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문학 큐레이터 Dec 14. 2022

방황의 역사

Chapter 4. 강남에서 승무원을 외치다

여전히 전공 공부는 나와 맞지 않았다. 내 상상 속의 수출입을 주관하는 회사는 막연하게 해외를 자주 왕래하며 외국인들과 비즈니스 회화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겨우 여행회화만 할 줄 아는 풋내기 전공 학사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역마살이 어떻게 씌었는지 무조건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 교환학생 선발에서 박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중국어 자격증을 준비하여 결국 원하던 해외 생활을 하기도 했다. 반년 동안의 해외 생활이 부족하여 또다시 내 관심은 해외로 향했다. 


여러 선택지 중에 그나마 도전해볼 만한 직업은 승무원이었다. 당시 외국어에 자신이 있었고, 따로 필기시험을 준비하지 않아도 됐었기에 다른 대기업이나 공기업보다는 난이도가 쉬워 보였다. (지나고 보면 꽤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또 한 번 마음먹으면 무조건 해내야 하는 스타일이라 곧장 승무원 학원을 찾아보게 된다. 그러던 중 강남에 위치한 한 승무원 학원에 덜컥 등록하게 된다. 나 스스로 승무원 지망생이라 지칭하며 매주 주말 강남역으로 수업을 들으러 갔다. 


높은 구두와 몸의 선이 드러나는 블라우스와 치마를 장착하고 매 수업시간마다 입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미소를 지었다. 평소 내 목소리와 맞지 않는 톤으로 '안녕하십니까?'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지금도 수업 당시 영상을 갖고 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얼마나 어색하고 거짓 미소를 짓는지 스스로도 참을 수 없다. 


그렇게 매주 면접 준비를 하다 대기업 항공사에 지원하게 된다. 입사지원서를 몇 번을 수정했는지 모르겠다. 운이 좋게 서류 합격하였고, 난 부랴부랴 어머니와 숙대 입구 근처 승무원 면접 의상 전문 매장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동복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작은 셔츠와 10cm 하이힐을 구매하게 되었다.


드디어 1차 면접 당일날, 잔뜩 긴장한 채 면접 대기실에 들어섰다. 나는 지금도 그날을 선명히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 예쁜 여자는 전부 모인 것 같은 공간이었다. 모두 키가 컸고 미소가 아름다웠다. 승무원 준비생 치고 작은 키였던 나는 그 분위기에 조금 위축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노력한 게 있으니 자신 있게 말하고 나오자라는 생각으로 면접 질문을 훑어보았다. 


한참을 대기하다 내 차례가 되었고 거의 8명이 되는 참가자들과 함께 면접장에 들어섰다. 지금도 그 자리를 어떻게 버텼나 싶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고 10cm 힐을 신고 30분 동안 곧은 자세로 서있었다. 계속 웃고 있어야 했기에 입은 경련이 일어났고 평소 안 붙이던 속눈썹을 붙인 탓에 눈꺼풀을 무거워져만 갔다. 허공에 떠있는 기분이었고 머리가 핑 돌았다. 


그렇게 아쉬움만 남긴 채 면접장을 나왔고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다른 항공사들도 지원했지만 서류부터 탈락하였다. 공채 시즌이 마감되며 나의 승무원 도전기도 막을 내렸다. 이제 졸업을 해야 했고 어디라도 취업했어야 했다. 무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의 조언으로 갑자기 금융권에 지원하게 된다. 


연봉도 괜찮고 정년도 보장되어 여자 직업으로 최고라는 말에 별생각 없이 그날로 인터넷 강의를 결제했고, 문제집 세네 권을 준비해 매일 12시간씩 필기시험을 준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황의 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