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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 훈 Dec 26. 2022

아프고 힘들어보니 공감하게 됐다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위해

아파보니 알겠더라 힘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해결책 보다 진심 어린 공감이라는 것을. 힘들어보니 알겠더라 어떠한 위로도 나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묵묵히 옆에서 "내가 곁에 있어줄게"라는 한 마디가 어느 말보다 힘이 된다는 것을.


누군가에겐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힘들고 해결이 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나만의 시각으로 판단하고 해결책을 내어주려고 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 눈에 뻔히 보이는데,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면 극복할 수 있을 텐데.."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았기에 내가 뱉은 말이 어렵다는 걸 몰랐다. 힘듦의 정도가 나에겐 있어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난제보다 어렵고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아 보이는 걸 나는 내가 아프고서야, 마음이 힘들고서야 알았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듯,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돼." 누구보다 잘 알고 행하는 줄 알았지만 아직도 미성숙한 나의 마음과 머리는 공감이라는 말을 쉽게 정의하기엔 어렸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쉽게 해결책을 내어주고 극복하지 못하는 건 본인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되돌아보니 내가 한 말들과 행동들이 얼마나 미성숙했는지,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성숙한다는 건 감정이 무뎌지는 것이라 느낀다. 많은 걸 경험하며 모진 풍파를 겪게 되고 약간의 아픔에는 무뎌지는 것이다. 어렸을 때 겪었더라면 엄청나게 시린 상처들도 나이가 들어 겪어보니 약간의 자국만 남기게 되고, 그것이 별 것 아니라는 듯 넘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들에게 말해봤지만 성숙하지 못한 시각에선 상대방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기에 해결책을 쉽게 내어주려고 하고 상대방의 아픔과 상황을 쉽게 판단하는 경우가 비재했다. "해결책을 알고 행하면 되는데 왜 하지 않는 거야?" 나의 힘든 상황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며 타인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나도 알고 있는 해결책, 그걸 몰라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머리로는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이 너무 힘들고 지치기에 현실에 타협하게 되고 우울하게 된다. 점점 무기력해지고 삶의 활력을 잃어갔다. 주변의 친구, 동료들에게 나의 고민을 말하였지만 타인은 내가 아니기에 나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쉽게 상처를 주었고, 미성숙한 마음으로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 


우리는 시각을 항상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쉽게 판단하고 해결책을 내어준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이라면 해결책을 내어주기보다 먼저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을 한다. 힘든 그 사람에게 먼저 필요한 건 직접적인 해결책보다, 따듯한 한 마디의 위로와 공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았기에 쉽게 힘든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먼저 공감을 하는 것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힘든 그 상황이 당사자에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아픈지.


처음에는 잘 몰랐다. '왜 힘듦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힘든 사람들 중 이미 해결책을 알고 어떻게 해결해야 자신의 상황이 나아지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기에, 행동으로 옮기기에 필요한 에너지가 바닥나 있는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것이 이렇게 찾아오나 싶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좌절하게 되는지 왜 쉽게 상대방의 힘듦을 판단하면 안 되는지 너무나 깊이 깨달은 것이다. 과거의 나를 다시 보게 되고 나를 반성했다. 그리고 상대방의 힘든 상황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겪어보니 힘든 상황에서의 타인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필요한 치료약은, 해결책이라는 방법보다 공감이라는 위로였다. 


회복이 된 지금 깨달은 것이 많았고, 그만큼 성숙한 기간이었다고 느낀다. 또한 이제는 상대방의 힘듦을 들었을 때는 공감을 먼저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타인이 될 수 없기에 모든 걸 알 수가 없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으로 쉽게 판단하고 해결책을 주기보다 따스한 위로를 건네며 상대방의 마음에 작은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다. 그렇게 점점 성숙해 간다. 힘듦이 있기에 지금의 성숙이 있었다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작은 위로를 건네며 겨울날 작은 난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성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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