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spa, RAINBOW99, 아일릿, FKA twigs 외
윈스턴 : 그간 aespa는 그녀들을 대표하는 '쇠 맛' 사운드와 퓨처리즘·사이버네틱 콘셉트를 유지하며 K-POP 씬 내에서도 독보적인 유니크함을 부여해 왔다. 광야에서 벗어나 리얼 월드로 돌아온 뒤의 이야기인 [MY WORLD]부터 앞서 말한 사운드와 콘셉트를 탈피하나 싶었지만, 이어지는 [Drama]와 [Armageddon]에서 유니크함을 다시 찾아오며 여전히 에스파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해나갈 것임을 공고히 밝혔다. [Whiplash] 또한 이러한 의지를 이어나가는 앨범이다. 허나 날이 선 스타일리쉬함에 비해 음악적 응집도가 떨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앨범의 초반부는 강렬하고도 쿨한 바이브가 담겨있다. 타이틀 ‘Whiplash’는 강렬한 베이스가 돋보이는 테크 하우스 트랙으로, 캐치한 탑라인과 미니멀한 구성을 통해 단순하지만 쿨한 느낌을 선사한다. 더불어 K-POP에서 쉽사리 보기 힘든 사운드임에도, 미래 지향적인 콘셉트와 함께 에스파라 시도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설득력을 부여해 냈다. 이후 강력한 질감의 신스가 담긴 ‘Kill It’, 칠한 바이브와 레이백된 코러스가 돋보이는 R&B 트랙 ‘Flights, Not Feelings’도 에스파의 매력과 잘 어우러지며 안정적으로 앨범을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매력을 조금씩 잃기 시작한다. 재치 있는 기획이지만 다이나믹이 약한 힙합 트랙 ‘Pink Hoodie’, 지루한 탑라인이 담긴 몽환적인 얼터너티브 R&B ‘Flowers’와 시원하게 터지지 않는 팝 록 ‘Just Another Girl’은 초반부터 쌓아 올린 날이 선 사운드에 못 미치는 시도로 가득하다. 결국, 첫 트랙부터 이 앨범이 말하고자 했던 '스타일리쉬'라는 극한값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맥시멀리즘한 전작과 비교했을 때, 이번 타이틀은 그야말로 절제의 미학과도 같다. 이는 현란한 구성을 펼치지 않더라도 에스파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쇠 맛' 사운드와 콘셉트를 각인시키고자 하는 탁월한 시도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수록곡의 약한 시도 탓에 전반적으로 채워졌어야 할 유니크함이 타이틀에서만 겉도는 심심한 앨범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단언할 수 있는 건, 이토록 스타일리쉬한 음악을 펼칠 수 있는 아이돌은 에스파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향후 다중우주로 연결되는 에스파 세계관 속에서 보다 더 실험적이고 완성도 있는 음악을 펼쳐나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도라 : 옥상달빛, 황보령=SmackSoft, 어른아이 등 인디씬의 기타리스트 '류승현'이라는 이름으로 10여 년을 활동한 레인보우99는 독특한 음악 세계를 솔로 음반을 통해 나타낸 아티스트이다. 일렉트로니카 베이스의 앰비언트 음악은 차가운 느낌을 주기 마련인데,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어쿠스틱 기타 혹은 일렉트릭 기타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그의 음악 세계에 흠뻑 빠져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려운 미로에 알기 쉬운 가이드를 '기타'라는 악기로 주는 셈인데 다양하게 디자인된 기타 사운드가 호기심의 물꼬를 틔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게 특징이다.
이번 정규 15집은 일종의 컴필레이션 형태로 엮인 음반인데, '흥망성쇠'라는 음반 명에서 알 수 있듯 이제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외부 작업물들을 엮은 음반임에도 비슷한 주제가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레인보우99가 자신의 음악을 통해 꾸준히 메시지 전달을 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나 타이틀 중 하나인 ‘지금은 호랑이가 없다 1’은 관악기를 메인으로 한 트랙인데, 서늘한 듯 강한 어택의 관악기 사운드가 구름처럼 흩어지는 질감으로 표현되었다. 약간은 전통적인 무드를 표현하는 단순한 드럼, 그리고 드리미(Dreamy) 한 신스 사운드까지. 그야말로 '지금은 없는 것'에 대한 상상력을 음악으로 대변해 놓은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카모토 류이치,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도 자신의 경험이 깃든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데에 있는데, 그런 시점에서 보았을 때 레인보우99의 음악은 조금은 무겁고 어려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 젠트리피케이션, 사라져 가는 동물, 산업과 자본에 얽힌 이해관계 등…. 늘 주위에 존재하지만, 시선을 돌리던 주제에 대해 타인의 말과 글이 아닌 '자신의 머리로'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그의 음악은 인스트루멘탈의 강점을 극대화시켰다고도 볼 수 있겠다. 가장 원초적으로 표현된 삶의 무게를 느껴보고 싶을 때, 이번 레인보우99의 음반을 들어보시길!
리유 : ‘Magnetic’으로 대중에게 확실한 인식을 남긴 아일릿은 [SUPER REAL ME]에 이어 또다시 '몽환'과 '마법'의 키워드와 함께 10대의 사랑을 노래하는 [I’LL LIKE YOU]로 돌아왔다. 일관된 컨셉을 유지하는 것은 신인 아이돌의 이미지 확립에 좋을 수 있으나, 두 앨범의 음악성을 기준으로 유사한 곡은 아일릿의 개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타이틀 ‘Cherish’ 속 기타를 보충하는 리버브 사운드는 ‘Magnetic’의 아르페지오 신스의 역할과 동일하게 곡의 전체 분위기를 끌고 가고 있으며, 두 Chorus에 모두 등장하는 동음어 반복의 가사 역시 앨범 간 차별성을 약화시킨다. 이는 단순한 장르적 차이가 아닌, 곡 분위기의 핵심인 연출적 요소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니'의 소재를 활용하여 사랑의 성장과 좋아하는 감정의 전달을 표현한 것은 독특하지만, "날 말릴 순 없을걸", "무조건 직진할래" 가사와 같이 당당한 마음에 사랑니가 사용된 연관성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또한 곡의 후반부까지 큰 변화 없이, 대중음악에서 흔히 사용되는 코드 진행과 차분한 탑라인으로 흘러가는 ‘Cherish’는 평범한 인상을 남기고 있으며, 투스텝 개러지를 활용한 3번 트랙 ‘YKYK (If You Know You Know)’, 미디엄 템포의 서정적인 분위기로 전환한 4번 트랙 ‘Pimple’ 역시 특별한 요소 없이 무난하다. 비디오 게임이 연상되는 마지막 트랙 ‘Tick-Tack’은 아일릿의 이른바 '엉뚱발랄' 이미지와 어울리지만, 또 한 번 어눌한 발음의 가사 반복 구절이 등장하는 훅으로 인해 지금까지 보여온 아일릿의 노래에 대해 중복을 느끼게 하고 있다.
몽환적, 귀여운 컨셉의 유지에 따라 [I’LL LIKE YOU]의 음악 역시 이전과 같은 연출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앨범, 혹은 트랙이 서로 다른 장르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일릿만의 뚜렷한 개성을 찾기 힘든 이유이다. 두 번째 EP까지 반복된 평범한 요소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다음 앨범, 그리고 앞으로 아일릿이 보여줄 모습에는 타 아티스트와 비교할 수 없는 정체성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도라 : 가벼운 투 스텝 베이스의 댄스/팝 장르 ‘Perfect Stranger’는 지난 싱글 ‘Eusexua’에 비해 팝한 감성이 강조된 트랙이다. ‘Eusexua’가 본래 특기이던 "아트" 팝이었다면 ‘Perfect Stranger’는 아트 "팝"에 가까운데, 들릴 듯 말 듯 한 소프라노 보이스가 아닌 뚜렷하고 길게 내뱉는 창법이 주가 된 덕분일 테다. 속삭이는 창법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로우 키의 더블링 트랙이 따라 부를 수 있게끔 가이드가 되어 주기도 한다. 특히나 아웃트로를 향해 2/4박에 악센트를 주는 챈팅을 듣고 있자면, 모두가 가볍게 플로어를 콩콩 뛰면서 떼창을 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만큼 팝한 바이브가 강조된 트랙이었고, UK 개러지에서 파생된 투 스텝 장르에 대한 이해도를 느낄 수 있었다. 레이브보다는 차분하지만, 반복되는 리듬에 영원히 춤추고픈 장르가 바로 투 스텝 아니었던가.
한편, FKA twigs의 음악 세계를 관람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MV인데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네가 무엇이든 난 관심 없고 넌 그냥 완벽하다.'는 메시지를 이방인(Stranger)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성적 기호와 지향성을 동일 선상에 둔다는 의미가 아니다. 타인의 눈에 별나게 비치는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타인에게 '남들과 다른' 자신을 늘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설명할 필요 없다'는 의미를 강조하게 된다. 그 간단하고도 명료한 메시지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사회적 소수에 위치한 이들에게 위로를 수반한다. '아무 정보 없는 빈칸 상태인 네가 가장 완벽하다.'라는 이유 없는 지지야말로 맹목적인 편을 원하는 요즘 이들에게 제격인 가사였다. 이제는 지겨운 메시지가 된 'Love Yourself'에 약간의 변주를 주어 명료하나 세련되게 표현한 싱글이었다.
리유 : Melody gardot의 음악이 특별한 이유는 18세에 교통사고로 인한 기억상실증을 겪을 당시, 후유증을 극복하게 해 준 것이 바로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는 아티스트로서의 삶이 시작된 계기로 이어져, 데뷔 앨범 [Worrisome Heart], [Currency of Man] 등 음반을 내며 재즈 보컬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그중에서도 Melody gardot의 주요 곡, 미공개 및 라이브 음원을 모은 [The Essential Melody Gardot]은, 재즈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이름을 알린 ‘Baby I'm a Fool’을 처음으로, 멕시코 전통 란체라를 슬픈 블루스로 재해석한 ‘La Llorona’을 마지막 트랙으로 하여 곡마다 독창적인 요소를 느끼게 한다.
Melody gardot의 앨범에서 주목할 점은 스위핑 테크닉으로 부드러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드럼은 물론 피리, 퍼커션 등 분위기 조성을 위한 악기의 선택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항상 같은 구성이 아닌, 다양한 악기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재즈와 소울을 보여줌으로써 자칫 비슷하게 들릴 수 있는 재즈를 각각 개성이 있는 곡으로 만들어냈다. 특히 원곡을 보사노바의 리듬으로 리메이크하는 아티스트들은 많지만, Melody gardot가 재 표현한 ‘Over The Rainbow’는 악기로 자연의 소리를 재연하여 영화 음악과 같이 평화로운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이는 보편적인 보사노바 편곡에서 한 단계 더 높은 퀄리티를 느끼는 이유이다. ‘Moon River’ 역시 느린 템포의 원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되, 스트링을 보완하는 퍼커션과 기타의 변주로 곡의 outro를 마무리함으로써 여운을 더 남기고 있다. 또한 [The Essential Melody Gardot]은 총 24개의 트랙으로 구성한 긴 러닝타임의 앨범이지만, 서로 다른 분위기의 곡의 순서를 적절히 배치하여 후반부까지 편안히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흐름은 전체 모두 기본적인 재즈 코드로 구성하더라도 각 트랙을 다른 음악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하였고,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 Larry Klein이 끌어준 Melody gardot의 역량은 확실했다.
다양한 요소를 활용한 재즈로 결국 편안함을 주는 앨범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은, Melody gardot에게 힘이 되어준 것이 노래였던 시작점부터 이미 정해진 결과였다고 본다. [The Essential Melody Gardot] 앨범에 담겨 있듯, Melody gardot은 차분한 보컬과 여러 리듬, 악기의 조화로 부드러운 재즈는 물론 예술성까지 보여주었으며, 겨울이 다가온 지금, 따뜻한 음악의 선물을 주었다.
베실베실 : 타일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매 앨범마다 음악적 스타일이 변화한다는 부분이나 퍼렐에게서 영향받은 (앨범이 변할지 언정 뼈대처럼 남아있는) 특유의 작법 등이겠지만, 그가 비단 음악뿐 아니라 컨셉과 스토리텔링 면에서도 매우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놓치는 듯하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본인 내면의 가정사와 고통, 분노를 다루었었고, [Flower Boy] 이후부터는 본인의 정체성을 인정하며 사랑, 외로움을 다루는 등 스펙트럼을 보다 폭넓게 확장시키는 행보를 보여왔다. 서사적으로만 본다면 [IGOR]에서 본인의 모든 밑바닥을 보여준 듯한 타일러는 21년 [CALL ME IF YOU GET LOST]에서는 평범한 사랑 노래나 자기의 성공과 삶을 뽐내기도 하는 등 앨범 제목 그대로 (의도적으로) '길을 잃은 듯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배치하며, 기존 타일러 서사를 끝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이에 맞춰 "타일러의 앨범은 매 홀수년에 발매된다"라는 법칙을 깨고 23년에는 디럭스 버전을 발매하는 것으로 그 루틴을 마무리 짓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때문에 [CHROMAKOPIA]가 처음으로 짝수 연도에 발매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타일러 팬들은 가장 먼저 이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제 타일러는 무슨 얘기를 할까?"
첫 공개곡 ‘St. Chroma’의 MV를 통해 자신의 과거 자아들을 한데 모아 살해하며 시작한 이번 앨범에서, 그는 이 고민을 '초심'으로 답을 내린 듯하다. 앨범을 관통하는 핵심 서사는 어렸을 때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향한 투사이다. 아버지를 증오해왔던 타일러였지만 ‘Hey Jane’에서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며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즉, 애를 낳지 말자는 것이다!) 직전 트랙 ‘Like Him’에서 그의 어머니가 타일러에게 "너는 아버지를 닮았다"라고 말하는 것과 본 트랙에서 타일러의 행동이 연결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해석일 테다. 이렇게 그는 과거 본인의 가정사와 분노에 대해 얘기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그때처럼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풀지만, 22살이던 13년의 타일러는 "아빠는 니 이름이 아니야, 호모 새끼(Faggot)가 더 어울려"라고 욕했다면, 33살이 된 24년의 타일러는 ‘Hey Jane’과 같은 스토리와 함께 "함부로 아빠를 판단하지 않을게요." "네 아빠는 잘못 없어"라며 이해를 시도하려 하는 것은 차이점이다. 즉, 이 앨범은 (그가 리스닝 파티에서 말했듯이,) 그렇게 타일러가 "이제 서른셋이 되니까 알 수 있는", "엄마가 했던 온갖 헛소리들을 곱씹어 보는 내용"의 앨범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CHROMAKOPIA]는 마치 [Mr. Morale & The Big Steppers]를 만든 켄드릭 라마의 모습이 일견 겹쳐 보이기도 하는데, [good kid, m.A.A.d city]에서는 Compton의 이야기를, 그리고 [To Pimp a Butterfly]를 통해 흑인 사회 전체에 대한 메세지를 풀어낸 켄드릭 라마가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Damn.]을 거쳐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된 본인 내면의 이야기를 다루기를 택한 앨범이 바로 [Mr. Morale & The Big Steppers]이 아니었던가.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한 의식 있는 랩퍼들이 선택한 다음 행보의 공통점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의 회귀"라는 것은 참으로 재밌다.
그렇지만 이 앨범이 음악적으로도 완벽한 앨범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영역일 것이다. 앨범의 초반부. 즉 ‘St. Chroma’에서 ‘Noid’에 이르기까지의 거칠고 익스페리멘탈을 시작으로 [Flower Boy]의 네오 소울, [CALL ME IF YOU GET LOST]의 웅장한 웨스트 코스트 힙합이 들려오는 ‘Thought I Was Dead’까지, 타일러의 모든 색이 들린다는 부분은 우리로 하여금 타일러의 저주받은 명작 [Cherry Bomb]을 떠오르게 한다. 그 앨범 역시 과거의 타일러와 미래의 타일러, 익스페리멘탈과 하드코어, 네오소울과 재즈 힙합 등을 한데 모으는 시도를 했었지만 과도한 실험성과 유기성 때문에 호평보다는 혹평을 받았었다면, 이번 앨범에는 과도한 실험성을 줄이고 유기성을 조금 더 보완하는 절충안을 택한 듯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절충안이 너무나도 평이했던 탓일까, ‘St. Chroma’와 ‘Noid’의 '정신 나갈 것 같음'을 좋아하던 올드팬들에게는 "조금 더 과감해도 좋았을 것 같다"라는 평을 받게 되고, 최근의 감성적인 타일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I Killed You’나 ‘Sticky’와 같은 애매한 힙합 넘버들을 스킵 하게 만든다. 즉, 음악적 부분만 놓고 보면 이 앨범은 트랙 하나하나는 좋지만, 묶고 보면 누구를 타겟으로, 무엇을 노린 것인지가 굉장한 모호한 앨범인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켄드릭 라마의 [Mr. Morale & The Big Steppers]가 그러했듯이, 이 앨범 하나만 놓고 보면 충분히 좋은 앨범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전의 워낙 훌륭했던 앨범들과 비교한다면 어딘가 아쉬운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아아, 역시 창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모두에게 설득시키는 행위인 것인가. 그렇지만 켄드릭과 타일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윈스턴 : 흔히들 떠올리는 서정적이거나 격렬한 J-POP의 작법과 달리, Yakousei 아티스트 즛토마요의 음악은 궤를 달리하는 역동으로 가득하다. 싱어송라이터 ACANE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이 밴드는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우타이테의 영향을 받아 타이트한 리듬감의 음악을 전개해 왔다. 이내 뛰어난 실력자들로 구성된 리얼 세션을 들여오면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기 시작했고, 재치 있는 사운드 소스를 집어넣으며 그들만의 독창성을 부여해 오려 노력해 왔다. 아직 그들의 음악을 맛보지 못했다면 이 앨범은 어떨까. 음악적 강점은 물론, 차분함과 경쾌함이 동시에 담겨있는 즐거운 앨범이 나왔으니 말이다.
이 앨범은 외부의 시선과 이에 대한 돌파 의지를 호기롭고 차분하게 표현해 낸 앨범이다. 경쾌한 진행 위 아름다운 하프 사운드를 도입해 부드러운 분위기를 담은 트랙 ‘虚仮にしてくれ - KOKE’와 잔잔하면서도 경쾌한 ‘クズリ念 - KUZURI’는 외부의 평가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즛토마요의 고백이 담겨있다. 곧이어 통통 튀는 스프링 사운드가 담긴 ‘海馬成長痛 - Hippocampal Pain’에서는 이에 대한 반기를 호기롭게 내세우고, 리드미컬한 트랙 ‘TAIDADA’에서는 뛰어난 연주 호흡을 통해 즛토마요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표출해 낸다. 흥겨운 앨범의 초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아련한 감성으로 채워져 있다. 회상적인 메시지가 담긴 ‘嘘じゃない - Truth in Lies’와 우타다 히카루스러운 전주가 펼쳐지는 미디엄 템포 트랙 ‘Blues in the Closet’는 앞서 업된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것은 물론, 경쾌한 사운드에 묻혀 집중되지 못했던 ACANE의 아련한 보컬도 음미할 수 있게끔 한다.
즛토마요 특유의 시적인 표현법 때문에 가사의 문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지만, 천천히 음미할수록 더욱 즐겨들을 수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가사의 해석이 없더라도, 음악적으로 매우 즐겁고 흥미롭다. 속주와 복잡한 구성으로 쌓아가는 경쾌한 매력, 차분하고 아련한 매력이 동시에 담겨있다는 점에서 J-POP을 좋아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에너지도 있지만, 감성적인 선율도 즐길 수 있으니 쓸쓸한 음악만 발매되는 이 가을을 보내기 위한 최적의 앨범이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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