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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Jun 22.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국내 상반기)

aespa, archie, JINBO.Hersh/PoPoMo 외


"에스파의 완전한 독립에 박수를"


1. aespa - [Armageddon]

도라 : 에스파 하면 광야, 광야 하면 에스파였다. 그러나 이수만 프로듀서의 부재 이후 광야와 멀어져 가는 에스파를 볼 수 있었다. 세계관과 관련한 가사는 존재하지만, 이미지적으로 광야와 멀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는데, 그와 동시에 ‘Spicy’, ‘Better Things’를 통해 'easy'하게 대중들과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가 느껴졌다. 해당 시도가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역시 마음속 한구석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나의 예상이 무색하게도 에스파의 광야가 '2막'을 열었다!


정확하게는 '이수만 프로듀서가 없는 에스파의 광야'가 새롭게 열렸다는 점에서 박수가 절로 나왔다. 특히, 보는 이로 하여금 약간은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던 멤버들 고유의 능력이나 설정들을 확장함과 동시에 융합시켜 주는 매개체가 '유머'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냥 유머가 아닌 블랙 코미디를 활용하여 보여준 다채로운 콘텐츠는 '귀엽지만 소름 끼치는' 무드를 공유하는데, 그 'Creepy'함이 타이틀 곡 ‘Armageddon’의 코스믹 호러와 맞닿는다는 점에서 이마를 탁 치게 된다. 물론, [Drama]부터 느꼈던 수록곡에 대한 아쉬움은 건재했다. 다만, '점차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서기 위한 발판으로써 가벼운 무드의 트랙을 사용했을 것'이라 가정한다면 이해가 가는 선택이었다. 에스파는 '이수만 프로듀서의 손길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걸그룹으로 불렸으나 [Armageddon] 음반을 통해 그에게서 온전한 독립을 이루어냈다. 자신들의 배경을 모두 버리고 재출발하는 것이 아닌, SMP의 특징은 받아들인 채 '에스파만의' 세계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눈이 아닌 귀로 느끼는 미학"


2. archie - [here, this is happening (Soundtrack)]

등구 : 당신이 생각하는 '예쁜 소리'는 무엇인가? 감히 장담하건대 [here, this is happening (soundtrack)]은 당신이 생각했던 것에 정확히 부합하거나 그 범위를 넓혀줄 앨범이다. 최근 죠지의 앨범 크레딧에서 자주 보이던 이름인 프로듀서 archie의 첫 개인 앨범은 앨범명에 붙은 '사운드트랙'이라는 단어처럼 그가 지향하는 사운드가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죠지가 피처링한 익숙한 R&B 곡 ‘lens’, 슈게이징이 가미된 ‘after gazing sun’과 함께 앨범은 인디트로니카 장르 안에서 온갖 미적인 소리들을 담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재현해 낸 듯한 청아한 벨소리와 SF 영화를 떠올리는 몽환적인 전자음,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로 포크까지 나아가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한다. 또한 공간감을 통해 비현실적인 느낌을 살리며 감각적인 사운드를 완성해내고 있다. 대중적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마치 작곡가의 하드털이를 듣는 듯한, 소스들의 집합체 같은 앨범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단순히 '예쁜 소리'를 들려주는 것에 집중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미학적인 소리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이 앨범 안에 있다고. 





"결국 중요한 것은 본질"


3. JINBO, Hersh, PoPoMo - [PoPoMo]

데이먼 : JINBO의 음악은 한결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리스너들, 심지어는 아티스트들 사이에서도 아이코닉한 존재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계속해서 변하는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R&B라는 장르적인 본질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 Hersh와 함께한 소울 앨범 [PoPoMo]에서도 그는 정공법을 택했다. 물론 [PoPoMo]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소울 음악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가령 ‘All That You Wanted’에서의 디스코 훵크나, ‘Tonight’에서는 신스 훵크 등 트랙마다 여러 장르적 요소를 활용해서 다양한 테마를 표현하는데, 때문인지 그간에 소울 장르를 다뤘던 여타 앨범들보다 비교적 편하게 다가온다. 앨범의 전체적인 메시지 또한 하나의 큰 시류를 짚어내기보다는, 일상에서의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집중하며 보다 친숙한 이미지로 리스너들에게 접근한다. 그럼에도 소울 장르를 연상시키는 브라스와 빈티지한 신스의 운용, 보컬이 돋보이는 트랙 프로듀싱은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며 이 앨범의 정체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친절하지만 본질을 잊지 않고 명확하게 리스너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얼터너티브로 대표되며 점차 장르적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R&B 시장 속에서, 구태여 장르적 색채를 드러내는 앨범을 가져오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장르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며 조금씩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국내 R&B 시장에서 장르적 본질을 유지하고자 하는 아티스트의 노력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JINBO가 가져온 이 앨범은 흔들리는 R&B 시장의 중심을 잡아주는 음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본다.





"완벽한 실력으로 구현된 Y2K 디바"


4. KISS OF LIFE - ‘Midas Touch’

쥬니 : 최근 2000년대 초반 스타일인 일명 Y2K가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Y2K는 뉴진스, 라이즈, (여자)아이들 등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재해석된 Y2K 컨셉을 앞세우며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키스오브라이프는 그저 비주얼적인 컨셉 뿐만이 아닌, 음악적으로도 Y2K를 완벽함에 가깝게 구현해 냈다. ‘Midas Touch’의 첫 인트로부터 2000년대 해외 음악에서 자주 사용 된 코드진행과 신스 사운드들을 차용하며 한국인들에게는 애니콜로 기억된 그 시절의 음악 스타일을 재현했다. 또한 곡의 전반적인 무드가 달라지며 보컬의 기교를 보여주는 것 대신 탄탄한 실력 위주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2000년대 초반의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든 향수에 젖을 수 있는 곡을 가져와 많은 사람들에게 당당히 자신의 그룹명을 알렸다.


뮤직비디오에서는 걸리시 펑크 무드의 믹스패션을 시작으로 스쿨룩, 긱시크룩, 레이스 룩 등 다양한 패션을 선보였다. 또한 전반적으로 골드빛이 섞인 화려한 색감, 화려한 조명의 무대, CG처리된 듯한 바이크 장면 등을 선보이며 Y2K가 가진 가장 큰 요소인 비주얼에도 신경을 써, 전체적인 컨셉을 더욱더 돋보이고 완성도 있게 만들어줬다. 그 시절 최고의 디바로써 극찬받던 브리트니스피어스와 이효리를 연상시키는 ‘Midas Touch’는, 키오프를 대중에게 신인이 아닌 음악적 폭이 넓은 실력 좋은 아티스트로 각인시킬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한번 맛보면 계속 생각나는 평양냉면, 마라탕 그리고 뉴진스"


5. NewJeans - [How Sweet]

카니 : ‘How Sweet’는 ‘OMG’, ‘ETA’, ‘Super Shy’ 같은 즉각적인 반응을 터뜨리는 킬링 포인트가 없어 다소 밋밋한 첫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곧 밋밋함은 사라지고 ‘How Sweet’의 서서히 잠식되는 보컬과 분위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이 곡은 마이애미 베이스를 부드럽게 다듬고 레트로한 킥스네어, 점차 가라앉는 분위기의 보컬이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선공개 곡 ‘Bubble Gum’은 신스펑크 사운드에 산들거리는 멜로디를 더해 싱그러운 초여름의 향기를 담아낸 여운이 남는 마성의 트랙이었다.


뉴진스의 음악이 유독 트렌디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양한 장르를 활용해 매번 신선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르 구분이 의미 없게 느껴지듯 음악은 여러 장르의 뿌리가 서로 엉키며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가고 있는 그룹은 단연 뉴진스다. 이들은 과거의 음악을 단순히 재현한 것이 아닌 그 속에서 새로운 사운드 밸런스를 완성하기 때문에 뉴진스라는 강한 자력에 속수무책으로 끌리는 거 아닐까. 그리고 그런 끌림이 언제나 기분 좋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사운드를 씹고 뜯는 재미"


6. NMIXX - [Fe304:BREAK]

아민 : '믹스팝'을 완성하기 위한 엔믹스의 성장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데뷔 초 ‘O.O’ 시절에는 다이나믹한 사운드 변화로 인해 믹스팝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대중성을 잡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 ‘Roller Coaster’부터는 곡의 시작부터 두 장르를 섞어버리는 방식을 시도했고 전보다 자연스럽긴 했으나 믹스팝의 느낌은 약해진 듯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엔믹스는 드디어 이번 앨범에서 타협점을 찾은 듯했다.


특히 이번 타이틀곡 ‘DASH’는 스위칭 전 장르인 올드힙합 베이스를 끝까지 유지하며 부담스럽지 않을 선에서 믹스팝의 느낌을 살려냈다. 결국 각각의 사운드를 강조하면서도, 어지러운 느낌 없이 조화로울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낸 것이다. 또 저지 클럽, 컨트리 팝 등 다양한 사운드 구성으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이덴티티의 완성을 알린 이번 앨범은 그들의 상승세라는 완전한 시작을 알렸다. 만약 다채롭게 휘몰아치는 사운드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단연코 이 앨범을 추천하고 싶다. 





"성공적인 첫 만남 정공법"


7. TWS (투어스) – [Sparkling Blue]

심피송 : 모두에게 처음은 쉽지 않지만, 보통은 속으로만 그 어려움을 삼키곤 한다. 그러나 TWS는 선공개 곡이었던 ‘Oh Mymy : 7s’의 첫 소절부터 "안녕하세요"라고 정중히 인사를 건네며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라며 데뷔의 떨리고 설레는 순간을 당당하고 솔직하게 노래했다. 보통 우리 그룹이 얼마나 멋진지를 어필하기 바빴던 다른 가수들의 데뷔곡과는 다른 정공법이다. 이러한 선택은 대중에게 실력과 완성도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겨누게 하기보다는, 속된 말로 '신인의 맛'으로 다가와 보다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귀엽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드라마 오프닝을 떠올리게 하는 타이틀곡의 인트로 소스만으로도 위와 같은 메시지를 청각화하기에 충분했고, 후렴구의 어절마다 끊어지는 박자는 쾌감을 선사하는 와우 포인트를 만들어내며 확실한 첫인상을 심어주었다. 풋풋함을 담은 가사와 통일된 무드로 물 흐르듯이 연결되는 이지리스닝 트랙들은 부담스럽지 않게 앨범을 리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억지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럽고 솔직함을 추구한다는 TWS의 지향점을 체감할 수 있었다. 데뷔라는 특수성을 기회로 활용하여 팀 컬러를 영리하게 풀어내고, 1월 발매로 첫 시작을 앞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기에도 탁월했던 발매 시점까지 인상적인 앨범이었다.





"조밀해져 갈 음악에 대하여"


8. 김반월키 - [빈자리]

베실베실 :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음악 감상에 있어 가사는 그저 무의미한 요소일 뿐이라고 생각했었건만 정작 그 가사가 내 마음을 강하게 울릴 때라거나, 크게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어떤 장르가 그 어떤 곡들보다 나의 세계를 뒤흔드는 그런 때 말이다. 김반월키의 [빈자리]가 나에게 있어 바로 그 순간이 된 듯하다. 공중도둑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 세련된 진행과 포크라는 포장지 속에 담아둔 다양한 장르와 같은 음악 내적인 요소들을 굳이 짚어가며 언급하지 않아도 이 음악은 그냥 기타 리프와 멜로디 자체로도 너무나도 빼어나며, 지극히 아마추어스러운 가사 역시 그렇기 때문에 어떤 노랫말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근 몇 년간 발매된 한국 앨범 중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동시에 감동적인 앨범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그의 가사처럼) 이 앨범은 시간이 흘러도 절대 가치가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조밀해질 뿐.





"왑띠 감성 모르면 나가라"


9. 왑띠 - [우리의 친구 머피처럼]

미온 : 왑띠는 '찐따 감성'을 내세운 음악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었다. 주로 단순하고 유쾌한 형식의 인디록을 통해 그만의 감성을 녹여냈지만,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밴드들이 많았기에 특별한 인상을 자아내지는 못했었다. 그런 그가 새로이 내놓은 것은 이모(emo) 락인데, 그 형태는 이전과 달리 실험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딥한 가사를 담아낼 수 있는 이모 락을 중심으로 두면서도, 불규칙한 리듬 패턴의 매스 록, 속도감 있는 팝 펑크, 긴 러닝타임의 포스트 록 등을 접목시켜 새로움을 더했다. 또, ‘파란LED’에서는 부드러운 아르페지오 기타 라인이 특징인 미드웨스트 이모를 구현해 국내 록씬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이모 장르를 녹여내기도 했다. 필자는 개성 있는 음악이야 말로 음악씬의 발전을 이끈다고 생각하는데, 비슷한 캐릭터들이 넘치는 인디씬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음악은 이런 음악이 아닐까.





"노을은 지지 않는다"


10. 파란노을 (Parannoul) - ‘황금빛 강 (Gold River)

Jason : 과잉이 미덕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노을을 보다가 감정이 북받쳐 오르면 소리 내어 울어야 마음이 풀리는 것처럼. 파란빛이 아닌 황금빛 노을이 짙게 깔린 본작도 그렇다.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보다 더욱 거칠어진 노이즈와 블랙게이즈 밴드만큼 강렬하게 몰아치는 템포는 분명 과함의 영역에 있다. 그렇지만 윤슬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는 기타 리프와 물결처럼 나른하게 흘러가는 보컬이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그것들을 낭만으로 승화시킨다.


또한 [After The Magic]을 지나면서 감정은 몰라보게 성숙해졌다. 적절한 타이밍에 완급 조절을 가져가면서 기승전결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메아리처럼 울리는 코러스로 죽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외친다. 열등감과 무기력에 빠져들던 그가 비로소 희망찬 메시지로 청자를 끌어당기는 힘을 갖춘 셈이다. 일시적 우울감이 형성한 연대를 통해 얻은 그의 위치는 앞으로도 견고할 것으로 보인다.





베실베실 선정 <2024 상반기 국내 앨범 Best 10>

Archie - [Here, this is happening (Soundtrack)

ARTMS - [Dall]

Herhums - [To Save Us All]

KISS OF LIFE - ‘Midas Touch’

구름 - [나폴리탄 악몽 산책]

김반월키 - [빈자리들]

왑띠 - [우리의 친구 머피처럼]

요 - [희망열차를 타고 우주로 가요]

파란노을 - ‘황금빛 강 (Gold River)’

팔칠댄스 (87dance) - [Youth Heritage]


베실베실 선정 <2024 상반기 국내 앨범 Worst 10>

ASMRZ(다나카&닛몰캐쉬) - ‘잘자요 아가씨 (Prod. 과나)’

BADVILLAIN (배드빌런) - [OVERSTEP]

Men’s Tear (맨스티어) - ‘AK47 MEGA MIX’

RIIZE - ‘Love 119’

UNEDUCATED KID - [UNEDUCATED WORLD 2]

Way Ched - [BLEND]

도경수 (D.O.) - [성장]

뱃사공 - [Mrfuck]

씨스타19 - ‘NO MORE (MA BOY)’

양홍원 - [SLOWMO]





by. 고멘트 <이 주의 신보 리뷰>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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