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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Jun 27.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6월 3주)

이영지, 정한/원우, 프롬올투휴먼 외


"자, 이제 뭐가 본업이지?"


1. 이영지 - [16 Fantasy]

Jason : 참 오래도 걸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래퍼 이영지'가 무려 5년 만에 발매한 첫 앨범이다. 16살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진정성이 담긴 자전적인 이야기를 앨범 전반에서 풀어내는 모습은, 그간 예능인으로서 보여준 괄괄한 이미지와 뚜렷한 차별점을 만들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Small girl’처럼 여성으로서의 콤플렉스를 고백하면서 대중들의 공감을 유발하고 래퍼로서 설득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16(Intro)’는 얼핏 들으면 명반의 냄새를 풍기는 웅장한 내레이션으로 기대감을 잔뜩 끌어올리더니 어김없이 딱딱한 플로우를 단순히 몰아치는 특유의 랩으로 이어지면서 흥을 다 깨버렸다. 게다가 이어지는 트랙들에서는 아예 랩마저 뒤로 미루고 R&B를 위시하여 말랑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애초에 헤비한 톤과 맞지 않아서 듣는 내내 불편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래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장치들은 결국 부질없는 노력일 뿐이었다. '본업 천재'라는 수식어는 여전히 남사스럽다.





"신선한 소재, 애매하고 무난한 음악"


2. 정한 X 원우 (SEVENTEEN) - [THIS MAN]

 : 세븐틴은 유쾌한 에너지와 청량하고 아련한 정서를 전달하는 데 특화된 팀이다. 다만 그렇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컨셉은 잘 묻어나지 않는 느낌도 존재하며, 그런 시도를 자주 보여주지 않는 팀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븐틴이라는 팀이 가지고 있는 색이 매우 강한 탓이라 할 수 있겠다. 세븐틴은 세계관이 없는 팀이기도 한데, 컨셉과 스토리가 주가 되는 앨범을 시도하고 싶었던 듯하고 이를 유닛으로 발매한 건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리고 딱 시도한다는 의의에 그쳤다.


타이틀 ‘어젯밤’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신스 사운드와 라틴 리듬의 기타 조합이 신선하게 느껴지지도 조화롭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원우의 솔로 트랙 ‘휴지통’은 아이돌 앨범에서 00년대 느낌의 락 발라드를 시도한 것이 나름 신선하지만, 음악 자체는 전형적인 락 발라드에 가까워 익숙하고 무난한 느낌이다.


이 앨범이 아쉽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도시 전설에서 착안했다는 신선한 컨셉이다. 스토리 라이팅으로 유명 소설가 조예은이 참여했으며 뮤직비디오는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를 자랑한다. 독특한 소재와 흥미로운 스토리를 아우를 수 있도록 음악에도 한 방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없어서 아쉽다. 또 컨셉과 스토리를 중점으로 삼은 앨범에서 듣는 이를 설득하기 위해선 앨범의 유기성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로선 수록곡들이 너무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했던 앨범.





"제곧내 : 앨범 제목이 곧 내용"


3. 프롬올투휴먼 (from all to human) - [Legacy]

심피송 : Y2K 열풍과 함께 소환된 것이 있다. 바로 90-00년대 최전성기를 맞이했던 R&B 음악들. KISS OF LIFE부터 최근 나연의 신보까지 현재 대중음악에서 과거 R&B를 연상시키는 음악과 컨셉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 리얼사운드 R&B/Soul 밴드 프롬올투휴먼이 있다. 이들은 현대적으로 발전된 형태의 음악부터 장르의 원형까지 총망라하여 독자적으로 다채롭고도 진한 밴드의 색채를 만들어냈다.


‘Long Time No See (Feat. Junguk)’은 MIDI로 찍은 음악과는 다른 리얼 세션의 맛을 느낄 수 있고, 전반부 트랙에서 확연히 두드러지는 콰이어의 화음은 가스펠을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중반부 트랙에서는 소울적인 면모를, ‘Look So Good (Feat. 류지호 of 오월오일)’과 같은 트랙에서는 훵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편, 후반부에 위치한 트랙들은 1980년대 재즈록, 요트록, 훵크록, 퓨전재즈를 연상시키며 R&B/Soul의 확장성을 담아냈다.


[Legacy]는 세대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을 노래한다. 사랑이나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 치우쳐있는 다수의 곡과 달리 MZ, 알파 등 세대 구분이 만연한 시대에 갈등이 아닌 위로와 전승을 담아내는 특별한 동시대성이 돋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R&B/Soul의 변천사를 통해 완성된 프롬올투후먼의 음악을 착실히 보여줌으로써 [Legacy]라는 한 가지 키워드로 메시지와 음악 모두를 완벽히 표현해냈다.





"리믹스를 듣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4. Ariana Grande, Brandy, Monica - ‘The Boy Is Mine (Remix)

Jason : 한성현 평론가의 말처럼 [eternal sunshine]은 '명확한 팝 선율과 기교보다 절제된 보컬을 통한 자기표현을 먼저 챙긴' 앨범이었다. 사운드 역시 싱글 컷한 ‘yes and?’를 제외하면 대부분을 미니멀한 트랩 비트로 스케치하고 몽환적인 신디사이저로 색칠하면서 서정성을 먼저 챙겼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수려하고 부드럽게 흘러갔지만 아쉽게도 귀에 걸리는 트랙은 없었다.


반전은 리믹스에 있었다. R&B 여제 Brandy와 Monica가 함께한 동명의 곡에서 영감을 받아 ‘The Boy Is Mine’을 만든 Ariana Grande는 리믹스에서 이들을 소환했다. 한층 다채로운 보컬 라인과 애드리브로 마치 'Destiny Child'나 'TLC' 같은 R&B 트로이카를 연상케 하면서 본래 곡이 가진 90년대 R&B 감성을 증폭시켰다. 무드를 고조시키는 프리 코러스에서는 낮은음으로 하모니를 끈적하게 깔아주면서 Ariana Grande 특유의 섹슈얼한 바이브까지 돋보이게 만들었다. 단순히 차트 방어를 위한 리믹스를 넘어, 그간 미처 몰랐던 ‘The Boy Is Mine’의 매력을 일깨워준 하나의 작품이었다.





"새드에서 한 발짝 멀어진"


5. Gracie Abrams - [The Secret of Us]

 : Billie Eilish, Lana Del Rey와 함께 인디 팝 가수이면서 새드 걸 팝, 베드룸 팝이라는 용어로 분류되던 Gracie Abrams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 나왔다. 새드 걸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주로 잔잔하고 우울한 음악을 보여주곤 했는데, 훨씬 밝고, 가볍고, 쉬운 포크 팝 앨범이다. Taylor Swift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Aaron Dessner가 전체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프로듀서 때문인지 Taylor Swift의 음악에 강하게 영향받은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어쿠스틱한 컨트리 사운드인데, ‘Close To You’와 같은 트랙에서는 신스팝의 요소도 함께 드러나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us.’는 Taylor Swift가 직접 피처링에 참여하기도 했다.


‘Risk’ ‘Blowing Smoke’ ‘Free now’ 등 음악이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트랙들이 많고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유사해 기존 앨범들에 비해 단조롭고 전형적이다. 그러나 듣기 좋은 앨범임은 부정할 수 없다. 기존의 호소력 짙은 보컬부터 시원하게 지르는 보컬까지 더욱 다양해진 그녀의 보컬 스타일을 들어볼 수 있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팝 앨범으로 제격이다.





"장마철에 들어줘"


6. Raveena - [Where the Butterflies Go in the Rain]

심피송 : 이제 곧 시작될 장마의 때에 추천하고 싶은 앨범이다. 앨범 커버의 무드를 고스란히 이어오는 음악들로, 실내에서 빗소리와 함께 감상한다면 저절로 차분한 평온을 느낄 수 있으리라 확언한다. 잔잔함 가운데 분명한 킥으로 차별성을 갖춘 [Where the Butterflies Go in the Rain]. 마치 비가 오는 잔잔한 연못의 한 떨기 연꽃 같다.


앨범에 수록된 전 트랙이 비슷한 바이브의 R&B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각 트랙만의 확실한 정체성을 부여하여 지루한 인상보다는 오히려 통일성에서 오는 만족감이 크다. 첫 번째 트랙 ‘Pluto’의 하프와 신스를 통해 설정된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무드는 전 곡을 하나의 일관된 포장지로 감싸 안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후 등장하는 ‘Baby Mama’와 같이 Raveena의 뿌리인 인도를 떠오르게 하는 인도 전통악기 반수르, 타블라, 시타르, 사로드의 활용을 통한 지역적 분위기를 자아내거나, 브라스 활용이 두드러지는 재즈풍의 ‘Rise’, 앰비언트와 SFX의 사운드스케이프가 두드러지는 트랙 등이 위치하여 안정적인 다채로움이 귀를 즐겁게 한다.


잔잔하면서도 동시에 통일성 있는 다채로움으로 인해 지루하지 않고, 일관성 있는 하나의 큰 완성된 경험을 제공해 준다. 흥행을 위해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단순하고 쉬운 음악 사이의 쉼터 같은 역할을 도맡아주는 앨범이다.





※ 'Jason', '심피송', '둥'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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