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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소리 Dec 03. 2024

오래된 것에 대하여


                                                                                                    

 '옛날옛날 한 옛날에'는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때 꺼내는 서두이다. 옛날에 있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할머니는 봤어요?’ 하고 묻는다. 할머니는 오래되었다는 의식이 깔려있는 물음이다.

 어느 날은 ‘할머니는 몇 살 이예요?’ 하고 묻는다. ‘음, 칠십하고도 삼년이 지났지,’ 하면 ‘그럼, 오~래 됐네.’한다.

그렇다. 나는 오래되고, 묵은 것이다. 내 어릴 때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옛날 이야기 쯤으로 느낀다. 그렇더라도 호자나무가 묵은 열매와 새 꽃을 함께 달고 있듯이 아이들과 어울려 살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제 나름의 삶을 사느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두 식구만 사는 우리 집 식탁 앞에는 꺼내지 않아도 늘 아이들을 볼 수 있게 사진을 주욱 붙여놓았다. 촌스럽다고 사람들이 놀려도 나는 시시때때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밥을 먹으면서도 늘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좋다.

 외국에 살다가 삼년 만에 온 여섯 살 손주 녀석이 ‘할머니, 우리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하고 묻는다. ‘음, 여기 있는 사진을 보면서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지’ 손주는 짐짓 알면서도 할머니 입을 통해서 듣고 싶어 능청스레 물어본 것이다.      

 묵은 것, 오래 된 것, 우리는 새것과 묵은 것에 대하여 대비의 개념을 갖는다. 신석기와 구석기, 신약과 구약, 신대륙과 구대륙으로 구분하면서 새싹과 새순을 경외하고 새로운 것을 선망한다. 새로운 것이 시대를 이끌어가고 역사를 이어나갈 것을 알기에 그러한 흐름에 순응하는 것 같다.

 어제는 은행 일을 보러 가려고 통장을 찾으니 통장이 하나 없다. 당황하여 찾다가 은행 창구에 가서 분실 신고를 하고 보니 다른 통장과 겹쳐들고는 분실신고를 한 것이었다. 통장을 2개 들고 창구의 직원에게 민망하여 ‘손에 들고 찾은 폭이네요.’ 했더니 ‘네, 저도 가끔 그런답니다. 젊은 사람도 그러는데요.’ 하며 위로를 건넨다. 젊은이의 오래된 것에 대한 배려가 고맙게 느껴진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오래된 것의 자존감이 무너진다. 햇김치의 아삭한 맛을 즐기고 햅쌀의 찰지고 윤기 나는 맛을 즐기면서도 묵은지의 맛도 깊고 구수하다고 위로하지만 오래된 것의 입은 떫기만 하다.     

 오래된 사진첩 속에는 젊은 내가 있고 어린 딸과 아들이 웃고 있다. 요즈음 찍은 사진 속에는 오래된 나와 50이 다된 딸과 아들이 어린 손주들과 웃고 있다. 묵은 것과 새것이 함께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오늘은 일주일 가을 방학으로 찾아온 손주들이 다시 먼 이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며 묵은 것과 새 꽃이 함께 하는 호자나무를 떠올렸다.

 호자나무는 4월이 되면 빨간 열매와 흰 꽃을 함께 달고 있다. 11월이면 흰 꽃은 빨간 열매가 되고 새 꽃을 피울 준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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