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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콩 Apr 16. 2024

세월호 10주기













한국에서 딱 10년 전이었던 2014년 4월 16일에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나 하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그게 PTSD나 다름없다고 했다. 당시의 사고를 지켜봤던 전 국민이 똑같이 앓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저 배에 탄 애들은 두고두고 기억할 이야깃거리가 생겼네, 조금쯤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정작 아이들은 뭘 기억하지도 이야기하지도 못한 채 끝내 까만 물속으로 영영 사라졌고, 그 배에 타지도 않았던 사람들만이 운 좋게 땅에 남아서 이토록 오래 기억하며 슬퍼하게 될 줄은 꿈에도 알 수 없었을 때였다.






중국 남조 송나라 시대의 일화집인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출면편黜免篇」에는 이런 고사가 실려 있다.


진나라의 재상이자 군인이었던 환온이 촉나라를 정벌하러 가던 때의 일이다. 병사 하나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왔는데, 그 원숭이 어미가 울면서 백여 리도 넘는 거리를 뒤따라와서 배 위로 몸을 던졌으나 곧바로 죽고 말았다. 배에 있던 이들이 죽은 원숭이의 몸을 가르자, 빼앗긴 자식을 구하려는 일념과 슬픔으로 잔뜩 애태우며 달려온 그 어미의 창자는 이미 모두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이 이후로 단장斷腸은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슬픈 이별의 아픔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나는 그 단장의 울음소리를 진도 팽목항 중계 뉴스에서 처음으로 들었다.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탔던 배가 침몰했고 몇 구의 시신을 겨우 건져냈으나 신원을 알 수 없다는 비보를 접한 부모들이 황망하게 달려간 곳. 남자아이고,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고, 머리 길이는 어디까지 오며,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유가족을 찾는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한 어머니가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딸의 이름을 부른다. 울음에 섞여 들렸던 그 아이의 이름은 10년 넘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박혀 있다.


내가 아이를 가진 엄마가 되고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은 오늘날에는 그 고통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배 속에 있는 작은 아기도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이렇게나 소중한데, 애지중지 키워온 아이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부모들의 심정은 어땠을지 차마 상상하기도 힘들고 겁난다. 떠올려보려 하면 건드리자마자 터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가득 부풀어 오르는 슬픔.





참사 이래로 4월 16일 벌써 10번이나 반복되었지만 어떻게 계약서를 쓰지도 않은 사람이 일등 항해사로 배에 탈 수 있었는지, 선원들은 왜 퇴선 명령 없이 승객을 버려두고 탈출했는지 무엇 하나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당시 국가수반이었던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컨트롤타워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오히려 세월호 관련 조사 기록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30년 동안 봉인해 버렸다.





중일전쟁 당시의 난징 대학살을 다룬 홋타 요시에의 소설, 『시간』(글항아리, 2020)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수백 명의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얼마나 무의미한 말인가. 숫자는 관념을 지워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색안경을 끼고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람이 이만큼이나 죽어야만 하는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 목적이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죽은 사람은,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죽을 사람은, 수만 명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죽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수만에 이른 것이다. 수만 명과 한 명. 이 세는 방식에는 전쟁과 평화만큼의 차이가, 신문기사의 글자 수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홋타 요시에, 『시간』. 글항아리, 2020.)





10년 전 그날의 사고로 어른과 아이를 합쳐 모두 304명이 세상을 떠났다. 숫자로 나열되는 죽음은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304명이 죽은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304번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면 더욱 견디기 힘들어지지만, 어쨌든 그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그 가족들까지 합치자면 몇 번의 죽음이 일어났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재난과 대학살을 병치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그 누구도 똑바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사람들이 더는 '전원 구조'라는 말과 '가만히 있으라'는 말, 그리고 정부나 기관 등의 재난 지휘 체계를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게 되어버린 그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일어났던 화재 사고가 이를 잘 보여준다. 열차의 아랫부분에서 연기가 발생하고 있으며 확인 조치 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차장의 안내 방송을 무시하고 차량 내부의 비상 코크를 조작해 차량 문을 열어 탈출을 강행한 승객들이 다수 있었다. 어두운 지하 터널 안이었고 반대편에서 다른 철도 차량이 오면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음에도, 세월호 참사에서 비롯된 공포심과 두려움이 이성적인 상황 판단 능력을 무력화시킨 사례였고─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이 몇 차례나 일어났다. 이렇게 무너진 신뢰를 복구하는 데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걸릴까.






10주기도 결국 이렇게 작년까지와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것 같다. 진상 규명을 외치는 목소리와 어둠 속으로 숨어드는 그림자들. 더 늦게 전에 밝혀야 할 것이 밝혀지고 처벌받을 사람이 처벌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로 잊히지는 않기를 바란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모든 게 종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게 싫어서 추모라는 말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 10년 동안 매해 돌아오는 참사일을 무겁게 받아들였지만 지겨워한 적은 없었다. 그 누구도 어떤 무언가가 될 수 있었던 가능성과 꿈들이 304번 죽은 이 일을 과거로 쉬이 덮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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