 있는 작은 중국 식당에 가서 새우 딤섬과 돼지고기 딤섬을 시켰다. 3개~4개의 딤섬은 30바트 정도. 이 정도면 서울의 고급 중국집에서 먹을 법한 딤섬이었다. 완톤 누들까지 시켜 후루룩 국물을 마시니 싱가포르에 살 때, 지금의 야외 푸드코트 같은 호커 센터에서 먹던 그 맛이다. 이 중국의 향기와 맛은 추억을 소환하고 나의 젊은 시절 용감했던 나를 떠올린다. 이 국물을 마시면서 나는 귀여운 아가였던 나의 딸을 키웠었지. 여행의 시작을 만두와 시작했다. 덥지만 뜨뜻한 국물로 속을 풀고 콘도로 돌아왔다. 에어콘을 끄면 덥고 켜면 좀 추운 그런 온도였고 시차가 2시간이 나서 12시가 다가오고 있는 시각은 한국시간으로 새벽 2시. 앞으로 나흘 동안의 여행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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