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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소리 Jun 21. 2024

선생님들은 예언가 일까?

자기 충족적 예언

 

 2월 어느 날 작가들 모임에 갔을 때였다.

 따듯한 차가 한 순배 돌아가고 촛불 위에서 찻물이 방울방울 끓고 있을 때, 시를 쓰시는 이 선생님이 “저는 요즘 정호승의 시를 읽고 있어요. 글 속에서 왜 시를 쓰는지 말하고 있거든요. 어제는 시 ‘수선화’를 읽으며, 어릴 때 국어선생님이 너는 시인이 될 거라고 예언처럼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어요.”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국어선생님이 자기 충족적 예언을 해줌으로써 시인을 만드셨네요.’ 하면서 그 말에 동감을 표했다.

 그러자 정심원 선생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신다. 

“ 대학 다닐 때였어요. 어느 날 교수님이 ‘자네 이름은 무슨 심을 쓰나?’하고 물으셨어요. 마음심이라고 대답하니, 흠, 그럼 멀 원을 쓰겠구먼. 시를 쓸 이름을 가졌군. 이렇게 말하셨지요. 교수님의 말씀은 깊은 여운을 남기며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고, 그 후 글과 가까이 지내게 되어 작가의 길을 가게 되었어요.” 하신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릴 때 선생님의 말씀은 아이들의 앞길에 이정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큰 영향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과옥조처럼 가슴으로 들어와 한 사람에게 운명의 길을 열어가게 만드는 역할, 그래서 선조들은 스승을 부모님처럼 따르라고 한 것일까?  

   

  모 교육 잡지에 실린 글 한 토막을 읽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어느 날 아들의 선생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처칠은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 오신다며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게 했다. 웬일인지 일찍 퇴근하신 아버지도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계셨다. 거기다 중요한 손님을 맞이할 때 쓰는 식기를 꺼내 놓은 것을 보고 아들은 누가 오실까 궁금했다. 이윽고 벨이 울리고 들어선 분은 학교 선생님이셨다. 아버지가 나라 안에서 선생님보다 높다고 생각했던 아들은 선생님께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정성스럽게 접대하는 아버지를 보며 선생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찍을 때였다. 키가 작은 편인 나는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촬영준비가 거의 끝나갈 때 전체를 한번 훑어보신 선생님은 나에게 맨 뒤로 가서 찍으라고 하셨다. 고무신을 신은 내 발이 운동화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가난이 부끄러운 내 발을 내려다보던 나는 맨 뒤에 가서 까치발을 하고 볼 붉은 얼굴로 흑백사진을 찍었다. 그때는 전체의 조화로움을 선택하신 선생님의 선택이 깊은 것인지 나의 부끄러움이 깊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훗날 보니 가난을 가려주신 사진이 다행이었다. 그 담임선생님은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부모님을 설득하여 나에게 중학교를 갈 수 있게 함으로써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대학까지 갈 수 있는 길을 연결해 주었다. 


 나에게도 아직 꽃 피우지 못한 예언의 씨앗 하나가 있다. 언제쯤 싹이 나올까?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교직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자기 충족적 예언’을 많이 해주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선생님의 말씀은 아이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는 샘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퇴직하고 십수 년 세월이 흐르고도 학교에서 아이들과 높은 곳을 오르는 꿈을 자주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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