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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Jul 21. 2024

“너를 만난 별난 사건”: 레드벨벳의 10주년

Red Velvet(레드벨벳) – [Cosmic]

“너를 만난 별난 사건”: 레드벨벳의 10주년

Red Velvet(레드벨벳) – [Cosmic]


Red Velvet(레드벨벳) - [Cosmic]


1. 걸그룹의 10주년이란


‘Happiness!’를 외치던 소녀들이 어느새 데뷔 10주년을 맞이했다. 너무 빠른 시간의 흐름에 놀라면서도 그들에 대한 감탄이 크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걸그룹의 10주년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 세대의 걸그룹들을 떠올려보면 대개 7년의 문턱을 넘지 못한 팀들이 대부분이며, 데뷔 10주년을 화려하게 자축한 팀은 소녀시대나 에이핑크 정도가 전부다. 


레드벨벳이 10주년을 장식할 수 있었던 기반은 안정적인 팬덤의 크기와 음악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에 있다. 10주년 기념 투어를 개최할 만큼의 안정성과 높은 퀄리티의 앨범 발매로 계속해서 대중들이 신보를 기다린다는 것은 자연스레 팀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여전히 독자적인 영역을 보장한다.  


이들의 10주년 앨범 발매는 레드벨벳뿐만이 아니라 걸그룹이라는 영역의 수명 연장에도 의미가 있다.  직속 후배인 에스파를 비롯한 아이브, 뉴진스, 르세라핌 등 4세대 걸그룹들의 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레드벨벳, 트와이스, 블랙핑크 등 3세대라 일컫는 팀들이 꾸준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분명 무척 유의미한 성과다. 




2. 우아하게 정리한 10년의 발자취: ‘Cosmic’

Red Velvet(레드벨벳) - [Cosmic]

지금의 정체성을 확립한 ‘Ice Cream Cake’와 압도적인 대중성의 ‘빨간 맛’, 독보적인 영역 확장의 [Perfect Velvet]과 흥미로운 시도로 감탄을 자아낸 ‘Feel My Rhythm’까지 적절한 타이밍에 큰 한 방을 선사했던 레드벨벳이다. 10주년 기념 앨범 [Cosmic]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거나 분위기를 환기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10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감사와 자축이라는 작품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Nth’, ‘Mini Album’ 등의 별도의 표기를 제외한 것도 이러한 의도가 담겨있는 듯하다. 


타이틀곡 ‘Cosmic’은 비교적 최근작인 ‘Queendom’이나 ‘Feel My Rhythm’처럼 밝은 분위기의 레드와 고급스러운 벨벳의 우아함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몽환적인 동화를 만든다. 다소 냉소적인 초반부를 지나 점점 따뜻한 분위기로 전환되고, 후렴에 이르면 큰 손동작과 함께 화려한 디스코가 만개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보컬의 하모니가 흘러나오며 사운드를 압도하고, 10년을 쉬지 않고 이어 온 한 팀으로서의 역량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여전히 예전과 같은 문법을 사용하고 있는 가사도 흥미롭다. 후렴의 ‘조금 더 머무르면 어때? 나의 별이 조금 외롭대’와 곡의 클라이맥스인 ‘함께 떠나자 해 보지 못한 것들 찾자 해’ 등의 가사는 이 팀이 꾸준히 표현하고자 했던 거시적인 비유와 간접적인 묘사가 잘 드러나 한결같은 ‘동화 감성’을 자극한다. 


타이틀곡과 결을 같이 하는 수록곡들도 충분히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Sunflower’는 이전 앨범의 ‘Huff n Puff’, ‘Lucky Girl’, ‘Rainbow Halo’처럼 필수적으로 삽입되어야 하는 환기 트랙으로, 감성적인 가사와 대비되는 타격감이 센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Last Drop’에서는 성숙해진 하모니를 들려주면서 ‘Love Arcade’에서는 팀 특유의 재치와 엉뚱함을 꺼내 보이는 그 간극도 재미있으며, 마무리를 장식하기에 딱 알맞은 알앤비 트랙 ‘Night Drive’까지 진행이 매끄럽다. 따뜻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멤버들의 하모니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 [The ReVe Festival 2022 - Feel My Rhythm]을 떠오르게 하는데, ‘Feel My Rhythm’이 봄의 정취라면 ‘Cosmic’은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전작의 정규 앨범인 [Chill Kill]처럼 규모나 분위기에서 오는 압도감은 부족하지만, 한 팀의 10주년을 자축하고 기념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다.




3. 또 다른 레드벨벳을 기다리며


Red Velvet(레드벨벳) - [Chill Kill - The 3rd Album] / [Cosmic]

‘Chill Kill’과 ‘Cosmic’ 모두 꽤 만족스러운 작품이지만, 음원 성적이나 대중의 관심도를 고려하면 아쉽다고 느껴질 수 있다. ‘빨간 맛’의 강렬한 훅이나, ‘Feel My Rhythm’의 획기적인 기획은 부재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중의 직접적인 지표나 다름없는 음원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레드벨벳의 디스코그라피는 이전에도 안정적이라기보단 나름의 요동이 있었기 때문에 근래의 음원 순위가 그들의 위기나 한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나는 ‘Dumb Dumb’ 뒤엔 ‘7월 7일’의 눈물 젖은 감성이 있었고, ‘짐살라빔’의 당황스러움은 ‘Psycho’ 같은 수작을 위한 큰 그림이었다. 앞으로 레드와 벨벳을 또 어떤 방식으로 믹스 앤 매치하는가, 타 걸그룹과의 차별화를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에 따라 대중의 만족도와 레드벨벳의 경쟁력이 정해질 것이다. 이후에 또 어떤 음악을 내놓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점이 계속 이들의 신보를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다. 


소녀시대의 ‘FOREVER 1’이나 카라의 ‘WHEN I MOVE’ 등을 통해 알 수 있듯, 높은 연차의 팀들은 소위 ‘기념작’의 형태로 활동 자체의 의의, 팀의 서사, 대중과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등을 중심으로 소통하고 있다. 확고한 콘셉트 수립이 큰 강점이었던 레드벨벳은 이 후반전을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갈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서 레드벨벳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이 자리에서 ‘조금 더 머무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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