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s of writers Ⅴ. 책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든 책에 대하여
2014년 10월..
호감을 갖고 연락을 주고받던 남자와
드디어 만나기로 했다.
만남의 장소는 교보문고 잠실점.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도착했다는 연락을 남기니
왜 그렇게 일찍 왔냐며 서둘러 가겠다는 그의 답장.
전철 안에서 뛰어보기라도 해서 서두르라는
우스갯소리를 남기고 책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음.. 이게 얼마만의 서점이지..
고등학교 때 문제집 사러 온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에.
이달의 베스트.. 이주의 베스트.. 를 훑어보는 척
자연스럽게 만화책 코너로 향하려 했는데
지이잉- 지이잉-
"네"
"저 다 왔어요. 어디에 있어요?"
"어.. 저 세계.. 고.. 전문학.. F에 있어요..?"
"? 엄청난 데에 있네요. 좀 안쪽에 있구나."
"아냐! 내가 앞으로 나가면 돼. 어디 있어요?"
잠깐의 정적과 함께 웃음끼 잔뜩 머금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어요."
정확히 나를 보며 직진 중인 한 남자.
허벅지 중간정도 오는 챠콜색 코트에 진밤색 로퍼.
깔끔하게 올려 고정하고 나온 듯하나
뛰어왔는지 살짝 헝클어진 머리와
약간 상기된 얼굴에 얹어진 안경.
"안녕."
잠깐사이 성큼 내 앞까지 다가와
손에 들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인사를 했다.
"어 네 안녕?"
"그게 무슨 말투지.."
이 상황이 웃긴지 키득거리는 남자.
"그나저나 여긴 왜 있는 거야? 사고 싶은 책이 있는 거야?"
그러게요. 나는 여기는 지나가는 중이었는데 말이지요.
"응. 이거 한번 읽어보려고."
나. 책을 좀 읽는 여자처럼 보이고 싶던 나.
그런 내가 집어 들었던 책은 바로.
"오.. 이런 류의 책을 읽는구나.."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
학교 교과서 이후로 처음 접하는 고전문학.
그것도 세-계. 솔직하지 못했다 나란 아이.
이후 요리를 업으로 삼았던 그 남자는
원서로 된 요리책 하나를 구입했고,
그날의 데이트의 전리품 같던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은
한구석에 소품으로 자리잡지 않고
손에 꼽히는 완독 한 책이 되었다.
어떤 내용인지.
이 책에서 어떤 걸 느끼는지.
왜 그 책을 사게 된 건지.
무한하던 그의 관심 덕분에.
.
.
이것은 책에 대한 글인가.
그 사람에 대한 글인가.
정체성 외에도 그와 만나는 시간 동안
함께 서점을 간 적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두세 번 중 한 번은
책을 사 와 읽을 정도로
독서가 취미이던 시간이 있었다.
책에서 얻은 단어와 지식이 많았고,
그런 것들이 쌓여 남들과의 대화에서
더 넓고 다양한 시선으로 듣고 느끼며,
내 의견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내 삶에 영향을 준 특별한 책은 아쉽게도 아직 없다.
오랜 시간 멀어졌다
다시 용기 내어 간 서점에서 만난 책들이
나에게 또 다른 영향을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