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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Dec 25. 2024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4년 12월 3주)

Stray Kids, 소수빈, 터치드, Lauren Mayberry 외


"독이 될 근거 없는 자신감"


1. Stray Kids (스트레이 키즈) – [合 (HOP)]

카니 : 스트레이 키즈는 한때 K-pop 대표 믹스팝 장인이라 불렸지만, 이제는 스키즈만의 뚜렷한 특색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 같다. 이번 앨범 [合 (HOP)]은 "스트레이 키즈만의 힙합 믹스 테이프, 스키즈표 힙합!"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소개와 달리, 올해 K-pop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짬뽕 스타일의 힙합 앨범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과연 이 앨범에서 "스키즈만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나마 ‘특’까지는 "스키즈표"라고 할만한 것들이 분명 존재했다. 브릿지 파트의 유니크함, 도파민을 자극하는 중독성 강한 코러스, 창빈과 한의 시원하게 때려주는 래핑 같은 요소들은 비전형적인 구조 속에 절묘하게 녹아들며 스키즈만의 마라맛을 살리는 뱅어트랙을 만들어냈다. ‘신메뉴’ 이후로 쌓아온 스키즈만의 성공 공식이 잘 자리 잡아 듣는 재미를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 전체를 놓고 보면, 스키즈만의 독창성을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온 건지 의문이다. 타이틀곡 ‘Walkin On Water’는 뉴스쿨 힙합에 지펑크 신스를 살짝 가미한 스타일로, "삐끼삐끼" 같은 추임새와 스크래치, 백보컬 등으로 곡을 채웠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K-pop 그룹의 타이틀 곡이나 수록 곡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평범한 "올드스쿨 무드"에 가깝다. 게다가 계속해서 하드한 음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혹은 퍼포먼스를 위한 선택이었는지 강렬함만 밀어붙이다 보니 때로는 조잡하게 느껴지는 경향도 있었다. 솔로 트랙들은 특이점이 없어 밋밋하게 느껴졌고, 나머지 단체 트랙들 역시 비슷한 뉴스쿨 스타일의 ‘Bounce Back’과 예측 가능한 드럼 앤 베이스 장르의 ‘U’로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이번 앨범에서 남는 질문은 하나다. "스키즈만의 음악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은 내비쳤지만, [合 (HOP)]이 새롭거나 특별하다고 말하기는 몹시 어렵다. 물론, 뮤직비디오는 20개가 넘는 지역에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올랐고, K-pop 4세대 보이그룹 중 1억 뷰 이상 뮤직비디오 최다 보유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국내 차트에서의 부진한 성적과 대비되는 이런 성과는 "보는 음악"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락’, ‘Chk Chk Boom’ 그리고 ‘Walkin On Water’까지, 점차 흐려지고 있는 스키즈만의 개성. 자체 프로듀싱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싶다면, 이제는 새로운 것에만 현혹되지 말고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 발라디어라고요?"


2. 소수빈 - [사랑의 소동]

하울 : '슈퍼스타K'의 전국민적인 흥행 이후로 각종 방송사에서는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을 쏟아냈고, 어느덧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원석을 찾아 나서겠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일종의 등용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출연자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했으나, 방송이 끝나고도 그 주목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소수빈 역시 지난해 '싱어게인 3'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며, 데뷔 7년 만에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가 방송 이후로 처음 발매하는 EP [사랑의 소동]은 향후의 활동 방향성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이지만, 그 방향성이 과연 그에게 맞는 옷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사랑의 소동]은 '겨울' 하면 떠오르는 따뜻한 감성을 담아낸 EP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수빈의 음악'이 아니라, 기성 아티스트의 레퍼런스로 채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타이틀곡인 ‘해야만 할까요’, ‘그대라는 선물’은 정승환, ‘사랑의 소동’은 이상순, ‘사랑하자’는 너드커넥션, 마지막 트랙인 ‘우리라는 건’ 마저 한때 같은 소속사였던 이영훈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더블 타이틀곡인 ‘이러지도 못하고’ 만이 R&B 기반의 인디 팝 음악을 선보이면서 이전의 음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소수빈이 보여줬던 음악들은 분명 어쿠스틱한 인디 음악이나 톡톡 튀는 팝이었는데, [사랑의 소동]은 그가 지금까지 유지해 온 음악적인 색깔과도 거리가 멀다. 그가 항상 어깨에 메고 있던 어쿠스틱 기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건반과 스트링 선율이 열심히 그 자리를 메꿔보지만, 싱어송라이터로써의 모습을 보이던 그가 갑자기 보컬리스트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는 게 쉽사리 이해가 가질 않는다.

 

'싱어게인 3'에서 소수빈이 주목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담담하게 애수를 노래하는 섬세함, 그리고 거기서 오는 향수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송 노출 이후의 행보에서 그의 강점이 부각되기는커녕, 그를 흔하디 흔한 인디 아티스트로 소비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정승환의 ‘눈사람’을 만들었던 제휘가 6곡 중 4곡을 작업했기에 작가 특유의 포근한 감성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나머지 곡들에서조차 다른 아티스트가 떠오른다는 것은 결국 '소수빈이라는 아티스트를 소속사가 어떻게 정의 내렸는가'에 대한 문제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대중에게 친숙한 음악 스타일로 아티스트의 존재감을 더욱더 확실하게 가져가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티스트의 고유한 정체성까지 잃어버리고 마는 악수가 되었다.





"오늘 세상이 망해도, ㅇㅇ 터치드 음악 들을게"


3. 터치드(TOUCHED) - ‘Last Day’

 :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 "올해를 끝으로 세상이 끝난다면?"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법한 음악이 있다. ‘Last Day’는 디스토피아적 세상을 배경으로, 지구의 종말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청춘의 열정과 마지막 순간의 감정으로 풀어낸 곡이다. 5분이 넘는 곡 길이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면"이라는 주제를 완벽히 구현하며, 마치 세상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감정을 쏟아내듯, 듣는 이를 압도한다. 특히, 묵직한 드럼과 베이스로 시작하는 초반부는 곡의 강렬한 에너지를 단숨에 전달하며 몰입감을 높이는데, 여기에 상반되게 등장하는 미성의 보컬은 강렬한 악기 사운드와 조화를 이루어, 벅찬 감정을 전달한다. 이와 더불어 곡의 중후반부에서는 베이스 솔로가 돋보이는데, 뮤즈의 ‘Hysteria’를 연상시키며 록 음악 특유의 몰아치는 연주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또한, 직전 싱글 ‘Addiction’과 비교하면, ‘Last Day’는 리드 기타의 부재라는 약점을 성공적으로 보완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Addiction’에서 키보드의 비중이 커지며 팝스러운 감성을 더했다면, ‘Last Day’는 기타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며 전형적인 록 사운드를 완성했다. 특히, 보컬 윤민의 기타 연주는 리드 기타의 공백을 자연스럽게 메우며 곡의 중심을 잡아준다. 새로운 멤버 영입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이들은 기존 멤버만으로도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리드 기타 없이 밴드가 가능하겠냐"는 우려와 편견을 터치드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극복해 나가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밴드의 구성 방식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좋은 음악'인가 하는 점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Last Day’는 복잡한 분석이나 설명 없이도 올해의 끝자락에 듣기에 꽤나 어울리는 곡이라 할 수 있다.





"Lauren Mayberry 솔로1집이자, CHVRCHES 5집"


4. Lauren Mayberry – [Vicious Creature]

 : 밴드로 활동하던 아티스트가 솔로 앨범을 통해 그룹의 색을 벗고 본연의 음악적 정체성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CHVRCHES의 보컬로 활동하며 신스팝의 대표적인 목소리로 자리 잡은 Lauren Mayberry 역시 이 도전에 나섰다. 그녀의 첫 솔로 앨범은 CHVRCHES의 연장선에서 출발하지만, 곳곳에서 그녀만의 색을 드러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앨범의 시작은 익숙함 속에서 안정감을 준다. 특히, ‘Something In The Air’는 CHVRCHES의 팬들에게 친숙한 신스팝 사운드를 유지하며 4집 [Screen Violence]의 분위기를 이어간다. 중반부로 넘어가며 새로운 시도가 보이기도 한다. ‘Crocodile Tears’는 스트링 사운드를 통해 올드팝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Sorry, Etc’와 ‘Sunday Best’는 강렬한 전자음과 펑크록의 요소를 결합해 에너제틱한 바이브를 보여준다. 정교한 신스 사운드와 투명한 보컬 중심의 CHVRCHES 스타일에서 벗어나, 거친 기타 리프와 강렬한 드럼을 통해 과감하고 다이내믹한 감정을 표현하며 CHVRCHES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앨범이 전반적으로 통일감이 부족하고,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Oh, Mother’와 같은 발라드 트랙은 지나치게 단조로워 다른 곡들과 차별점이 부족하며, ‘Change Shapes’와 ‘Mantra’는 난해한 사운드 구성이 호불호를 크게 타게 한다. 초반부의 강렬한 시작과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곡들이 산만해지고 방향성을 잃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긴 발라드와 짧은 신스팝 곡들이 교차하면서 앨범의 흐름이 끊기고, 각 곡의 완성도가 고르지 않다는 점도 아쉬움을 자아낸다. 밴드의 주 장르였던 알트팝과 신스팝을 주로 다루고 있는 이번 앨범은 어쩔 수 없이 곡의 분위기와 사운드 곳곳에서 CHVRCHES가 오버랩되어 보인다. CHVRCHES의 연장선과 새로운 시도가 혼재된 이번 앨범은 기존 팬들에게는 반가운 작품일 수 있지만, 솔로 아티스트로서 Lauren Mayberry만의 개성을 보여주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고 느껴진다.





"매사에 전력을 다하는 건, 무모한 일이야!"


5. OFFICIAL HIGE DANDISM – ‘50%’

카니 : OFFICIAL HIGE DANDISM(히게단)의 신곡 ‘50%’는 영화 <일하는 세포들>의 삽입곡으로, 영화를 보면 세포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무리하지 말고 자신을 돌보자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마음에 새기게 된다. 이는 지난해 후지하라 사토시가 성대폴립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히게단의 이야기와 맞물리고, 그래서인지 치열한 현실 속에서 100%의 완벽함을 요구하기보다는, 50%의 힘으로 균형을 맞추며 중요한 순간에 집중하자라는 메시지는 영화 관객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몰입감을 선사한다.


히게단은 ‘Yesterday’의 스트링 사운드나 ‘Universe’의 브라스 사운드로 찬란하고 벅찬 감성을 섬세하게 담아내면서도, 서서히 전개되는 빌드업으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밴드이다. 특히 [Rejoice]의 ‘Chessboard’에서는 서두르지 않고 은은하게 사운드를 쌓아 올리며, 브릿지에서도 흐름을 꺾지 않고 자연스럽게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가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50%’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인트로부터 넓게 퍼지는 백코러스가 웅장한 분위기를 더하고, 반복되는 멜로디에 디스토션 입힌 일렉 사운드와 역동적인 코러스를 더해가며 풍성함을 쌓아 올린다. 그 과정에서, 히게단의 새로운 시도가 등장하는데, 바로 사토시의 싱잉랩이다. 프리코러스와 코러스를 지나면 등장하는 랩은 전체 흐름을 환기시키는 감초 역할을 한다. 이후, "워어어어어어" 하는 떼창 구간으로 곡은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를 맞이하며 드라마틱한 전개의 막을 내린다.


일본 시장 특성상 OST나 싱글을 자주 발매하고, 이를 앨범에 다수 수록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앨범의 완성도가 다소 아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독특한 소재나 시도를 통해 의외의 재미를 주는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50%’ 역시 그런 시도의 좋은 예인데, 싱잉 랩, 송폼, 애니메이션 요소가 어우러진 코러스에 역동적인 빌드업이 가미되어 듣는 재미를 한층 살렸다. 여기에 영화음악 특유의 드라마틱한 감성과 히게단의 벅찬 에너지가 시너지 효과를 내며, 단 하나의 곡으로 메시지와 사운드 모두 알차게 담아낸, 그야말로 일당백 싱글이었다.





"파티걸은 찰리의 차지, 그렇다면...?"


6. Rebecca Black - Sugar Water Cyanide

하울 : 일찍이 해외 문화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Friday’의 악명을 모를 수는 없다. 한때 Justin Bieber와 쌍벽을 이루던 Rebecca의 ‘Friday’는 단조로운 멜로디와 소위 '병맛' 스러운 가사, 조잡한 퀄리티의 뮤직비디오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밈이 되어버렸고,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뮤직비디오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면서, 14살 소녀는 하루아침에 온갖 조롱을 받는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라는 법은 없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이슈를 발판 삼아 본격적으로 가수가 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는데, 그렇게 ‘Friday’가 발매된 지 딱 10년째가 되던 2021년, ‘Friday (Remix)’와 [Rebecca Black Was Here]로 하이퍼팝 아티스트로써 성공적인 리브랜딩을 이뤄낸다.


‘Sugar Water Cyanide’는 내년 1월에 발매될 [SALVATION]의 선공개곡으로, 버블검 베이스에 볼티모어 클럽을 조합하며 극강의 가벼움과 리드미컬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또한 과격한 일렉 사운드를 3분 내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멜로딕한 벌스와 챈트 위주의 코러스로 분리가 되면서, 아주 약간의 케이팝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과잉의 끝을 보여주는 하이퍼팝 장르의 특성상 개별 곡들마다 뚜렷한 구별점을 느끼기가 쉽지는 않은데, 이 곡 역시 귀를 찍어 누르는 듯한 비트와 왜곡된 목소리 톤 등 기존에 나온 하이퍼팝 곡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상이다. 정규 1집이었던 [Let Her Burn] 같은 경우, 솟구치는 에너제틱함보다는 차분하게 가라앉는 듯한 무드 위주의 음악이었는데, ‘Sugar Water Cyanide’는 [brat]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하기가 어려운 상황. Charli가 자전적인 내용을 통해 자신만의 하이퍼팝을 완성했다면, Rebecca의 다음 스텝 역시 다른 아티스트와 차별화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때다. [brat]의 하입을 이어가고 싶은 의도는 알겠으나, 강렬함을 내세우는 하이퍼팝은 이미 대체재가 너무 많다.





※ '쑴', '카니'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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