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느낀 성장포인트 5가지, 그리고 마무리
작년 2월,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의 1년의 회고를 올렸었다. 그리고 벌써 또다시 일 년이 더 흘렀다. 시간은 역시나 빠르게 흘러간다. 22년도 회고 글을 읽으며, 23년도를 보낸 나는 더 성장했구나를 느낀다. 이번에도 작년에 브랜드 다자인 실무를 경험하며 느낀 점들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프로젝트에는 늘 기한이 존재한다.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진행되는 프로젝트부터, 한 달, 심지어는 일주일(5일) 프로젝트도 경험했다. 그리고 나는 다양한 기한의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느꼈다.
주어진 기한에 따라, 하루하루 몰입하고 고도화해야 하는 대상은 달라진다. 어느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폭넓은 리서치와 버벌 아이덴티티(Verbal Identity)라 부르는 브랜드의 언어적인 정의부터 밀도 있는 시간을 투자하고, 기한이 짧고 당장 디자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비주얼 디자인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리고 때로는 디자인의 고도화보다,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PT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각기 다른 기한을 가진 프로젝트에 임하며, 그날의 중요업무, 과업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며, To Do List를 작성한다. 크게 오전 오후로 나누고, 그 안에서 다시 디테일한 시간을 나누는 편이다. 스튜디오에서는 프로젝트 관련 톡방에 오늘 어떤 업무를 진행하는지 팀원들 각자의 To Do List를 공유하고 있다.
시간관리와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일정이 꼬이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디자이너로서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시간관리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디자인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너무 몰입해서 디자인의 ‘디테일’을 다듬는 작업을 계속하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로고, 패턴, 컬러, 패키지 제작물 등 다양한 품목이 제안돼야 하는 프로젝트에서, 로고 디자인의 디테일만을 계속 고민하다 보면 다른 과업의 진도가 늦어지고, 업무가 조금씩 밀리면서 전체 일정이 흔들릴 수 있다. 이럴 경우 야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스스로의 기준에서 만족하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지만, ‘일정’이 존재하는 프로젝트의 성격상 스스로 100%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디자인을 내보내야 하는 경우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록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디자인 작업에는 완성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언제 멈추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음 날 일어나서 다시 보면 또 달라 보이고, 아쉬운 점이 보이는 게 디자인이다. 디자인을 비롯한 다양한 업무들이 존재하는 프로젝트에서, 시간관리를 위해 각각의 업무들을 소화하며 다음 진도를 나가야 할 때를 잘 판단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늘 느낀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상상한 아이디어나 디자인의 느낌을 실제 디자인 프로그램(Adobe)에서 그래픽으로 구현했을 때, 그 간극이 큰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시각적 레퍼런스를 참고하며 상상한 것이나, 손으로 그린 러프한 스케치 등 분명히 나의 머릿속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디자인들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결과물로 그려지는 것이다.
디자인은 내 안에 담긴 다양한 영감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전시, 음악, 길에서 본 포스터, 간판의 글자, 핀터레스트의 수많은 작품 등 디자이너인 나는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머릿속에서 ‘느낌’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영감과 무형의 것을 모니터에서 적절한 그래픽으로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형으로 존재하는 영감, 느낌을 나의 상상에서 실제 그래픽으로 큰 간극 없이 표현하려면, 영감을 받는 것에만 그쳐선 안되고 많이 만들어보고 시도해봐야 한다.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평소 담아둔 영감이나 느낌들을 실제 프로젝트에서 툭툭 적용해 보고, 그래픽 결과물이 나의 생각과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면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을 하는 편이다. 이렇게 러프하게라도 ‘느낌’을 실제로 구현해 보면서 상상과 실제의 간극 차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디자인에 대한 눈이 높아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높아지는 눈에 비해 손이 못 따라오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많은 작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나의 머릿속이 Adobe프로그램으로 완벽하게 기능하며, 상상 속 스케치가 모니터에 그대로 구현되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디자인 시안을 제작할 때, 디자인이 해당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적합한지, 적합하지 않은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1-10으로 나누고 작업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늘 기한이 존재하는 프로젝트에서 방향성에 맞지 않는 디자인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하기 전에 생각을 먼저 해보고, 디자인이 시안으로서 가능성이 4 이상이라고 판단이 들면 작업을 진행하고 시안화 해서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하이엔드 컨셉을 가진 ‘BRAND’라는 이름을 가진 로고를 디자인한다고 가정해 보고, 간단하게 로고 시안을 제작해 보았다. 그리고 시안으로서의 가능성을 1-10 사이의 기준으로 나누었다.
1번 시안은 시안으로서 가능성이 1, 2번은 4, 3번은 7 이상으로 판단을 했다. 1번 시안의 볼드하고 동글동글한 형태의 워드마크는 어딘가 귀엽게 느껴지고, 프리미엄보다는 캐주얼하고 통통 튀는 젊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3번 시안의 경우에는 깔끔하고 단정한 형태로, 프리미엄한 인상을 담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실제 프로젝트라고 가정한다면 오른쪽과 같은 인상을 가진 디자인 시안들이 A안으로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개발되는 디자인일 거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2번 시안처럼 기준이 4~5 정도 되는듯한 애매한 판단이 드는 시안이다. 언뜻 보면 다소 스포티하고 캐주얼해 보이기도 하지만 프로젝트의 맥락과 브랜드의 방향에 따라서, 또는 디자인 컨셉에 따라서 프리미엄 컨셉이 담길 수 있는 룩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는 러프하게라도 스케치해서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디자인에 정답은 없지만, 보편적으로 느껴지고 받아들여지는 나름의 ‘인상’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로서 주어진 제약 속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디자인의 간극을 잘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답일 수도, 때론 정답일 수도 있는 그 미세한 간극을 잘 오고 가는 디자이너가 되기를,
흔히 오타라고 하면 철자가 틀리거나, 단어가 틀리는 등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오타는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두 번 띄어진 띄어쓰기, 라인 두께의 차이, 폰트 크기의 차이, 폰트 종류의 차이, 다르게 적용된 컬러, 어긋난 정렬 등 디자이너의 오타는 무궁무진하다.
오타의 치명적인 점은 데이터가 서로에게 공유되는 팀 프로젝트의 특성상, 누군가에 의해 오타가 발생했을 때, 다른 팀원이 발견하고 수정하는 데는 약 10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내가 최초 파일을 생성하는 1분이 섬세하지 못하면, 누군가의 10분이 내가 실수한 오타를 수정하는데 쓰이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도 오타를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은 이런 오타를 클라이언트가 먼저 발견하게 될 때다. 단순히 철자를 틀린 것을 넘어서 “이 쪽 라인이 중앙에 안 맞는 거 같은데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와 같은 피드백을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치명적인 피드백이다. 전문가인 우리가 놓친 부분을 비전문가인 클라이언트가 먼저 발견하는 이런 상황은 우리 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나라도 나의 중요한 사업에 대한 디자인을 의뢰한 스튜디오에서 이런 기본적인 부분을 놓친다면 그 팀에게 디자인을 맡기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오타는 디자인의 실력과는 관계가 없다. 단지 얼마나 더 섬세하고 꼼꼼하냐의 문제이다. 늘 이런 기본을 놓치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디자인 시안을 만들다 보면 내가 만든 시안에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했기에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만든 디자인 시안에 애착이 너무 강해지면 해당 시안에만 매몰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방향성의 디자인을 생각해보지 못하거나, 프로젝트의 큰 맥락을 놓칠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여러 피드백이 오고 가는 상황에서 나의 디자인에 대한 객관적인 피드백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피드백이 불편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팀으로서, 우리는 나의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고, 나아가 클라이언트 사업을 위한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늘 디자인 시안에 대해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연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리고 디자인을 해오며 느꼈던 가장 막막했던 순간은 나의 디자인이 괜찮은 건지, 부족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이다. 이럴 때 늘 도움이 되었던 건 동료들의 피드백이다. 동료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짚어준다. 반대로, 나 스스로도 동료들의 디자인에 피드백을 주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느낀다. 혹여나의 피드백으로 상처를 받거나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디자인은 서로의 피드백을 통해 더 나은 결과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
나는 2024년도 4월 1일 자를 마지막으로 나의 첫 번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했다. 많은 것을 배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나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잠깐의 휴식과 준비를 하려고 한다. 앞으로 어디에서 소중한 경험을 할지, 설레고 기대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