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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Feb 01. 2024

00. Fernweh

먼 곳을 향한 동경은 모두에게 있다. 우리는 다른 행성에서 왔기 때문에.


  나는 지구에 잘못 배달되었다


 임지은의 시 <낱말 케이크>는 이런 구절로 시작한다. 

 어디로 훌쩍 떠나 버리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살고 있는 곳이 전혀 모르는 곳처럼 느껴진 적이 있는가. 자기 삶에 스스로가 녹아들지를 못한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나는 가끔 이방인의 감각을 느낀다. 혹은 외계인의 감각. 잘못된 행성으로 와버린 것만 같은, 고장난 GPS를 들고 잘못 쓰인 지도를 읽으며 세상을 돌아다니는 기분. 그럴 때면 여행을 원하게 된다.


 각자만의 이유가 있겠지만, 다들 어떻게든 떠나고 싶어 몸부림치나 보다. 이번 전염병이 끝나고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이 지난해 대비 3.5배 늘었단다. 공항은 늘 인산인해를 이룬다. 소셜 미디어에는 어느 여행지가 좋은지, 그곳에 가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면 좋은지, 이런 이야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도 여행을 간절하게 떠나기를 원하게 될까?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언제든지 떠나기 위해 깔린 활주로라도 있는 걸까. 


  대학에서 독일어 교양 수업을 듣다가 이 마음을 단번에 가리키는 단어를 만났다. 


  das Fernweh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인 das Heimweh와는 반대로, 먼 곳을 동경하는 마음이란 뜻이다. 잘라서 읽으면 fern은 먼, weh는 고통 혹은 아픔. 모든 단어를 결합해 새 단어를 만드는 독어에서 그들은 먼 곳을 향한 궁금 혹은 미지의 마음을 ‘고통’의 단어로 표현했다. 가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은 늘 아플 수밖에 없다는 듯이. 




 2년 전 여름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베를린에서 한 달간 지내며 언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가장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지원했으니, 독일어에 대해 아는 것은 언제든지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준비해 둔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가 전부. 알파벳부터 시작했으니 결국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어디서 왔습니까, 취미는 무엇입니까, 같은 기초 회화만 배웠다. 그래도 열심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외딴 나라에서 생활한다는 그 최초가 같은 생경함 때문이었겠지.


 아마 짧았던 한 달간의 생활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독일어를 할 때면 그때의 생생한 감정이 돌아오는 듯해 꾸준히 배움을 이었다. 대학으로 돌아온 학기부터 계속 수업을 들었고 이제는 초보자를 겨우 벗어난 수준에 이르렀다. 함께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과도 만남을 이었다. 꼭 독일식 맥주나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에 갔다. 베를린 태생 영화감독 페촐트의 작품에도 빠져들었다. 한국에 방문했을 때 기어코 자리를 잡아내 그의 육성을 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렸을 때 살았던 미국 서부의 해안가로 꼭 돌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대학 후배, 한참 전 유럽 여행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유럽 얘기만 나오면 여행기를 일일이 풀어주는 과 조교님, 한국은 맞지 않는다며 호주로 떠났다는 어느 동창… 다들 발붙이고 선 삶에 만족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떠나겠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다들 먼 곳을 향해 동경하고 있었다. 어딘지도 모를 그곳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올 한 해 암스테르담에서 일 년간 지내게 됐다. 도착한 지는 이제 고작 나흘째. 기숙사에 들어가고 수업에 시작하기까지 여유가 있어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도시를 쏘다니고 있다. 학기 중반 찾아온 전학생의 낯선 마음처럼 버스를 타고 식사를 주문하고 커피를 결제할 때도 긴장한다. 신기하고 새로운 것투성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의 상황은 이렇다. 오래간 꿈 꿔오던 낯설고도 먼 곳에 당도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만 것. 베를린에서의 여름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짧고도 달았던 환상이라면-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을 수 있는- 이제는 여과 없이 길게 머물며 쓰고 또 추악한 면까지도 볼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인 것. 오랜 환영인 방랑벽을 해소 혹은 해탈할 기로에 처한 것.


 오배송된 물건도 언젠가는 그 잘못된 목적지에 자리를 잡듯이 지구로 불시착한 우리도 이 어그러진 행성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단, 삶에 직접 부딪히고 스스로를 미궁으로 밀어 넣을 때만. 그래서 스스로 이국의 땅에 삶의 싹을 틔워보는 배양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이국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호의적이지도 풍요롭지도 아름답지도 않겠지만, 삶은 애초에 그런 부류의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 우리의 방랑벽은 정말 한낱 꿈일까 혹은 실재하는 유토피아일까. 


 중고로 산 후지필름 카메라와 함께 여러 순간을 포착하면서 비행기처럼 붕 뜬 마음과 생각의 조각들을 이곳에 콜라주한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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