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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혜숙 Jan 14. 2024

평화로운 도시 치앙마이

치앙마이 여행 2

12월 중순이라 건기인 치앙마이의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맑고 높다. 여행 이틀째 첫 아침을 맞았다. 아침식사 준비를 하지 않고, 카페에 가서 밥을 먹기로 하고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서 올드시티로 갔다. 치앙마이의 트레이드마크인 ‘왓 프라싱’ 사원 근처 카페 이름은 한나 Hanna 였다. 이국적인 식물로 가득 찬 카페는 야외와 실내로 나눠 있었는데 인테리어가 너무 아름답고 빈티지스러웠다.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이 풍겨나오는 실외 카페의 2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웨이트리스 아가씨가 영어도 잘하고 친절했다. 그린 샐러드, 파니니 샌드위치, 그라놀라 과일샐러드, 트와이닝 복숭아티와 타이스타일 밀크티까지 성대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모든 음식이 신선하고 양도 많았다. 복숭아티는 향기가 좋았고 타이 스타일 밀크티는 라떼 아트까지 되어 있었다. 이 식당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들었다. 바닥의 꽃무늬 타일과 오래된 느낌의 식탁과 의자는 시간이 만들어낸 작품들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왓 프라싱’ 사원에 갔다. 붉은색과 금색의 화려한 조각의 법당의 전면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진한 화장을 한 태국의 농염한 아가씨 같다고 할까. 금빛과 선홍색의 강렬한 대비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상이 현란했다. 가장 큰 불상은 눈을 아래로 뜨고 있었는데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는 모습이었다. 본당 건물 앞의 두 마리 용은 아마도 절을 시키는 수호신이 아닐까 한다. 뒤뜰로 가보니 엄청난 크기의 금색탑이 보인다. 여기 가이드님들은 이것을 파고다라고 부른다. 파고다 영어학원이 생각나려고 한다. 금탑에 코끼리들이 하단에 있었고 뒤에 보이는 금탑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강렬한 태양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금빛.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귀한 형상이 아닐까 한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 아래 금빛은 대단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김훈 선생님이 말하는 팽팽한 겨울 하늘을 여기서 다시 보는 것 같았다.   

  

금탑 근처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있었다. 태국 국민의 90%는 불교 신자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 옆에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한 사원들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런 사원들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많은 헌금이 필요할 것이다. 태국 국민들은 불심이 깊은 것일까. 자기에게 쓸 돈을 부처님을 위해 승려들을 위해 기꺼이 바치고 있는 것일까. 신심이 깊은 태국 국민들은 우리나라 국민들보다 더 행복한가?  멍청한 대통령보다 국왕을 믿는 마음이 더 평화로울까? 등등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에 떠올랐다. 올드시티를 걷다 보면 크고 작은 수많은 사원을 만나게 된다. King Mengrai temple, Wat Pan Whaen 사원도 잠시 들렀다. 정말 사원이 줄지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간 곳은 Kalm Village. 갤러리와 카페와 샵이 있는 3층 건물이었는데 ㄷ자 형으로 되어 안뜰이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마당에 있는 나무들은 자연 상태의 나무들이었고 우리나라 가옥에서 볼 수 있는 검은 기와집이었다. 그 안에 전시된 그림들, 가구, 전통방식으로 직조된 천들은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한 느낌이 들었다. 전시실 어디에나 나 있는 창을 통해 바라본 안뜰의 나무의 푸른 잎사귀들은 전시된 작품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자연의 풍경과 인간의 작품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있는 빛의 공간이었다. 심지어 구석진 공간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는 오래된 느낌이 아주 좋았다. 흠집도 많고 낡아 보이는 나무가 여기 앉아보라 부르는 것 같았다. 낡은 것의 아름다움은 인간에게도 적용하면 좋으련만. 강렬한 태양 속에 푸른 화분 사이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은 호사스러웠다.


갤러리에는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도 많았다. 오래된 주택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장면을 흑백으로 가득 묘사한 그림이 특히 그러했다. 작가의 이름은 Wuttichai Bussaya 제목은 safe area 2 였다. 목조건물 된 태국 주택처럼 보였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계단이 나 있는데 이건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같다. 실제 집을 묘사했다기보다 상상의 집인데 그곳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안전한 장소가 아닐까 싶었다. 사고 싶을 만큼 좋은 느낌이어서 작품의 가격 리스트를 찍어보니 나도 좀 무리하면 살 수도 있는 가격이었다. 구매 충동을 다스리고 나서, 이곳 예술품 가게의 물건들을 구경만 했다. 하나에 몇만 원씩 하는 식기와 장식품들을 과연 현지인이 살 수 있나 싶었다. 화장실에 갔더니 여기도 도자기세면대와 아름다운 꽃무늬 타일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리석과 금빛이 어우러진 실내장식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여기가 화장실인지 여왕님의 화장대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태국의 1인당 GNP는 우리나라의 1/4 정도인데 치앙마이에서 관광객에게 유명한 카페들은 커피 한잔이 70~80바트, 우리 돈으로 3천~4천 원이다. 치앙마이 시민들도 물가가 살인적이라고 느낄 것 같다. 카페나 식당에는 외국인이 주로 있고 현지인들은 한 그릇에 50~60바트의 국수나 쌀밥요리를 먹는다. 한 끼 식사는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한 그릇의 국수는 우리 칼국수나 냉면에 비하면 반 그릇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한 끼 식사보다 한잔의 커피가 더 비싼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치앙마이 시민들은 외국인들이 주로 가는 식당에서는 외식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캄빌리지를 나와 골목길를 걷다 보니 하와이에서 흔히 보았던 붉은색 히비스커스가 보이고 꽃술쪽이 노르스름한 흰색 꽃 플루메리아가 주택의 뜰에 피어나서 지나가는 여행객을 반겨주었다. 그 외에도 이름 모를 화려한 꽃들이 많이 피어나 산책을 즐겁게 해 주었다. 길을 가다 보니 Wat Chedi Luang 사원이 나왔다.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붉은색과 금빛이 현란한 다른 사원과 달리 파고다는 벽돌색만 남아있고 탑의 윗부분은 지진으로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아직 보수공사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엄청나게 큰 법당의 나무가 수호신 나무라고 한다. 키가 큰 나무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우울하면 산책을 하라고 하는 것 같다.  

   

점심식사는 로컬식으로 먹었다. 싱가포르에서 먹은 치킨라이스와 돼지고기 꼬치 요리였는데 밥과 음료수까지 모두 200바트 정도 나왔다. 오늘 아침 식사가 490바트인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저렴했지만, 맛이 별로 없었고 배도 부르지 않은 채 식당을 나왔다. 치앙마이의 보통 사람들의 식사를 한 셈인데 아무래도 배가 차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날씬한 것일까? 점심을 먹고 예술문화회관 Art and cultural center에 갔다. 매표소에는 트렌스젠더처럼 보이는 분이 표를 팔고 있었는데 태국에는 트렌스젠더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병원을 가거나 관공서 방문 마저 못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에 비하면 그들의 인권은 태국이 훨씬 나은 상태가 아닐까 싶었다. 성소수자의 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해 볼 때, 국가기관인 박물관에서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태국에서 꼭 해야한다는 전신 마사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깨가 뭉친 나는 어깨 마사지 할 때 눈물이 나올 만큼 아팠다. 살살 해달라고는 했지만 정말 시원하고 개운했다. 이 마사지도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 받고 싶어진다는데, 그런 위험에 빠질까 두려워졌다. 마사지사는 매우 친절했고 마사지 마치고 맛있는 차와 간식을 제공했다.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도 잡아 주었다. 썽태우라는 택시는 아무래도 적응이 잘 안 됐다. 소형트럭의 짐칸에 벤치를 만들어 앉는 형태라 배기가스를 계속 마셔야 하고, 차 뒤에 따라오는 오토바이 운전자와 눈을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서 차는 계속 흔들리고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치앙마이에는 이런 개인 택시운전자들이 많아서 버스 같은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 앱을 이용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가격을 조금 비싸지만, 장거리 이동일 경우에는 썽태우는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다.     


저녁에는 남편의 지인분과 ‘카오마오 카오 팡 이라는 정말 독특하고 아름다운 야외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동호회 카톡방에 있는 분인데 치앙마이에 거주한 지 2년 쯤 되었다고 한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분이지만 우리가 치앙마이에 온다고 하니 기꺼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대만에서 대만인이 아내를 만나 한국에 살면서 아내는 중국어를 한다는 이유로 엄청난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의 아내는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고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해, 치안이 안전하고 학비가 비싸지 않은 곳에서 두 아들을 국제학교에 보내려고 하다 보니 치앙마이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중국어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에  벌러 온 조선족이고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차별적인 시선을 보내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태도를 견디지 못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은 얼마나 쓰렸을까... 우리족이 뉴질랜드에서 잠시 이민자로 살 때 느껴야 했던 차별적 시선을 그 아내분도 느꼈을 것이다. 내가 이민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온 것처럼 아내를 위해 치앙마이로 이사 온 그분의 심정이 헤아려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인종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비율이 34%나 된다는 통계를 봤다. 가장 낮은 나라는 핀란드로 2.8%다. 남이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잠재의식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킨다고 한다. 나도 뉴질랜드 이민 생활하면서 매일매일 이런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남편 지인의 대만인 아내처럼. 한국을 떠나 치앙마이까지 온 한 가족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하루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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