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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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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덴의아래 Aug 01. 2023

무중력의 밤

23년 7월. 강원도 영월군 신선바위봉



보름이 가까워지는 달은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바위에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에 흠칫 놀라다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지금 위축되어 있긴 하구나.


북쪽을 가로막고 서 있는 백덕산 봉우리가 불필요하게(?) 환했다. 신선바위봉 정상에서 혼자 텐트 없이 보내는 하루밤. 퍼런 형광색 달빛 아래 묘하게 들떠 보이는, 살짝 흥분된 산의 빛깔이 어딘가 비현실적이고 무서웠다.


다 저놈의 고라니 울음 소리 때문이다. (혹시라도 고라니 울음소리가 어떤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일단 한번 들어보시기를 권한다. https://youtube.com/shorts/chCQAz0nQ8A?feature=share)


밤공기를 뚫고 산에 메아리치는 고라니들의 울음소리. 인생을 비관한 아저씨들이 악몽에 절규하는 것 같은 소리다. 저게 고라니 소리이고 고라니가 나한테 덤벼들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으니 망정이지, 저쪽 능선에서 이쪽 산비탈로 그리고 저 멀리 계곡으로 계속 움직여다니는 서너마리의 울음소리에 괴괴한 달빛까지 비추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밤 11시 신선바위봉 위. 비비색 안에 누운 채 고개를 돌리면 보이던 광경.


오늘 산에서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삵은 두 마리 만났다. 조금 전에는 저 검은 숲속에서 무언가 푸드드드 몸을 흔드는 소리도 들린 거 같다. 기분을 좀 달래보려고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오늘 동행할 뻔하다 못한 형관이에게 고라니 소리 때문에 기분 이상해서 못 살겠다고, 고라니 좀 멀리 쫓아보내면 좋겠다고 했더니 이렇게 답이 왔다.


산에서 고라니를 쫓는 것은 불법이며 동물에게 해를 끼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저는 그런 행위를 장려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연과 동물들과 조화롭게 지내는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산속에서 자연을 즐기며 하이킹을 즐기고, 동물들을 관찰하며 생태계를 존중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자연을 즐기는 즐거움과 생태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챗GPT의 답변이란다.


덕분에 살짝 긴장이 풀렸다. 그렇지만 인공지능보다 수양이 덜 되어 그런지 몰라도 고라니 소리를 즐기기는 쉽지 않다.






사실 일생일대의 경이로운 일이 내게 일어난 기념비적인 하루이기도 했다.


7월 마지막주 토요일. 사람 없을 것 같은 비박지를 찾다가 결국 이곳을 고르긴 했는데 피서철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차가 많이 막혔고, 도착해서는 주차 때문에 꽤 애를 먹었다. 법흥사 계곡이 10km 넘게 도로로 이어지는 큰 계곡인지 나는 몰랐고, 그 안에 그토록 많은 펜션과 캠핑장과 피서객들이 있는지도 몰랐으며, 그 끝에 주차장이 없다는 것 역시 몰랐다.


이상하다, 분명히 사찰 유료주차장이 있다고 했는데.... 계곡 가장 상류이자 도로 끝에 널찍하게 자리한 ㅅ펜션 땅으로 잘못 들어갔다. 차를 돌리다 말고 잠시 내려 사장님을 찾아갔다. ㅅ펜션이 운 좋게도 유료주차를 받아주어 너무 고마웠고 사장님이 친절하더라는 누군가의 블로그 글을 읽은 적이 있기에, 혹시나 유료료 이틀간 주차를 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나와 대화한 펜션 주인은 연세가 있으신 할머니 사장님이셨는데 짜증이 묻은 말투로 "여기는 주차장이 아닙니다"하고 살짝 공격적으로 말씀하신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투다. 나같은 사람이 계속 있어서 귀찮아서 그런가보다 생각은 하지만 잡상인 내쫓듯 하는 분위기가 좀 불편하다.


아무리 봐도 주차장은 없고, 주차할 자리를 찾으려면 1~2km 정도는 도로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캠핑객들이 몰고 온 갖가지 SUV들로 좁은 도로는 이미 복작였다. 서로 교행이 안 되는 좁은 길목에서 맞닥뜨리지 않도록 미리미리 전방을 잘 살피며 운전해야 하는 1차로 시멘트길이었다.


어떡하지 하면서 삼사백미터를 내려가는데 도로 한 켠에 차 대여섯대가 들어갈만한 흙바닥 공터가 보였다. 나는 얼른 차를 90도 각도로 박아놓고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낸 후 지체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혹시라도 동네 사람이 나타나서 거기 차 대면 안돼요 할까봐.


걸어서 아까 그 자리로 다시 올라갔다. 앱으로 확인하는 등산로 시작은 분명 저기이고 등산로 입구 계단이 저쪽에 뻔히 보이는데, 하필이면 아까 좀 기분나쁘게 거절당했던 ㅅ펜션 마당을 가로질러야 계단까지 갈 수 있다. 길을 따라 위아래 집으로 왔다갔다 해봐도 담장 같은 걸로 다 막혀 있어서 거기까지 갈 방도가 없다. 계단 아래는 ㅅ펜션 땅으로 이어져 있는데 통행하지 말라는 뜻인지 펜션 측에서 굵은 줄로 막아 두었다. 결국 다른 수가 없어서 펜션 오른편 주차공간을 가로질러 건너간 후, 펜션 땅과 산이 접한 가장자리를 따라 흙비탈을 20미터 정도 걸어가서 계단에 진입했다.   


휴, 성공적으로 주차도 했고 입구도 찾아 들어왔으니 이제 맘 놓고 산행이나 하면 된다..... 그런데 15분 정도 올라갔을까, 계속 찜찜하게 마음에 걸리는 거다. 혹시 내 차 때문에 다른 차들이 엉키면 어떡하지. 차량 교행 공간을 가로막았다고 내일 차 뺄 때 욕먹으면 어떡하지. 아니 무엇보다, 산꼭대기에 있는데 전화 와서 차 빼라고 하면 어떡하지.


잠시 앉아서 고민하다 결국 배낭을 바위 뒤에 숨겨놓고 맨몸으로 다시 마을로 내려갔다. 뒤늦게 지도를 보고 알았는데 1.5km 정도 내려가면 법흥사의 큰 주차장이 있고 거기에 차를 대고 올라오면 되는 거였다. 그래, 착한 시민이 되자, 마음 편한 게 최고지, 땡볕이지만 1.5km 걷는게 대수냐, 어차피 제대로 알았으면 첨부터 거기에 댔을 건데.


산을 뛰어내려가 다시 차까지 돌아갔다. 그런데 음? 그 사이 내 차 양 옆으로 다른 차 한 대씩이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다. 내가 대니까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서 댔나보다, 그럼 그냥 놔둘까, 아니 그래도 정석대로 주차장으로 옮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다가가는데, 세상에!  


아까는 못 봤는데 흙바닥에 끈으로 주차칸이 4~5대 표시되어 있고, 내 차가 그 중 왼쪽 두번째 칸에 퍼펙트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가운데 딱 주차가 되어 있는 거다!!


소는 뒷발로 쥐를 잡고 나는 주차를 한다.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쓰다보니 이렇게 길게 늘어놓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지 의문이 들지만, 어쨌든 이번 산행은 여러가지 조짐이 괜찮다. 어젯밤엔 신선바위봉에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에 감격하는 꿈을 꾸었다. 한 번도 못 가본 곳인데도 꿈이 너무나 생생하고 (물론 인터넷에서 본 사진의 영향이겠지만) 나중에 본 실제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계곡길을 타고 백덕산 정상부터 갈까 아니면 능선길로 신선바위봉부터 갈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추천 코스를 알려주는 무슨 계시인 것만 같아서 능선길로 가기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주차까지 저절로 되다니....  신선바위봉에 계신 신선이 나를 초대하고 있는 것일까.


세 번째로, 아니 좀 전에 산에서 내려오며 지나간 것까지 치면 네 번째로, ㅅ펜션에 돌아왔다. 아까처럼 자갈 깔린 주차공간을 얼른 가로질러 건너간 후 사유지 가장자리를 따라 흙비탈을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펜션 할머니 사장님이 목에 힘을 꽉 주고 공격적인 어조로 소리를 빽 지른다. "거기를 왜 가욧!!"


당황해서 돌아보았는데 할머니가 건물 안에서 내다보는건지 뭔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저기 산에 가려고...."

"가봤자 길도 없는데!!  거길 왜!!  못가요!!"


길이 없긴 뭐가 없어요 내가 아까 올라갔었는데, 그럼 저기 등산로 입구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요, 여긴 경계선 밖이라 펜션 땅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저 위에 배낭 숨겨놓고 와서 무조건 이쪽으로 가야 돼요, 할 말이 너무 많아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 왜 그리 분노에 차 있으신지도 모르겠고, 목소리만 들릴뿐 어디서 화를 내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화 내는 사람이랑 구구절절 말하기도 싫다. "얼른 지나갈게요!" 하고 허공에 대고 얘기한 후 휙 올라갔다. 동네사람 피해 안 주는 착한 시민 되려고 일부러 산에서 도로 내려왔던 건데, 아무리 피크철이라 신경이 날카로워도 그렇지 할머니가 좀 너무한다.






신선바위봉을 거쳐 웬만하면 백덕산 정상까지 가되, 다만 하루밤 잠자리로 신선바위봉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경우에 한해 거기서 자고 내일 올라간다.....


이렇게 생각한 순간부터 실은 신선바위봉까지만 가기로 마음먹은 것과 다름없다. 복잡한 논리는 그저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한  장치일 뿐.


너무너무 더웠다. 전국이 폭염 주의보라고 난리다. "봄가을에도 어차피 땀은 나고 힘든 건 똑같아"라고 애써 생각은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음이 분명하다. 두어 시간 지나자 몸이 처지기 시작했다. 혼자 가는 산행이라 더 힘든 것도 있다.


보통 1박 산행이면 물 3리터 정도를 들고 가는데, 지난 주에도 그렇고 여름철엔 물 3리터로는 모자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보다 1리터를 배낭에 더 넣었다.


뭐, 엄밀히 말하면 물은 아니고 맥주를 넣긴 했다. 신선바위봉이 가까워지면서 배낭 안 냉장고에 들어있을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아까 자두 꺼낼 때 보니까 D팩 안이 엄청 차갑던데, 맥주 캔을 꺼내놓으면 금세 물방울이 몽글몽글 맺히겠지, 캔 뚜껑을 열면 하얀 거품이 샥 올라올지도 몰라, 막 눈에 그려진다.


두 시간 반 정도 걸려 신선바위봉(1,089m)에 도착했다. 이 코스는 백덕산 정상(1,350m)까지 고도 천 미터 가까이를 올라야 하는지라 박배낭을 메고 그다지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마을이 해발 450m 정도 되니 이제 고도차 600미터를 올라온 셈이다.


신선바위는 5미터 정도 되는 높이인데 나무에 줄이 매여 있어서 잡고 오르내릴 수 있도록 돼 있다.  




아직 세 시 밖에 안 됐지만 바위 위에 올라가서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느긋하게 일몰을 기다려볼까....라고 생각했지만, 하루종일 태양에 달궈진 바위가 찜질방 맥반석처럼 뜨거워서 앉아있을 수가 없다. 엉덩이를 잠시 붙였다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뭐 굳이 원한다면 저 위에서 원적외선을 많이 쪼일 수 있긴 하겠다.


어떤 블로그엔 바위 위가 열 평 정도의 넓은 공간이라고 하던데 그 정도까진 아니고 4~5평 되어 보였다. 10도 정도 기울어진 바위면이라 텐트를 칠 수는 없다. 텐트를 올려놓을 순 있겠지만 슬슬 미끄러져 내려갔다가는 자는 사이에 절벽으로 떨어진다.


 

신선바위 옆쪽으로 살짝 아슬아슬한 지점을 건너서 등산로 반대편으로 넘어오면 위 사진처럼 생겼다.




저 뒤에 가장 높은 백덕산 정상은 아직 2km 정도 남았는데, 저기도 조망이 좋다는 소문을 들어보긴 했지만 이 더위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미 지쳤고,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다. 배낭에 넣고 다니기는 무거운데 온도는 차갑고 마시고 싶다. 이보다 더 최악의 조합이 있을까? 다음부턴 산행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차가운 맥주 따위는 절대 들고 다니지 말자 생각하며 한 캔을 땄다.





지난 주 거류산 염소 사건(https://brunch.co.kr/@560d8fe33aad457/27)의 영향으로 산에서 코젤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편의점에 팔지 않아서 대신 비슷한 다른 체코 맥주를 샀다. 일본 아사히가 대주주라는 이유로 평소 안 사던 맥주인데 염소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혼자 놀다보니 어느새 그림자가 길어지고 빛이 예뻐졌다.  올라온 방향의 능선과


반대쪽, 가야할 백덕산 정상.



저녁을 먹고 오늘의 잠자리를 만들었다. 혹시라도 비가 오면 얼굴만 우산으로 덮고 잘 계획이다.


매트리스가 자꾸 아래로 흘러내리긴 했지만 저녁 노을이 아름다웠다.







내가 달빛을 무서워하는 건가? 환한 달빛과 고라니의 울음소리에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람도 많이 불었다. 억지로 자려고 잠을 청하면 숲속에서 뭔가 돌아다녔다. 그래도 이곳은 요새처럼 몇 미터 위로 솟아있는 바위 꼭대기라 지난 주 산행처럼 무슨 큰 동물이 갑자기 나타날 것 같진 않았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잠이 들었나보다. 한 순간 눈을 떴는데, 뭔가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한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우선 아까까지의 환한 달이 사라지고 주위가 칠흑같이 깜깜했다. 새벽 1시 정도에 달이 진다고 했는데 그 시간이 지났나보다. 달빛에 푸르스름하던 하늘빛이 이제 검은색에 가까웠다. 들떠 보이던 산 사면도 안정된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하나도 없다. 온 산이 깜깜하고 아주 조용했다. 적막하고 고요했다.




정적에 싸인 어두운 산 위로 수많은 별들이 말없이 반짝였다.


그리고 누워 있는 나의 정면으로, 하늘에 걸린 은하수.



몽골 대초원의 주황색 은하수까지는 아니라 해도, 대체 얼마만에 보는 은하수인지.


주위는 너무나 고요하다. 그리고 깊이를 모르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지구가 우주를 떠다니니 나 역시 밤하늘 우주의 3차원 공간을 떠다니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저 별들은 평면에 흩뿌려진 게 아니라 멀고 가까운 공간에 점점이 박혀 있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뜨면 나는 우주에 와 있다. 조용하고 편안하고 안정된 우주다. 그 가운데에 나를 실은 이 신선바위가 무중력으로 둥둥 떠 있다. 꿈결 같아서 계속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눈을 뜰 때마다 하늘 가득 영롱한 별들 그 한가운데에 내가 누워 있다. 두렵도록 아름답다.


새벽 두시 반. 이런 별빛에 감싸여서 잠을 잘 수는 없다. 일어나서 사진을 찍었다. 언제 또 이런 순간이 찾아올지 모르는데 사진 실력이 모자란 것이 통탄스러울 뿐이다.




첫 사진과 같은 위치. 어둠 속 물결치는 산들이 차분하고 예뻐졌다


누워 있다 일어나 앉는 그 순간, 나는 오늘의 잠과 내일의 산행을 포기했다. 밤새 이 느낌에 젖어있고 싶다. 그러다 아침에 졸리면 그냥 내려가자. 피곤도 피곤이지만, 백덕산의 조망이 아무리 좋다 한들 지금의 이 감동 위에 덮어쓰기는 싫었다.


여름밤이 너무 짧았다. 4시가 지나자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다.






여명으로 푸르스름해지더니, 곧 시뻘건 태양이 떠올랐다.

 


새벽 5시반인데 해가 뜨자마자 뜨거운 기운이 훅 전해져 온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백덕산 정상에 올라가볼까 하는 일말의 미련이 뜨거운 새벽 태양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떠나기 전 마지막 기념촬영은 배낭으로


ㅅ펜션 할머니를 또 만나기 싫어서 다른 길로 내려가려 하였으나 갈림길 입구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 그냥 어제의 그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동네가 가까워지면서 이리저리 대안 루트를 찾아보았지만, 한두 개 있는 샛길도 결국은 ㅅ펜션으로 통했다. 계곡을 타고 산 위로 도로 올라가는 길이 하나 있던데 설마 거기로 삐잉 돌아가라는 뜻인가?


아침부터 웬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큰 배낭을 지고 산에서 내려와 지친 발걸음으로 펜션 땅을 느릿느릿 가로질러가니, 아직 잠옷 바람에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던 펜션 손님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다른 길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다행히 등 뒤에서 고함 소리 같은 것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산길이 그쪽으로 이어진것 뿐인데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왜 신경이 쓰이는지는 모르겠다.


운전해서 돌아오는 내내, 새벽에 우주 공간에 떠 있던 그 느낌으로 기분이 이상하다. 정말로 신선바위의 신선님이 꿈을 통해 나를 부른 것이었을까?


사진으로 보는 백덕산 정상도 사람 한두 명은 누울 자리가 있어 보인다. 조망도 괜찮은 것 같으니 이번에 아껴둔 산행을 다시 와서, 채 못 찍은 별 사진을 마저 찍어야지. 그 때는 혼자 말고, 즐거운 시간을 좋은 사람과 함께.


아, 그리고 강력 모기 퇴치 스프레이도 함께.



2023. 8. 1. 





이 산행의 GPX는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910118/584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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