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ol@골계전 31. 공중도덕 결여자들
광화문에서 북한산 쪽을 바라보면 경복궁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경복궁 앞에는 중앙청이라고 하는 커다란 건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의 기를 막고 궁을 가리기 위해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는데 해방 이후부터 철거될 때까지 그곳을 중앙청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박물관으로도 사용했었다.
강점기 당시 시인 이상은 이곳에서 건축업무를 맡아 일을 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 철거가 되었고 첨탑은 천안의 독립기념관으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건물과 소장품 등은 현재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관람객을 받고 있다.
삼청동 수제비집에서 애미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을 마신 날이었다.
그곳이 지금은 삼청동의 명소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원탁 테이블 두세 개만 있던 아주 작은 가게였다.
가게에 들어서면 수돗가가 뻔히 보이는 자리에 둘러앉아 손맛 좋은 수제비에 막걸리를 곁들여 먹곤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손님들이 음식을 먹는 사이에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설거지를 했다.
당시 외신기자로 일하던 선배가 내게 아르바이트를 주었었다. 미국 모 잡지에 들어갈 어떤 내용의 기사와 사진을 송고하는 일이었는데, 개발새발 콩글리쉬로 써서 넘긴 직후였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난 후였다.
"야, 이 마요르~ 넌 이걸 영어라고 쓴 거야?"
이미 짐작하고 있던 분위기였지만 술은 선배만 마신 게 아니었다.
"그럼! 선배 눈에는 이게 한글로 보인다는 말이에요?"
낮술에 취한 나는 미국살이가 인생의 1/3이 넘는 선배에게 알아듣기 힘든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마구 뱉어냈다. 가게에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돌이켜보면 참 창피한 현장의 모습이었다.
나보다 한국말이 서툰 선배에게는 부연설명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Yo, Bro. Too many English are here in our planet! 선배,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영어가 있다 아닙니까. 영어가 언제부터 미국어였단 말이에요. 캐나다 잉글리쉬, 호주 잉글리쉬, 베트남 잉글리쉬, 러시안 잉글리쉬, 선배는 아메리칸 잉글리쉬 그리고 그중에서 나는 콩글리쉬!"
나의 유창한 영어실력에 선배는 할 말을 잃고 술만 연거푸 들이켰다.
못 알아들은 게 분명했다.
그게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영어아르바이트였으니까.
선배는 술만 쳐다보고 있고... 취기가 더 오르자 마음이 답답해졌다.
'젠장, 이젠 또 무슨 일을 알아봐야 하나...'
취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선배에게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다는 말을 짧게 하고 드르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주인아줌마가 계산도 안 하고 나가는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랐지만 탁자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선배를 보더니 안심이 되었는지 다시 개수대로 갔다.
늦은 봄기운이 여름 아지랑이를 흔들고 있었다.
취기에 거추장스러워진 두꺼운 겉옷을 벗어 손에 들고 담배를 피우며 중앙청을 향해 걸어내려 갔다.
내려가다 보니 담벼락 사이로 난 쪽문이 열려있는 게 보였다.
'그래, 오랜만에 마당이나 산책하고 돌아가자.'
쪽문을 통과해 들어가자 짐받이가 있는 자전거가 한 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 웬 자전거?'
나는 주인 없는 자전거에 올라타고 경내를 갈지之자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답답했던 속이 조금 뚫리는 것 같더니 콧노래도 나오고 기분이 좋아졌다.
앞마당을 휘젓다가 뒷마당으로 홱 돌아서 경복궁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페달을 고쳐 밟을 때였다.
"야! 자전거!! 거기 안 서!!!"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나는 자전거의 페달을 더 힘껏 밟아 달아났다.
달려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경내 경비원 세 분이 나를 잡으려고 달려오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는 몰라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요리조리 곡예운전을 하며 경내를 두세 바퀴쯤 돌고 나니 경비원 아저씨들이 어딘가로 무전을 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몇 분 안돼서 경찰관 둘이 경내로 달려 들어오는 게 보였다.
"옴마야!"
나는 자전거 페달을 더 힘차게 밟아 다시 뒷마당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몇 분 되지 않아 경찰들과 경비원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이봐,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저요? 지금은 일이 없어요. 흑흑."
자전거는 경비원 아저씨들이 낚아채 가져가 버리고 나는 두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삼청파출소로 올라갔다.
"으으, 술냄새. 이 친구 도대체 낮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나의 두서없는 넋두리를 들은 경찰관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까짓 아르바이트 잃었다고 경내에서 경비원들 자전거를 훔쳐 탔다는 말이야? 자네는 경내에서 정숙보행, 자전거 등 탈 것 금지라는 것도 몰라?"
"죄송합니다요."
마음씨 좋은 경찰들은 나를 훈방조치하고 파출소 밖으로 밀어냈다.
파출소 앞 나무에 몸을 막 기대는데 청와대 뒷골목에서 지퍼를 내렸다가 경범죄로 붙잡혀 오고 있던 선배가 보였다.
술 마시다가 갑자기 사라진 나를 찾으려고 밖으로 나와 헤매는데 갑자기 찾아온 생리현상을 참을 수가 없었다나. 담벼락에 머리를 기대고 지퍼를 내리는 선배를 경비대가 발견했다고.
선배는 나무 뒤에 숨은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마요르~ 이 쉐이 너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이 나쁜 쉐이. 넌 디졌어."
선배가 파출소로 끌려 들어가면서 내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했지만 창피해서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몇 분 후 파출소에서 선배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선배는 나무에 기대어 몸을 떨고 있는 내 뒷목을 잡고 피맛골로 향했다.
"이 나쁜 쉐이. 한 잔 더해."
선배에게 끌려내려 가는 내내 얼마나 창피했던지.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셔야 저 지경이 되는 거야.'
P.S. 아직 플랫폼으로부터 답변은 없었지만 연재(골계전)가 30회로 제한이 되어 있는 건지 31번째 글이 올라가지 않아 일단 자유글로 올립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골계전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