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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밀 Jun 18. 2024

임신 26주 차의 일기

우리 아이는 이렇게 생겼구나!








태교 여행을 다녀왔다.






황금연휴를 맞아 고성으로 훌훌 떠난, 2박 3일의 짧은 여행. 


집순이 집돌이 부부에게 가장 큰 태교는 집에서 뒹굴뒹굴 노닥거리며 보내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남들 다 간다는 태교 여행이니 가까운 곳으로라도 잠시 떠나보기로 한 것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배가 많이 나왔다. 이제 곧 차차가 많이 커서 오래 앉아있는 것도 쉽지 않은 날이 오겠지. 사실 이미 장기가 많이 눌리기 시작해 밤마다 몇 번을 뒤척이는지 모르겠다. 길이가 100cm에 달하는 바디필로우 없이 옆으로 잠들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번에 태교 여행 때도 가져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짐을 최대한 간소하게 들고 가자는 생각으로 포기했다.











낙산사에도 들렀다. 차차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개월 수도 지금처럼 큰 이슈 없이 무탈하게 잘 채우고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고 소원을 빌었다. 남편은 무교고 나는 마음만큼 절에 자주 가지 않는 신자이지만, 그래도 차차의 태몽은 연꽃이었으니 분명 부처님이 잘 지켜주실 거라는 믿음.









용띠인 차차를 생각하며 초도 하나 사서 올렸다. 초 케이스 겉면에 차차를 무사히 낳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말과, 우리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달라는 말을 가득 썼다.









지나가시는 분께 부탁드려 사진도 찍었지. 차차와 셋이 찍은 사진이 늘어간다.









차차가 태어나면 보여주려고 일상을 조금씩 기록해나가는 중.













원래는 25주 정도에 진행했어야 하는 임신성 당뇨 검사. 지난번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임당 검사 및 입체 초음파 검사 일정 예약을 잡을 때 25주 차에 태교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했더니 간호사님께서 마음 편히 다녀오라고 일정을 미뤄주셨다. 그렇게 26주 차에 검사를 진행하게 되었고, 두렵고 걱정되던 (차차를 보는 건 설레지만!) 임당 검사일이 밝았다.




임신성 당뇨는 임신 후 호르몬의 영향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증상 중 하나로, 혈중 당 수치가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임신 중 혈당을 정상 수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인슐린이 필요한데, 임신 중 생성되는 성장호르몬과 태반젖샘자극호르몬이 인슐린 작용을 방해하게 된다고. 임신성 당뇨는 한번 발생하면 임신 기간 내내 지속되어 양수과다증, 임신중독증, 단백뇨, 신우신염, 부종, 조산, 난산, 유산, 자연분만이 어려울 정도로 거대아 출산 등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를 측정하기 위한 임당 검사는 일반적으로 24주에서 28주 사이에 실시되는 검사. 당뇨 검사 시약을 마시고 1시간 후 채혈했을 때 혈중 당 수치가 140mg/dl을 초과하면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재검에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운동이나 식이요법만으로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인슐린, 경구혈당강하제를 처방받고 분만 후에도 4~12주 사이 검사를 실시해 당뇨병의 지속 여부를 다시 확인한다.





주변에서 임신 및 출산을 경험한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임당 검사를 한 번에 통과한 경우가 없었다. 다들 재검 판정을 받았고, 재검에서도 높게 나와 강도 높게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만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겁에 질려 있었다. 


속이 빈 상태에서는 더 쉽게 울렁거린다는 핑계로 매일 오전이며 오후마다 빵을 야금야금 먹던 나. 속이 답답해 탄산이 당긴다는 말로 탄산수도 아닌 콜라나 사이다를, 그것도 제로가 아닌 것으로 한 컵씩 꿀꺽꿀꺽 마시던 나.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번 주 내내 딸기 맛과 초콜릿 맛 츄파춥스 사탕을 물고 일하던 나. 그런 나에게 드디어 심판의 시간이 찾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어디까지나 호르몬의 문제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식단 관리로는 전혀 개선할 수 없는 게 임당. 병원에서도 검사 당일에 공복으로 시약을 먹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아침 8시쯤 전날 사다 두었던 도넛을 먹었다.


그리고 8시 40분, 임당 시약 복용. 남편이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려고 억지로 꾸역꾸역 시약 마시는 걸 본 게 얼마 전 일이라 시약에서 이상한 맛이 나지는 않을지 내심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적당한 설탕물 맛이라 삼키는 것 자체는 어려움이 없었는데, 문제는 약 때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울렁거린다는 것. 시약을 마신 뒤에는 물도 마시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이 있어서 꾹 참았다.




임당 시약 복용 후 정확히 1시간 후에 채혈을 해야 했기 때문에, 9시 20분쯤 병원에 도착했다. 체중과 혈압을 재고 약 5분 정도를 더 기다렸다가 9시 40분이 되어 채혈. 가뜩이나 주삿바늘을 무서워하는데 간호사님이 따끔할 거예요, 가 아니라 좀 불편하실 거예요,라고 하셔서 결국 참지 못하고 낮은 비명 소리를 내고 말았다. 혈액 보관용으로 추측되는 통을 두 개 꺼내시는 것까지만 보고 고개를 돌렸지만, 시간이 꽤 오래 걸린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두 통에 피를 다 담은 것 같았다.



채혈 후 5분 정도 지혈했다 반창고를 붙이고 입체 초음파실 앞으로 이동했다. 지난번 정밀 초음파 검사 때는 차차가 잘 움직이게 하려고 병원 복도를 몇 바퀴나 돌아야 했는데, 요즘은 차차 태동이 꽤 잦기도 하고 어젯밤엔 자기 직전에 배를 쓰다듬으며 차차한테 엄마 아빠가 보러 가면 얼굴 잘 보여달라고 당부도 단단히 해두었기 때문에─ 이번엔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다.



정밀 초음파 검사 때는 함께 들어가지 못했던 남편도 입체 초음파는 같이 보러 갈 수 있어서 두근두근. 곧 내 이름이 불리고, 초음파실에 들어가 배를 가린 옷을 걷고 누웠다.






선생님이 아기 얼굴을 보려면 아기가 움직여야 한다고 하셔서 방금까지 잘 놀았다고 했는데, 진짜로 초음파 영상이 나타나자마자 얼굴이 바로 보였다. 엄마 아빠 말을 잘 듣는 효자. 





초음파 검사 할 때 몇 번인가 차차가 작은 고사리손을 들어 얼굴을 야무지게 가리고 있던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나 했는데, 이번 자세는 아주 바람직했다.







옆모습에서 보이는 작고 귀여운 코.












선생님이 옆에 있는 탯줄을 슥슥 지우고, 전체적인 얼굴을 잘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내 아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엄청 귀엽게 생겼어! 내가 맨날 배를 쓰다듬으며 우리 차차는 아빠 닮아라, 엄마 최애는 아빠니까 차차도 아빠 꼭 닮아라, 주문처럼 외워대서 이 효자 아들이 말을 잘 들었는지 얼굴 구석구석이 진짜 남편을 많이 닮은 것 같아 더 좋았다.


발치에 앉아있던 남편이 차차 얼굴을 보면서 내 종아리를 살며시 쥐었는데,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도 지금 나랑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이 사람도 벅차고 있구나.





입체 초음파로 얼굴을 보니 차차가 한층 더 가까운 존재로 느껴졌다. 사실 이미 내 몸속에 있으니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나에게 가까운 존재이긴 하지만,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감정적으로 이보다 가까울 수 없을 것 같던 선에서도 한 발짝 더 성큼 다가왔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만하면 실컷 보여줬으니 만족하라는 뜻인지, 차차가 크게 움직이면서 자세를 바꿨다. 팔을 위로 번쩍 들기에 얼굴을 더 보는 것은 포기하고 지난 정밀 초음파 검사 때 체크했던 것들을 한번 더 확인했다. 손가락 발가락이 다섯 개씩 잘 붙어 있는지, 심장의 혈관 발달 정도가 어떤지, 장기는 알맞은 위치에서 적절하게 발달했는지 등등. 심장에서 뻗어 나오는 혈류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번쩍번쩍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왜 사람 안에 우주가 있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 그저 경이로웠다.



모두 주수에 맞게 잘 발달하고 있다는 소견. 다만 머리 크기가 28주 초반으로 조금 크다고 하셔서 남편과 나 둘 다 웃어버렸지 뭐야. 내심 초음파실을 나서자마자 아무리 아빠 닮으라고 했지만 머리 크기마저 닮다니, 하며 놀려주기로 다짐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진료실 앞으로 이동해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러 대기하는 동안, 초음파실에서 출력해 주신 차차 사진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봐도 봐도 안 질리는 우리 아기 얼굴.




                     





진료실에 들어가자 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맞아주셔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기는 예쁘게 잘 보고 오셨네요, 그런데 철분제 따로 안 드세요? 하시길래 엽산 남은 거랑 철분제 매일 챙겨 먹는 중이라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얼굴이 풀리시는 선생님. 철분 수치가 산전 검사 때보다 더 낮아졌는데, 원래 임신 전에도 철분 수치가 낮았으면 임신 중 아기가 가져가는 영양 성분도 있기 때문에 이처럼 계속 낮아질 수 있다고 하셨다. 이미 철분제 잘 먹고 있다니 물약으로 된 걸 추가해서 흡수율을 높여보자, 모자라면 철분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수술 전까지 철분 수치가 이대로 낮게 유지되면 수술 때 수혈을 받아야 할 거라고도 알려주셔서 조금 겁이 났다. 그런 와중에 수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출산 가방 챙길 때 집에 있는 헌혈증도 다 챙겨서 가져가야겠다고 다짐하는 나와, 옆에서 바로 핸드폰을 꺼내 철분 섭취에 좋은 식재료를 찾아보는 남편.



철분 외에 특별한 소견은 없어서 4주 뒤 있을 백일해 예방 접종에 대한 안내만 더 듣고 진료가 끝났다. 나는 접종비가 무료지만, 남편은 6만 원을 내고 맞아야 한다. 남편이 둘 다 부모인데 한 명만 보험이 되는 이유를 궁금해하길래 나는 태아에게 항체를 전달해야 하는 일종의 항체 캐리어로서 맞는 거라고 웃었다.






점심을 먹을 겸 본가에 들러서 마침 집에 있던 아빠한테 차차 사진을 보여주고, 병원에서 출력해 준 사진 3장 중 1장을 선물했다. 오후에 할머니 뵈러 간다고 하길래 할머니 보여드릴 것도 몇 장 더 잘라줬는데 아빠 역시 아무리 봐도 신기하고 좋은지 사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엄마도 사진 보고 어쩜 이렇게 예쁘냐고 난리. 


할머니도 사진을 보자마자 전화를 걸어와서는 우리 때는 이런 게 없었는데 이제 세상이 좋아져서 아기 얼굴도 이렇게 미리 볼 수 있구나, 송 서방이 잘생기고 네가 예뻐서 아기도 이렇게 깎아놓은 밤톨처럼 자알 생겼다, 하시며 좋아하셨다. 


캐나다에 있는 고모한테도 사진을 보냈는데 아빠가 진작 단톡방에 올려서 선수를 쳤다고. 고모는 차차 입술이 꼭 나 어릴 때를 닮았다고 했다. 차차 얼굴이 남편을 꼭 닮은 줄로만 알았고 그 사실로도 충분히 기뻤었는데, 나를 닮은 구석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새삼 기뻤다. 





임신 중기에 가장 걱정했던 임당 검사도 무사히 지나가고, 차차의 얼굴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26주 차 진료. 이제 철분 수치만 꾸준하게 신경 쓰자! 검사 결과에 안 나타났을지 몰라도 비타민 D 수치 역시 딱히 높지는 않을 테니 함께 올려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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