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sbubam Aug 05. 2024

휴직일기 004

좋은 책은 꼭 푸르른 숲과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휴직일기 003' 편을 썼다.


매일 브런치에 일기를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쉽지만은 않다.

주변에 엄청 홍보하긴 했어서 찾아와 읽어주시는 분들도 있고,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조금 사그라들고, 하루하루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 아직은 약간 들뜬 기분이다.

대부분은 트위터, 페북에 공유한 글을 보고 트친, 페친 분들이 와서 봐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통계를 보면 브런치 리스트를 통해 방문한 분들이 20~25% 정도 된다. 


모르는 분들이 와서 글을 읽어주신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브런치에 올라오는 다른 작가분들의 멋진 글들을 훔쳐보면서, 와! 이래서 내가 매번 심사에서 떨어졌구나! 싶다.

그래도, 지난 일기에 적었던 것처럼 일기를 쓰고 나면 왠지 속이 좀 더 후련하고, 편안해진다.


오늘은 어제처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지 않으려고, 아침 먹자마자 도서관 들렸을 때처럼 소박한 내 책장에서 책을 몇 권 골라 식탁에 앉아 기분 내키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처음 펼친 책은 9월 교토 여행 전에 조금씩 읽고 있는 임경선 작가님의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조금은 다른(?) 교토여행 책


오늘 다 읽었는데, 단순히 교토에서 방문할 포인트들을 소개해주는 책이 아니라, 교토의 문화나, 교토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내용들이 많아서 재밌게 읽었다.


예를 들면, 항상 내전이 있던 도시라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어려워 애매하게 대답하던 문화가 현재까지도 계속되어서, 이렇게 말하면 거절로 알아들어라. 하고 팁을 준다던가? "오차즈케라도 먹고 가세요."라고 하면 '이 정도 있었으면 집에 가세요.'라는 의미라던가. 흐흐 (진짜 먹고 간다고 하면 부러 밥을 조금만 넣어준다는데 정말일까?)

식당에서 손님에게 "좋은 시계를 차셨네요."라고 말하는 건, "귀한 식기에 상처가 날 수 있으니, 시계를 풀고 식사해 주세요." 란 의미일 수도 있다라던가...


도쿄나, 오사카와는 조금 다른 교토 주민들만의 교토 자부심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손님이 왕이라는 생각보다는 정성을 다한 상품을 제공하는 점주로서의 자부심으로 마냥 자세를 낮추지만은 않는 부분이라던가, 정말 이 가게를 찾아오고 싶은 찐 손님만 받으려고 부러 간판을 눈에 잘 띄지 않게 표시한다던가 하는 부분은 새롭기도 하고, 이런 가게일수록 꼭 한번 찾아 들려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아침부터 일하는 상인들이 많아 카페와, 빵집이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다양한 빵집, 모닝세트를 꼭 여러 군데 메모해 놓고 경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 보니, 방에서 일러스트 작업하던 아내가 식탁에 나와서 맞은편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에어컨 시원하고, 조용한 음악도 틀어두어서 카페 같았던 우리 집 식탁카페


마침, 아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몰래 주문했던 책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가 막 배송되어서 옆에서 같이 읽기도 했다. 

아내가 옆에서 "그만하면 충분하다."라고 소리 내서 읽었던 부분을 듣고 나도 읽고 싶어 졌다.


다음 읽은 책은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건축가 안도 다다오 님이 직접 쓴 책으로, 어릴 적 이야기부터, 프로 복싱선수를 거쳐 건축에 꿈을 갖고 건축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책이 나왔을 무렵 25명의 팀이 하나의 회사이자 개별 게릴라 군단으로 움직이는 아틀리에의 이야기. (지휘관 한 사람과 그의 명령을 따르는 병사들로 이뤄진 '군대'가 아닌, 공통된 이상을 내걸고 신념과 책임감을 가진 개인들의 단체인 '게릴라 집단'으로 만들고자 했다. - 체게바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괜히 복싱선수 출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단한 마음. 단단한 회사.


처음엔 일이 들어오지 않아서, 바닥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점점 업계에 자리를 잡아 찾아오는 학생들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꼭 스타트업 같단 생각을 했다.


인턴제도인 써머스쿨에서, 인턴에 지원한 학생들을 한 명의 게릴라로서 존중하고 항상 씨를 붙여 호칭한다던가 하는 모습도 좋았고 인턴제도 -> 직원 -> 경험 있는 직원 -> 독립으로 키워나갈 수 있게 시스템에 정성 들이는 이야기를 보고 이 이야기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 '안도 다다오 일을 만들다.'라는 책도 검색해서 바로 주문했다.


안도 다다오의 일을 대하는 마음, 건축회사 이야기가 좀 더 읽고 싶어서 주문한 '안도 다다오 일을 만들다'


혈혈단신으로 해내갈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있고,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면 '사회적인 조직을 확보한 개인'이 되어야 비로소 신용을 얻고 더 큰 일을 해나갈 수 있다는 부분에서, 개발자도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별도 조직도 없이 스탭과 안도다다오의 1:1 관계만으로 이뤄진 이런 구성을 개발자들도 비슷하게 하나의 팀으로서 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건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어떤 원칙들을 세우고 운영했는지, 동료들이 어떤 부분들을 지키지 못하면 화를 내고 고치려 했는지, 개개인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등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아까워하며 읽었다. (아직 읽고 있음.)


원래 책은 맨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읽다가, 곧잘 잠들곤 했는데 식탁에서 읽는 건 또 묘한 맛이 있었다.

아내가 책 읽을 때 독서대를 사용했더니, 편하다고 해서 독서대도 사용해 봤는데 생각보다 집중도 더 잘되고 글이 쏙쏙 들어왔다.

대부분의 사진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 촬영


오사카에 있는 아틀리에는 5개 층이 세로로 뚫려있어서, 1층에서 일하는 안도 다다오가 하는 말을 다 들을 수 있게 했다는데, 이런 구조는 예전에 유현준 교수가 MIT였나 하버드였나 건축과에서도 학생들의 작업실이 계단식으로 구성되어서 서로의 작품을 보면서 긍정적인 자극도 받고, 토론하고, 조언도 하고 하는 생산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안도다다오의 작품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져서 '안도 다다오가 말하는 집의 의미와 설계'라는 책도 주문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의 사진과, 평면도, 도면, 스케치, 시공기록 등이 정리되어 있는 책 '안도 다다오가 말하는 집의 의미와 설계' 


책 보면서, 틈틈이 메모를 쓱쓱 하다 보니, 예전에 팟캐스트 비슷하게 진행했던 트위터 스페이스 방송 '밤 라디오'가 생각났다. 라디오 끝 부분에 최근에 읽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는데 생각보다 책 이야기 하는 게 즐겁고, 듣는 분들도 좋아해 주셨던 것 같아서... 


감사하게도 들어주셨던 소수의 팬(?) 분들과, 왠지 모르게 신나서 혼자 떠들었던 밤라디오 에피소드 1,2 편.

클릭해도 재생 안됨... 아래 링크로 가서 들어보실 수 있어요.

밤 라디오 들어보기 -> https://x.com/i/communities/1569345450565828608


좀 더 책을 열심히 읽고, 조잘조잘 읽었던 책 이야기하는 오디오 방송을 해보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아, 뭘 자꾸 일을 만들려고 하는 거는 -_- 쉽게 고쳐지지 않는구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아내가 마르게리타 피자를 구워줬다.

저 위에 올린 거 녹색 풀이름을 알려줬는데 또 까먹었네 무슨 치즈이름 같은 거였는데... 


지금은 저녁 9시 40분이고, 일기를 다 쓰고 나면, 사진강의를 좀 더 듣고 안도다다오 님 책이랑 좀 전에 배송된 '코딩도 하고, 사장도 합니다.'를 읽다 자려고 한다.

명수님이 추천해 준 코딩도 하고, 사장도 합니다.


12년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내 회사'를 만들어 24년간 '오너로서' 경영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내용인데, 재밌게 읽었던 김재호 님의 '건축주의 기쁨과 슬픔' IT 회사 경영 버전이라고 생각하고, 잠깐 펼쳐보았는데 이미 재미있어서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

debug.exe 는 winapi 정복인가 하는 책에서 봤던 것 같다...
트위터에 스카이님한테 이 이야기를 보여드리니 놀라면서 반가워하시는 듯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장으로서 괴롭고 힘들었던 이야기, 현실적인 회사 운영, 자금 운용에 대한 이야기, 실패하면서 배웠던 이야기 등이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가 해주는 옛이야기처럼 솔직하게 펼쳐져있다고 한다.


"휴직 다음은?" 이란 동료들의 질문에 "아직, 하나도 모르겠어요. 쉬면서 생각해 보려고요."라고 대답해 왔는데, 어쩌면 프로그래밍 공부는 조금 미루고, 사유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와, 나 컴퓨터 책도 휴식할 때 보려고 많이 사놨는데', '이거 개발자 휴직일기 맞나? 그냥 상백수 이야기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하고 싶은 일들 하나씩 찾아 시간을 들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다시 에디터를 켜고 불붙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리라 믿고, 일단 마음 가는 순서대로 집중하고 시간을 보내보려고 한다.


아마, '코딩도 하고, 사장도 합니다'를 읽다 보면 내일은 에디터를 켜서 뭐라도 끄적거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하고...


마쓰이에 마사시 작가님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소설을 오늘 우연히 알게 되어서 같이 주문했는데, 건축과를 갓 졸업한 주인공이 '무라이 선생님'이란 선생님의 숲 속 아틀리에에 출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이 책 리뷰에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숲 속 향기가 나는 듯했어요.'와 같은 글이 있었는데, 미야시타 나츠 작가님의 '양과 강철의 숲'이 나에게는 그런 책이었다.


좋은 책은 읽다 보면 이야기 속 공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간혹 정말 숲 향기가 은은하기도 전해지기도 한다.

오늘은 책 이야기를 적다 보니 슥슥슥 일기가 끝났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되려나...

일단 읽고 싶은, 읽어야 할 책들이 줄 서 있어서 기대된다.


그나저나, 요즘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더운데 괜찮은 건가?

작가의 이전글 휴직일기 0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