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랜더스를 사랑하는 으쓱이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라고 하면 보통 ‘얼빠’(얼굴 보고 빠졌다)라거나 ‘룰은 잘 모르지만 남자친구를 따라 놀러 온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축구를 좋아한다는 여자에게 오프사이드가 뭔지 아냐고 물어보는 것마냥 야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피식피식 웃으면서 어느 팀이요? 아, 거기 구단은 여자 팬이 많긴 하죠? 라고 하기도 했다. 내가 많이 들은 말은 이거였다. “아, 김광현 때문에요?”
김광현 때문이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의 의도는 잘생긴 야구선수라 좋아하냐, 같은 말이었겠지만, 난 김광현이 공을 예술적으로 던져서 좋아했다. 난 그저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잘하는 팀을 응원…… 아, 이건 아니고. (아니, 사실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잘하는 팀 응원하려고 하는 거였으면 애초에 야구를 안 봤어!)
어찌 되었든 내가 야구에 빠진 건 아주 기묘하고도 우연한 이유에서였다. 해리포터 모자처럼 태어날 때부터 연고지가 지정되어 있었다고 하기에는 우리 집과 야구장 사이에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엄청난 거리가 있었고, 어릴 적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기에는 나는 체육 시간만 되면 어떻게든 꾀를 부려 운동장 스탠드에 앉으려 하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체육 과목 수행평가 과제로 주어진 주제가 바로 <스포츠 경기 관람 후 감상문 쓰기>였다. 두 장이 채 되지 않는 정도의 분량으로 충분한, 아주 흔하고 일반적인 예체능 과목의 수행평가 과제였다. 엄마는 딸의 수행평가 성적을 위해 곧바로 야구장 티켓을 구해 주었다. 당시 야구의 룰을 전혀 모르던 나는 솔직히 야구장 따위 가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골을 넣었고, 누가 넘어졌고, 그런 것이 눈에 더 잘 보이는 축구장에 가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정확히는 우리 엄마에게) 야구장 티켓을 구해다 준 사람은 바로 이모부였다. 두산 베어스가 OB 베어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시절부터 열성적인 팬이었던 그는 심지어 내 자리까지 엄선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잠실 운동장에서 경기를 봐라! 그런데 그날 두산 경기는 없고, LG와 SK 경기인데…… 절대 LG 쪽에는 앉힐 수가 없다! 결국 원정응원석으로 자리를 구해 주었던 이모부. 이모부, 그때는 모르셨겠죠. 그날 이모부의 선택으로 저 역시도 인생이 바뀌었다는걸……
그날 경기는 SK의 패로 끝이 났다. 그러나 그날 경기는 진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렸을 정도로 재미있었고, 또 박빙이었다. 역전에 재역전, 재재역전까지 더해갈 때마다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 경기장을 나오며 든 생각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 야구 계속 봐야겠다.’
나의 야구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했다. 스무 살, 스물한 살에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야구장에 갔고, 혼자 야구장에 가는 날도 많았다. 나에게는 일상의 도피처이자 단순한 응원을 넘어 애정을 쏟아 붓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2018년 우승 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그땐 정말 내가 이런 기쁨을 이유로 울 수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많이 울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6차전을 예매하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했다. 참고로 나는 SK가 진 경기(2차전과 4차전)만 직관을 했다. 나 정말 패요(패배요정)였나봐……
코로나 19의 기세가 점차 꺾이면서 차츰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 경기장에서도 육성 응원이 가능하다.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연안부두'를 '떼창' 할 수 있게 되었다. 얼른 경기장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치킨을 먹으며 연승을 달리고 있는 SSG를 응원해야지.
이쯤에서 설레발 한 마디. 아, 이번 년도는 정말 지는 법을 잊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