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어머니가 국어 선생님이신데 속독학원에 등록했어? 은비 : 책을 빨리 읽는 방법이 있나요? 나 : 그냥 천천히 읽어.
은비는 속독학원에 등록했다. 3월이면 중학교 3학년이 된다는 중압감에 앉으나 서나 책을 들고 있고 내 남편이나 딸을 성당에서 만나면 수학과 과학문제를 풀어달라고 한다. 내가 영어를 좀 가르쳐 주려고 해도 수학문제 과학문제 푸느라 나에게는 눈길도 안 준다. 은비는 산책하러 나갈 때도 여행을 할 때도 문제집을 항상 끼고 다닌다. 그런데 성적은 중상위 정도다. 항상 책을 많이 읽고 싶다고 노래를 하는데 학원 숙제하느라 밤에 잠도 못 잔다. 인강도 들어야하고, 수학 학원은 매일 가야 하고 숙제가 산더미다. 은비는 숙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여러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다 하지도 못한다.
어제는 은비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아이의 심리적 불안이 너무 높아 집중을 방해하고 있으니, 학원 안 가고 방학 때 며칠이라도 하루 종일 그냥 책을 뒹굴뒹굴하며 읽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수학 과외 선생님께 은비가 ‘오늘은 독서를 해야겠기에’ 결석을 한다고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수학 선생님은 이 뜬금없는 결석 사유가 이상해서 은비 어머니께 전화했고, 은비의 집중력 부족에 대해 언급하셨다. 영어 과외 선생인 나와 수학 과외 선생님께 모두 집중력 부족과 과다한 불안심리를 지적 받은 은비 어머니는 마음은 딸보다 더 불안해졌다.
어떻게 하면 집중을 방해하는 이 불안을 없앨 수 있을까? 21세기에 집중력을 도둑맞은 사람들이 많다.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다가 은비에게 보여줬더니 자기도 서점에 가서 샀다고 한다. 웬 찌찌뽕? 하며 둘이 히히 웃었다. 은비는 이 책으로 집중력 회복과 더불어 성적향상을 꾀하려는 것 같고, 나는 읽으려고 사다 놓은 책이 천정까지 쌓일 판이고, 긴 소설을 읽는 것이 어렵고, 써야 할 글도 많건만 도대체 집중이 잘 안되서 마음이 붕붕 떠 찜찜할 때가 많아서 이 책을 샀다. 은비가 학원에서 받아온 숙제만큼 나도 읽어야 할 우리말 책과 영어 지문이 많이 있다. 은비의 불안을 나는 충분히 안다.
여행지에 가면 사람들은 자연과 예술 작품을 단 몇 초 정도 바라보고 바로 셀카봉에 달린 스마트폰을 행해 미소를 짓는다. 나도 그 무리 중 하나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도 사람들의 응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셀카의 뒷배경이 되고 있을 뿐이다. 노트북을 켜고 뭔가를 할 때도 카톡 확인하고, 갑자기 카톡 보낼 사람이 생각나고, 그 사람의 인스타에 들어갔다가 다른 쇼츠 영상을 스크롤 하다가, 내가 여기 왜 이러고 있나 깜짝 놀라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간다. 뇌가 작업전환을 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나는 얼마나 뇌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 은비의 집중력을 탓할 처지가 못 된다. 게다가 3월부터 대학원 공부까지 하겠다고 등록을 했으니 나에게 집중력은 정말 필요하다.
<도둑맞은 집중력>를 쓴 영국의 저널리스트 요한 하비는 3개월 동안 두 개의 금속 덩어리, 즉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집에 두고, 시골 마을에서 3개월을 보낸다. 그리고는 9만2천 단어의 소설을 쓰고 <전쟁과 평화>를 다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우리가 집중력을 잃은 것은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라고 한다. 스마트폰이라는 괴물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집중력을 뺏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셜미디어에 좋아요와 댓글을 원하도록 만드는 시스템, 24시간 우리를 유혹하는 동영상들과 쏟아지는 정보와 뉴스 게다가 우리에게 대답을 척척 해주는 AI까지.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가 만든 스키너 박스의 쥐처럼 좋아요와 댓글이라는 강화물을 받아 먹으며 살도록 만드는 사회.
나는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전자기기라는 몇몇 쇳덩어리가 없는 환경에서 책을 천천히 읽는 것과 악기를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은비는 책이 즐비하고 아늑한 장소를 좋아한다. 그런 곳에서 천천히 읽고 싶은 책을 즐겁게 읽으면서 학원 숙제의 부담에서 놓여나는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어머니께 1주일 동안의 책만 읽는 시간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은비는 책을 빨리 읽기를 원하지만 빨리 읽으면 뭐하는가? 속도와 이해한 정보의 양은 반비례한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개념과 개념을 연결해 응용문제를 풀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 집중해서 천천히 생각해야 정보가 서로 연결돼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불안한 아이들은 집중을 못 한다. 중학생 2학년 겨울방학을 홀랑 독서에 바치고 그놈의 수학 좀 안 푼다고 대입으로 가는 긴 여정에 재난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집중을 좀 먹는 불안을 줄여주는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들의 불안과 조급함이 아이들을 더 불안하고 힘들게 한다.
풀어야 할 문제집이 너무 많으니 아이들은 빨리 읽고 싶어 한다. 그런데 빨리 읽으면 정확성이 떨어지고 이해의 수준이 낮아진다. 그렇게 수만 권 읽으면 뭐하나. 그냥 천천히 재미있게 마음에 새기며 일기장에 적으며 한 권 읽는 게 낫지 않을까? 속독학원 당장 그만두라고 하고 싶지만, 은비는 우리가 찌찌뽕으로 같이 읽고 있는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으면 학원을 나오리라 기대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치고 노트에 정리한다. 그중 제일 마음에 드는 구절은 일기장이나 공책에 베껴 둔다. 그걸 캘리그라피로 쓰기도 한다. 필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는데 필사까지는 못하고 있다. 아무튼, 이렇게 느려터지게 읽다 보면 속도는 저절로 붙는다. 천천히 많이 읽다 보면 빨리 읽을 수 있는데, 속독으로 빨리 읽으려고 애쓰면 읽는 내용이 이해가 안 된다. 그러면 나는 역시 머리가 나쁘다는 비극적 자기 암시고 끝날 확률이 높다.
악기를 배우는 것도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오늘은 첼로 줄을 바꾸러 악기사에 갔다. 연습용 첼로에 있던 아주 저렴한 줄을 버리고, 좀 비싼 줄로 바꿨다. 다른 줄은 괜찮은데 가장 높은 줄 A 선이 귀에 거슬려서 5개월 정도 연습했으니 기본줄을 버려도 되겠다 싶어 줄을 바꾸고 연습을 시작했다. 아직 줄이 안정되지 않아 며칠 기다려야겠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현에 얼마큼 압력을 주어야 하는지, 옆줄에 닿지 않고 말끔한 소리를 내려면 현과 활 사이에 어떤 각도를 유지해야 할지는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지판에 있는 왼손이 정확한 위치에 있는지 손가락의 각도를 잘 유지했는지 감을 잡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한다. 이러한 미세한 조정을 하려다 보면 자연히 집중하게 된다. 집중은 몸에 땀이 나게도 한다. 배도 고파진다. 머리와 몸이 동시에 일해서 그런 것 같다. 악기에 익숙해지는 것은 선생님의 설명이나 매뉴얼로 해결되지 않는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남편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있길래 연구를 좋아하는 당신의 탐구 습관은 좋지만, 영상은 그만 보고 직접 연습해 보라고 했다. 머리와 몸이 함께 알아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얼마나 빨리 읽을 때 내가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지는 내가 읽으면서 정할 수밖에 없다. 악기를 배우는 섬세한 노력처럼 독서도 그만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단어의 적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행간에 숨은 의미와 비유를 알아차리고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글쓴이에게 저항하며 읽을 수 있으려면 첼로의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과 비슷한 내공이 필요하다. 무조건 빨리 읽기 연습으로 문해력이 높아지고 무조건 비싼 악기만 있으면 연주가 잘 되는 것이 아니듯, 단 몇 가지 방법만 습득하면 얻어지는 기술과 능력은 이 세상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