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을 통해 바라본 2024 음악 트렌드
언젠가부터 필자는 음악을 들을 때 틱톡에서 흥할 것 같은 부분을 찾고, 과연 이 곡이 ‘틱톡 노래’가 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 생겼다. 직관적이고 반복적인 탑라인과 중독성 강한 후렴구가 틱톡 챌린지와 결합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틱톡 노래’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자리 잡았다는 확신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티스트들이 틱톡 바이럴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틱톡만을 노린 노래’가 양산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러한 과도한 상업적 접근은 비슷한 스타일의 곡들이 범람하게 만들었고, 음악의 다양성이 축소되면서 대중음악 퀄리티가 저하된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최근 틱톡 크리에이터들이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역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Addison Rae는 2019년부터 유행하는 모든 음악에 맞춰 영상을 제작하며 독창적인 패션과 뷰티 트렌드를 선도해 현재 틱톡에서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녀는 GenZ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Charli XCX의 ‘Von dutch’ 리믹스에 참여했고, 이어 자신의 곡 ‘Diet Pepsi’를 발매하며 음울하고 몽환적인 매력을 지닌 섹시한 아티스트로 정체성을 확립했다. 틱톡과 음악을 영리하게 활용해 자신을 재창조한 결과 Billboard HOT 100에서 70위를 기록하고, 2024 MTV VMAs에 참석하는 등 틱톡에서 주류 음악계로 영향력을 점차 확장 중이다. 비슷한 사례로 Bella Porch는 립싱크 영상이 바이럴되며 주목받은 후 데뷔 싱글 ‘Build a Bitch’를 발매하며 뮤지션 활동을 시작했고, Dixie D’Amelio는 동생과 함께 댄스 챌린지 영상을 포스팅하며 스터덤에 오른 후 ‘Be Happy’를 발매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틱톡은 단순한 바이럴 플랫폼을 넘어 음악 시장의 흐름을 다방면으로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현 음악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틱톡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틱톡을 통해 음악을 소비하는 흐름과 발맞춰 아티스트들이 틱톡을 활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주요 이점은 무엇일까?
1. 차별화된 포지셔닝 어필
먼저 아티스트들은 틱톡을 통해 자신만의 포지셔닝을 명확하게 구축하고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이는 R&B의 부드러움, 힙합의 거친 질감, 전자음악의 폭발성 같은 특정 장르의 음악적 특성과 비주얼을 결합한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Tommy Richman은 2000년대 빈티지한 사운드를 재해석하기 위해 ‘MILLION DOLLAR BABY’에서 R&B, 힙합, 훵크 요소를 결합한 장르 블랜딩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왜곡된 베이스 노이즈를 활용해 곡에 거친 텍스처를 더했는데, 마치 아날로그 기기나 VHS 테이프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질감은 틱톡의 아날로그 필터나 빈티지한 영상을 덧입히기에 제격이었다. 이처럼 독특한 사운드 디자인 덕분에 Tommy Richman은 레트로한 힙합 소울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또한 Y2K 열풍이 지속되는 가운데, Tate Mcrae는 2000년대 R&B 감성을 자신만의 색깔로 재해석했다. 데뷔 초반에는 팝 중심의 음악으로 활동하며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기 어려웠지만, 이후 발표한 ‘Greedy’와 ‘It’s ok I’m ok’를 통해 성숙하고 농염한 R&B 스타일로 전환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이러한 변화는 짧은 틱톡 영상 속에서도 그녀의 보컬과 리드미컬한 비트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복고풍 패션과 메이크업 영상과도 잘 어우러질 수 있었다. 이로써 Tate Mcrae는 틱톡과 함께 새로운 음악적 포지셔닝을 확립하며 앞으로의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쌓을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들은 단순히 과거 트렌드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대의 융합을 통해 신선한 음악적 방향을 제시하며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결국, 틱톡은 단순히 음악을 홍보하기보다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함으로써 음악 시장에서 독자적인 포지셔닝을 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2. 발견과 재조명의 장
틱톡은 오래된 아티스트와 음악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신예 인디 아티스트들이 주류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다. 틱톡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틱톡을 통해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하고, 63%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틱톡에서 접한다고 답했다. 이는 오늘날 틱톡이 음악 중심 플랫폼인 사운드클라우드나 스트리밍 서비스보다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데 더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신예 아티스트들이 단순히 스트리밍 플랫폼에만 의존하는 것을 넘어 틱톡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주목받을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틱톡이 포크나 발라드 같은 감성적인 장르를 통해 서정적인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틱톡은 짧고 순간적인 몰입감을 강조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음악의 감정적인 포인트를 부각할 수 있는 곡들이 쉽게 바이럴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디 포크 아티스트 Gigi Perez의 ‘Sailor Song’은 어쿠스틱 기타 두 대와 파도처럼 흔들리는 보컬로 단출하게 구성되었지만, 그녀는 이 곡을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감정과 연결해 홍보하며 더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틱톡 사용자들은 그녀의 음악에 자신을 투영하며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인디 밴드 Surf Curse의 ‘Disco’는 활기찬 기타 리프와 포스트 펑크 특유의 반복적인 리듬감으로 즉각적인 흥겨움을 전달하여 틱톡의 댄스 챌린지에 쉽게 활용되었다. 이처럼 틱톡의 짧은 영상 포맷에 최적화된 감정선을 활용하면서 두 아티스트 모두 처음으로 Billboard HOT 100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는 틱톡의 노출 효과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사례로, 지역 소극장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아티스트들이 이제 틱톡을 통해 글로벌 팬층과 연결되며 활동 반경을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창구를 마련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3. 본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전자음악과의 시너지
틱톡은 특히 전자음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짧고 간결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틱톡의 특성상 사용자들은 빠른 전개를 가진 음악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에 원곡의 템포를 인위적으로 높인 ‘Sped Up’ 버전과 다양한 리믹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아울러, 무질서적인 비트와 실험적인 사운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기존 전자음악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특히 Clean Bandit의 ‘Symphony’는 2017년에 발매된 곡임에도 청량한 사운드와 극적인 전개가 주는 시원한 매력 덕분에 최근 틱톡에서 다시 사랑받았다. 전자음악의 사운드적 재미 요소가 더욱 환영받는 흐름이 선명해진 것이다.
대중적으로 친숙한 전자음악뿐만 아니라, 초창기 레이브 문화와 현 틱톡 문화가 연결되면서 화려한 클럽 비트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Charli XCX는 한 인플루언서가 그녀의 곡 ‘Apple’에 맞춰 머리 위로 상상의 사과를 올리는 단순한 동작을 시도한 것을 채택해 틱톡 사용자들과 소통했다. Charli XCX의 차가운 하이퍼팝 이미지와 대비되는 자연스럽고 소탈한 콘텐츠는 그녀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더해줄 수 있었다. 한편 Odetari의 ‘Keep Up’은 게임 속에 들어온 듯한 혼란스러운 스타일이지만, 글리치한 사운드와 변화무쌍한 비트 덕분에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이 곡에 맞춰 도전적이고 유머러스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전자음악의 폭발적인 에너지는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틱톡의 본질과 완벽히 부합하며 앞으로도 전자음악이 틱톡에서 더욱 환영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정체된 전자음악에 새로운 활로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아티스트들은 이 기회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해외에서는 틱톡이 10대들의 주요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반면, 한국에서는 음악과 영상을 제작해 업로드한다는 것이 다소 오글거린다는 인식이 여전해 틱톡에 대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러나 틱톡이 아직 완전히 대중화되지 않았을 뿐,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그램 릴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틱톡과 유사한 콘텐츠 형식이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K-POP은 글로벌 팬덤 확보를 위해 신곡 제작 단계에서부터 틱톡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고려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과거에는 곡을 완성한 뒤 홍보 방안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앨범 제작 과정에서부터 틱톡과 연계한 챌린지 마케팅을 계획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아일릿의 ‘Magnetic’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10대와 틱톡 챌린지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곡으로 손가락을 활용한 킬링 포인트 안무는 틱톡에서 폭발적으로 콘텐츠를 생성했고, K-POP 데뷔곡 최초로 UK 싱글 차트와 Billboard HOT 100에 진입하며 짧은 시간 안에 글로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반면, 오직 챌린지 마케팅을 위해 신곡을 발매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소미의 ‘Ice Cream’은 발매 전부터 챌린지를 선공개하며 후킹한 멜로디에만 집중하기 위해 코러스의 싱잉 파트를 제거하고 숏폼 콘텐츠에 최적화된 퍼포먼스로 빈 코러스를 채우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음악에 대한 소비가 일회성에 그치면서 음악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틱톡 음악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틱톡과 K-POP이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틱톡에 최적화된 챌린지형 음악을 제작하기보다 해외의 틱톡 사례처럼 음악 자체의 완성도가 높은 곡으로 챌린지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흐름이 필요하다.
다만 틱톡을 활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유명세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좋은 곡을 발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음악적 실력과 뉴미디어 시장에 대한 감각적인 이해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틱톡에서 성공할 수 있게 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틱톡을 발판으로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매력이 다른 음악으로의 소비로 꾸준히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Benee의 ‘Supalonely’는 가벼운 멜로디가 팬데믹 동안 집에 갇힌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은 정서적 요구를 충족시키며 틱톡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아 유튜브와 스포티파이에서 수억 회의 조회수와 스트리밍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4년 9월에 발매된 ‘Sad Boiii’는 느린 템포와 우울한 분위기가 틱톡의 주된 흐름과 어긋나면서 충분한 관심을 끌지 못했고, 그 결과 유튜브와 스포티파이 모두 저조한 성적에 머물며 틱톡에서의 인기가 다른 음악 활동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틱톡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인 커리어와 지속 가능한 성과를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티스트로서 커리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틱톡의 일시적인 트렌드에 기대지 않고 팬들과 정서적 교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라이브 공연을 통해 일관된 음악적 정체성과 스토리를 전달하고, 팬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들어 팬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전략도 필요하다.
Chappell Roan의 사례는 이러한 전략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녀는 Olivia Rodrigo 콘서트 오프닝 무대와 코첼라, 롤라팔루자 같은 대형 페스티벌에서 매번 새로운 컨셉을 시도하며 퀴어 아이콘으로서 독보적인 정체성을 대중에게도 깊이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녀의 공연 영상과 음악이 틱톡에서 바이럴되면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무대는 팬들로 하여금 다음 음악적 여정을 기대하게 했고, 이는 코어 팬층을 형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틱톡이 단순한 유행의 장을 넘어 지속 가능하고 건전한 음악을 소비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음악의 완성도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플랫폼에서 전략적으로 활동하며 대중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향성을 유지한다면 틱톡을 통해 장기적으로 음악을 소비하고 팬덤을 형성하는 긍정적인 선순환이 예상보다 빠르게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by. 율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