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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Oct 23.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10월 3주)

Billlie, KISS OF LIFE, 세븐틴 외


"그럴싸한 겉포장을 뚫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


1. Billlie (빌리) - [Of All We Have Lost]

하울 : Billlie의 디스코그래피는 그동안 '강렬함', 그리고 '유니크함'에 포커스를 맞춘 곡들(‘RING x RING’, ‘GingaMingaYo (the strange world)’ 등)이 세계관의 큰 틀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세계관과 호불호가 심했던 타이틀곡들은 대중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걸그룹의 이미지와는 꽤나 거리감이 있었다. 건강 문제로 휴식기를 가졌던 수현과 수아가 팀에 복귀하면서, 세계관은 잠시 제쳐두고, ‘부록 (appendix)’이라는 형태로 다시 팀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기념한다. 선공개곡 ‘trampoline’과 타이틀곡 ‘기억사탕’은 '유니크함' 대신 '몽환'과 '섬세함'을 강조하며 "사실 Billlie는 이런 음악도 잘한다"는 것을 대중에게 어필하고자 했다. 

 

‘기억사탕’은 Billlie의 소속사 미스틱과 크고 작은 인연이 있었던 아이유가 작사에 참여해 '1년 7개월 만의 완전체 활동'이라는 서사를 더욱더 드라마틱하게 완성시킨다. 구슬이 떨어지는 듯한 모습을 구현한 피아노 어프로치와 두껍게 올린 베이스라인, 그 위로 아기자기한 가사가 더해지면서 곡 자체는 정교하게 짜여진 뜨개질 작품을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끝없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곡의 구조는 일부 멤버들의 부정확한 발음을 오히려 더 도드라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후렴 구간에서는 가성 중심으로 보컬을 활용하는 등 멤버들조차도 제대로 곡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선공개곡 ‘trampoline’은 군더더기를 빼고 유연하게 힘 조절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인상적이긴 하나, 펑키한 미디움 템포 곡이 대중에게 그룹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하는 현시점에서는 다소 무난하고 평이하게 느껴진다. 

 

'appendix'라는 부제를 걸었다는 점에서 이번 활동은 Billlie에게 쉬어가는 타이밍, 혹은 그룹을 재정비하는 타이밍과 같다고도 볼 수 있다. 이미 [side-B : memoirs of echo unseen]으로 팀의 공백을 메꾸려고 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활동은 사실상 Billlie의 리브랜딩, 혹은 새로운 페이즈의 시작이라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사실 이들이 ‘trampoline’과 ‘기억사탕’을 더블 타이틀곡으로 선정한 배경에는 ‘a sign ~ anonymous’, ‘nevertheless’ 등 팬들에게서 꾸준히 사랑받아 왔던 미디움 템포의 수록곡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는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어색하게 노래하는 멤버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이러한 곡들이 Billlie만의 정체성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진 물음표가 뜨는 상황. 여러 가지 컨셉을 찍먹하기보다는 한 가지 노선 안에서 확실하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는 날카로움이, 그리고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힘이 다시금 필요한 시점이다.





"타이틀이 이븐하게 익지 않았네요"


2. KISS OF LIFE - [Lose Yourself]

 : 올여름 ‘Sticky’로 메인스트림에 확실히 안착한 KISS OF LIFE (이하 키오프)가 '물 저을 때 노 젓는다'는 말과 어울리게 3개월 만에 신보를 내며 굳히기 한 판에 들어갔다. 데뷔부터 꾸준히 Y2K를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키오프는 90~00년대 R&B와 애니콜 감성의 정석인 ‘Sugarcoat (NATTY Solo)’로 주목받은 이후 밀레니얼 팝이 바로 연상되는 ‘Midas Touch’을 발매하는 등, Y2K 스타일을 기반으로 2000년대의 미학을 보여주며 그들만의 테이스티를 만들고 있다. 이번 컴백 곡 ‘Get Loud’ 역시 00년대 댄스 팝이 떠오르는 빈티지한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으로, Y2K 스타일의 연장선을 이어간다.


이번 신보로 키오프가 가고자 하는 노선을 확실히 하며 그룹의 색채는 더욱 짙어졌지만 타이틀곡의 매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따른다. 4월에 발매된 ‘Midas Touch’ 또한 Britney Spears가 바로 떠오르는 밀레니얼 팝을 정확하게 재현했지만 ‘Oops!... I Did It Again’, ‘Lady Marmalade’ 등 레퍼런스 곡이 뚜렷하게 들리며 기성곡을 K-POP 화 시키는 데에 그치며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Get Loud’ 역시 Jamelia의 ‘Superstar’가 연상되지만 그 이상의 매력은 없고, 타이틀 자체의 임팩트가 부족하다. 벌스와 프리코러스의 빌드업은 좋았으나, 훅이 단조로워 곡의 흐름을 끊어버리고, 결과적으로 곡이 다소 일반적이고 루즈하게 느껴지게 한다. 앞에서 완성시킨 빌드업을 훅에서 시원하게 터트리고 탑라인을 더욱 캐치하게 만들어 신선함을 더했다면 타이틀곡의 매력이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전작인 ‘Bad News’나 ‘Nobody Knows’는 Y2K 감성에 키오프만의 개성을 더해 신선함을 선사했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오프의 음악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는 멤버들의 뛰어난 실력과 매력적인 수록곡들 덕분이다. 미드템포의 그루비한 슬로우잼 R&B의 ‘Chemistry’은 몽환적인 멤버들의 음색의 매력을 느끼게 하고, 아날로그 신스베이스, 드럼머신이 조화를 이루는 ‘Too Many Alex’는 키오프의 통통 튀는 매력을 보여준다. EDM과 팝의 요소를 결합한 ‘No One But Us’는 멤버들의 화려한 보컬 실력을 보여주며 찐한 POP의 느낌을 담아냈다. 타이틀 곡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좋고, K-POP에서 K를 떼도 손색없을 만큼 본토의 POP 음악을 선보인 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Midas Touch’에 이어 ‘Get Loud’까지 Ep 앨범의 타이틀로 밀레니얼 팝을 가져온 이들의 다음 챕터가 궁금하다. 키오프가 밀레니얼 팝 디바 이미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대중은 이들의 뛰어난 실력과 중소 기획사 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수준의 음악적 퀄리티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Y2K에 머무르기보단, 다양한 장르로 확장해 보다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면 대중은 키오프가 보여줄 다채로운 음악에 다시금 빠져들지 않을까, ‘Sticky’가 여전히 차트 35위를 지키고 있는 결과가 말해주지 않는가!





"위 더 워스트 뮤직"


3. 세븐틴 (SEVENTEEN) - [SPILL THE FEELS]

카니 : 데뷔 리얼리티 프로그램 <세븐틴 프로젝트>에서, 속초 바다 앞에 앉은 멤버들은 누군가 초심을 잃으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바다에 던져버리자고 다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컨셉 포토가 공개되면서 팬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SPILL THE FEELS]는 "I FELT HELPLESS"를 애너그램으로 풀어낸 앨범으로, 감정을 쏟아내면 희망찬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와 불안과 무력감, 외로움 등 현대인들이 겪는 고민에 대한 해답을 담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필요한 건 너"나 "우리는 계속 목이 마르다"와 같은 가사들을 보면 단편적인 사랑과 열망에 집중되어 있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는 게 팩트다. 또한, 기대를 모은 컨셉 포토의 서사는 앨범에서 드러나지 않아 혼란스러움을 남긴다.


DJ Khaled와의 콜라보 곡 ‘LOVE, MONEY, FAME’은 클랩이 반복되는 미니멀한 래칫 사운드에 팝적 요소를 더한 곡으로, ‘I’m the One’이나 ‘No Brainer’와 같은 DJ Khaled의 전형적인 양산형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소개 글에서는 ‘LOVE, MONEY, FAME’이 "세븐틴스러움"의 폭을 확장했다고 하지만, ‘손오공’, ‘MAESTRO’에서 보여준 메가 크루의 웅장함이나 킬링 포인트는 찾기 어려웠고, 멤버들보다 DJ Khaled의 시그니처 사운드인 "DJ Khaled~ We the best music"이 더 크게 부각되는 이 곡이 정말 세븐틴스럽다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팀의 색을 희미하게 만들며 자체 제작의 한계마저 드러난 듯하다. 비단 타이틀뿐만이 아니다. 힙합 팀의 ‘Water’를 들으면 "FE!N, FE!N, FE!N, FE!N"하고 Travis Scott의 ‘FE!N’이 연상되고, 보컬 팀의 ‘사탕’은 "사탕 같은 사랑을 해요"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가사가 사랑의 진솔함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유치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전형적인 재즈 라인과 무성의한 재즈 피아노는 수록곡 맛집이라 불리던 명성에 먹칠한 격이 되었다. 차라리 윤석철, 정동환 같은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진짜 재즈의 깊이를 보여줬다면 더 득이 되는 콜라보가 되지 않았을까.


가장 아쉬운 점은 [SPILL THE FEELS]가 멤버 정한의 입대 전 마지막 완전체 앨범이라는 사실이다. 이 말은 곧, 긴 군백기를 견딜 수 있을만한 세븐틴만의 음악을 보여줘야 했단 뜻이다. 오히려 반응이 좋았던 컨셉 포토의 서사를 이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아우르는 13명의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풀어냈다면 팬들에게 애틋함이라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모로 일관성 없는 트랙과 낮은 사운드 퀄리티, DJ Khaled만 기억에 남는 타이틀곡은 그 어떤 특별함도 찾기 어려웠고, 결국 아쉬움만 남겼다. 매년 앨범을 발매한다는 자부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귀감이 될 음악을 내놓는 것이 아닐까. DJ Khaled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제거된 버전의 조회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을 보면, "SEVENTEEN Right here"를 외치던 그들의 모습이 더 멋있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닌 듯하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리미티드 콜라보레이션"


4. Frost Children & Haru Nemuri - [Soul Kiss]

카니 : Frost Children은 [SPEED RUN]에서 하이퍼 팝과 PC 팝을 기반으로 한 클럽 사운드를 선보였지만, 다음 앨범 [Hearth Room]에서는 장르 변화를 시도하며 글리치 사운드가 가미된 포크트로니카의 매력을 보여줬다. 일본의 실험적인 싱어송라이터 Haru Nemuri 역시 [harutosyura]에서 J-POP과 노이즈를 결합해 비명을 지르거나 시처럼 읊조리는 등의 독특한 보컬 스타일을 선보였고, [SHUNKA RYOUGEN]에서는 아트팝의 예술성과 탄탄한 유기성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두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독특한 음악적 개성과 과격한 사운드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투어에서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협업으로 이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지도 모른다.


Frost Children은 그동안 Danny Brown, Eliminate, Babymorocco와 협업하며 주로 일렉 팝과 하이퍼 팝을 작업해 왔으나, 이번 앨범 [Soul Kiss]에서는 뉴웨이브 기반의 사운드를 선보였다. 앨범은 펑크, 인디, 포스트 록을 결합한 사운드 위에 Haru Nemuri의 독창적인 보컬을 얹고, 일본어와 영어의 혼용이 주는 혼돈을 더해 강렬한 음악을 들려준다. ‘Daijoubu Desu’에서는 보컬의 장악이 점진적으로 이뤄지며, 신스 패드와 베이스라인의 타격이 강해질수록 괴성을 지르는 보컬도 함께 격렬해지는데, "Daijoubu desu"가 반복되는 구간은 음악이 끝난 후에도 뇌리에 깊은 잔상을 남긴다. 또한 ‘Burn’과 ‘Supernatural’은 댄서블한 리듬 위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더하고, ‘Bad Thing’은 폭발적인 밴드 사운드로 시작해 Haru Nemuri의 시적인 랩이 잔잔한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다시 노이즈가 폭발하며 선사하는 희로애락이 인상적이다.


사실 두 아티스트의 스타일이 워낙 하드코어한 만큼 그들의 만남이 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팝적인 요소와 펑크, 인디 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청각적 쾌락을 이끌어냈다. 정리하자면, Haru Nemuri의 [harutosyura]와 Frost Children의 [Hearth Room]의 스타일이 완벽하게 결합된 이번 협업은 기존의 틀을 부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아이코닉함을 보여주는 이상적인 콜라보로 기억될 것이다.





"Z세대의 고전적인 재즈의 맛"


5. Samara Joy - [Portrait]

 : 10월은 그야말로 재즈를 즐기기에 완벽한 계절이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낭만적인 재즈의 선율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Autumn leaves’ 와 같은 가을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재즈 스탠다드 곡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처럼 재즈 듣기 딱 좋은 계절에 어울리는 [Potrait]은 Samara Joy의 4번째 앨범으로, 그녀의 고전적인 보컬과 화려한 세션이 돋보이는 빅밴드 스타일의 앨범이다. 2집[linger awhile]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앨범은 부드럽고 나긋한 스탠다드 재즈에 유려한 세션 연주가 더해져,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음악적 측면에서 2집과 비교해 큰 변화가 시도된 건 아니지만, 편곡적으로 큰 변주 없이 담백하게 접근하며 조이의 매력적인 보컬로 신선함을 만들어 낸다. ‘You Stepped Out Of A Dream’에서는 화려한 스캣과 보이스 퍼포먼스가 눈에 띄며, 이전 앨범보다 성숙한 보컬과 높은 완성도가 조화를 이룬다. 또한, Jobim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No More Blues’ 은 부드러운 보사노바 리듬과 조이의 중저음의 보이스가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긴다. ‘Autumn Nocturne’ 속 그녀의 풍성한 성량과 기교 없이 담백한 보컬은 Sarah Voughan을 떠오르게 하며 전통 재즈의 깊이와 진득한 매력을 표현해 낸다.


재즈라는 고전적인 장르에서 새로움과 전통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은 늘 어려운 숙제라고 생각한다. 최근 Norah Jones와 같은 재즈 보컬리스트들은 블루스, 포크, 팝 등의 요소를 재즈에 결합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음악적 재미를 선사하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보컬이 주던 깊이와 진득한 매력을 잃어버린 듯한 아쉬움도 남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스윙 시대의 전설적인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의 재림이라는 호평을 듣는 Samara Joy의 음악은 고전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현대적인 창법과 해석으로 신선함과 재치를 더하고 있다. 오래된 장르로 여겨지는 재즈도 트렌디하면서 깊이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조이의 음악은 전통적인 재즈의 뿌리를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해석을 더해, 새로운 세대에게도 재즈의 매력을 전달하고 있다.





"불안에서 벗어나 담담하게 이별을 고하기까지"


6. Saya Gray - ‘SHELL ( OF A MAN )

하울 : Dirty Hit 소속의 아시안-캐네디언 아티스트로, Daniel Caesar와 WILLOW의 베이시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Gray는 지금까지 1장의 믹스테잎과 2장의 EP를 발표하면서 프로그레시브 록, R&B, 재즈 등을 결합한 그녀만의 전위적인 음악 스타일을 펼쳐 왔다. 불안정한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운드를 쪼개고 또 결합했던 그녀지만, 이번 싱글에서는 컨트리에 도전하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평온함이 곡 안에 퍼지기 시작한다. 

 

첫 번째 정규 앨범 [SAYA]의 리드 싱글인 SHELL ( OF A MAN )’은 초기 작품인 [19 MASTERS]의 분위기를 이어받아 꽤나 잔잔하고도 미니멀한 마감새를 보인다. 꽉 찬 사운드가 대부분인 컨트리 장르에서 필요 이상으로 악기들을 사용하지 않는 간소한 편곡, 멜로디컬한 느낌보다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노랫말을 가득 채워 부르는 점 등 일반적인 컨트리 곡과는 다른 특이점이 있다. 그 밖에도 브러쉬 스틱으로 드럼을 친다거나,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플레이어가 자연스레 부각이 되는 반면, 중간중간마다 효과음처럼 녹음된 추임새를 넣어줌으로써 유기적인 사운드에 긴장감을 더한다. 이처럼 컨트리, 포크, R&B 등 여러 장르의 요소들을 콜라주처럼 편집하는 작풍은 견고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다.

 

SHELL ( OF A MAN )’에서 그녀는 떨쳐내기 어려운 과거의 관계에 대해 "과거에 얽혀 있긴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의지를 다진다. 자기 파괴적인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했던 과거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SHELL ( OF A MAN )’는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그녀가 그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보다 성숙하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다. 내년 2월에 공개될 앨범 [SAYA]는 그녀의 정서적, 영적, 그리고 육체적인 변화를 담은 앨범이라 밝힌 바 있다.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넘어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본편을 보지 않고서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 '쑴', '카니'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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