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끈을 놓을 수없는 기자의 삶
"여행기자 너무 좋지~ 기사만 안 쓰면 참 행복할 텐데 말이야"
여행전문기자로 20년 차를 훌쩍 넘긴 선배가 우스갯소리라며 하신 말씀이다.
여행기자들은 연간 수차례. 매달 혹은 매주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기자는 매주 목요일 금요일 1박 2일로 전국 곳곳을 누빈다. 전국 각지를 찾아 그 지역의 명소를 둘러보고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러고는 느낀 것들을 기사로 풀어낸다. 나는 아직 꼬맹이 여행기자라서 선배들을 졸졸 쫓아다닌다. 여행지에서도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 부릴 새가 없다. 정보를 하나라도 더 새겨 넣기 위해 가이드나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받아 적기 바쁘다.
그러나 선배들은 다르다. 가이드님을 쫓아다니기보다는 커다란 대포카메라를 들고 자신만의 시선에서 바라본 풍경들을 담아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누른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물로 나온 기사를 보면서 느낀다. 아 여행기사의 전율은 사진에서 오는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이렇게 취재한 내용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 선배들의 여행기사는 구구절절 설명 없이도 한 문장에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을 담아낸다. 정보가 아닌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축약해 내는 이 작업이 나는 너무너무 생소하고 부담됐다.
앞서 산업부에 몸담았던 나는 기사 리드문(첫 문단)에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해 매일 머리를 싸맸다. 직관적인 정보 전달을 위해 숫자로 이야기하고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드라이한 글로 기사를 풀어냈다. 그러나 여행기사는 다르다. 기자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글을 통한 표현력도 대단히 중요하다. 6년 동안 숫자로만 이야기하는 글을 써온 나는 이게 너무 어렵다.
지난해 연말, 나는 여행을 다녀왔다. 출장으로 다녀온 키르기스스탄은 내 인생에서 처음 보는 풍경들이 가득했다. 여행 기자로 이제 막 걸음을 뗀 나에게 아직 새로운 세상은 낯설고, 설레고 짜릿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여행지에서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어느 순간 나는 메모장을 켜고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여기서 뭘 봤더라? 까먹기 전에 적어놔야지. "여러분~ 오늘 장소는 어떠셨어요?" 제2의 여행 가이드가 된 것처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일행들에게 묻는다. 그러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기자님 인터뷰하시는 거예요?" 다들 깔깔 웃는데 나만 속으로 생각에 잠긴다.
나도 내가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풀어가고 싶은데. 아직은 글로 표현하는 일에 한계가 느껴진다. 산업부 기자로서의 취재원들의 말과 팩트가 중요했던 터라 오늘도 자꾸 사람들에게 인터뷰 질문을 건넨다.
내가 이곳에 맘 편히 여행으로 왔다면 어땠을까? 키르기스스탄에서의 7박 9일 로드트립이 끝나고 나니 알 것 같다. 마음 한편에 있는 긴장감과 불안함이 매일 밤마다 올라온다. 그래도 여행기자는 처음이니까. 하나씩 배워가는 시간들이니까 차근차근하다 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겠지?
그럼에도 오늘도 드는 생각은 똑같다.
"아 기사만 안 쓰면 참 행복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