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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댁 Apr 09. 2022

크로아티아의 맛(Feat. 자그레브 맛집들)

자그레브 14년 차가 알려줄게! - 그 첫 번째 이야기

 맛뿐만 아니라 멋과 분위기까지 놓치지 않는 서양식에서 프랑스 음식과 이탈리아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지금의 프랑스 요리란 게, 현재는 이탈리아인 피렌체 메디치 Medici(르네상스 부흥의 주역) 가의 공주 카테리나 Katerina de Medici가 프랑스 왕정으로 시집을 가면서 식문화를 함께 가져가 발달시킨 것이니 그 기원은 이탈리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국의 공주도 고향 음식이 너무 그리워 요리사를 데려가 그곳에서 고향의 음식을 즐겼다는 걸 보면, 음식은 우리에게 단순히 먹는 행위 이상의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하다. 짧은 여행의 일정에서 그 나라의 분위기와 문화를 엿보기에 그곳의 전통 음식을 경험하는 것만큼 오감을 만족시키는 일이 있을까.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함이 아닌, 그곳에서의 특별함을 경험하고픈 거라면 주머니 사정이 허락되는 예산 안에서 근사한 한 끼를 즐겨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물론, 여행 책자에 소개된 곳보다는 조금 더 로컬 느낌 나는 곳에서!


 여행 책자에 소개된 식당은 물론 검증된 맛집임에 분명하다. 다만, 모두가 참고하는 여행 책자에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여행객이 이용하기에 현지 분위기의 식당이라기보다는 여행객들을 위한 식당에 가깝다는 아쉬움이 있다. 로마나 파리처럼 도시 전체가 하나의 관광지인 곳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은, 자그레브처럼 아직은 여행객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은 여행 책자에 소개되어 있는 곳은 외부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물론, 현지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도 살짝 부족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도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임에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크로아티아에서 십수 년 살아온 내게 어떤 음식을 맛봐야 하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맛이란 상대적인 것이라서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맛으로 남는 것이 다른 이에겐 그저 그런 평범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늘 조심스럽다. 또한 개인적으로 음식의 '맛'이란 것은 비단 음식이 지닌 고유의 '맛' 뿐만 아니라 그 순간의 분위기와 나의 기분 등의 많은 요소들이 좌우하는 아주 복합적인 '경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 질문이 더 어렵다. 미각'이란 단순히 짜고, 달고, 시고, 쓴 등의 맛을 표현하는 것이지 사실상 '맛있다'는 절대적 느낌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늘 먹던 맛있는 음식도 나의 상황과 때에 따라서는 고무를 씹는 것처럼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평소에는 싫어하던 음식도 허기가 지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없이 맛있기도 하지 않은가. 그래서 여행지에서 맛있다는 '음식' 품목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상황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가령, 영국의 '피시 앤 칩스'가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면, 그 음식을 조금 더 영국적인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단순히 내가 이 음식을 반드시 맛봐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니니까. 먹는다는 행위를 넘어서 새로운 여행지에서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는 자체에 초점을 맞춘달까. 물론, 그 경험이 반드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이뤄져야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 국밥은 전통 국밥집에서 먹어야 제 맛이듯이 각 나라에도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또한 때론 근사한 바닷가나 산등성이에서 먹는 현지의 샌드위치와 맥주 한잔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면서 포토스팟으로 유명한 길가 전망대에 차를 세우고 슈퍼에서 사 온 햄과 치즈를 빵에다 끼워 먹던 햇살 가득하던 점심 식사를 잊을 수 없다. 눈앞에 펼쳐진 비경을 배경으로 두브로브니크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먹던 햄치즈 샌드위치는 내가 먹었던 최고의 샌드위치였다. 물론 갓 구워 나온 바삭바삭한 바게트 빵도 맛있었지만, 그 어찌 비단 샌드위치의 맛 때문일까. 그날의 바람과 살짝 나던 바다내음과 오랜만에 함께 한 엄마와의 여행이라는 기분이 그날의 식사를 최고의 맛으로 기억하게 해 줬을 것이다. 여행에서의 식사는, 그래서 특별하다. 평범한 음식도 최고의 맛으로 기억되는 추억을 선물해준다.


오랜만에 엄마와 동생, 이모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길가에 앉아 먹었던 샌드위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실, 많은 이들의 발칸 음식에 대한 평은 야박하다. 상대적 비교 관점으로 볼 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랑스 요리의 화려함도 없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피자, 파스타와 같은 이렇다 할 대표적인 요리도 없다.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 보스니아의 음식은 사실 다 비슷비슷하기도 하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 유고연방이란 이름 아래 한 나라로 묶여 있었으니 식문화도 닮아있음이 당연한 일이다. 체바피 Cevapi로 불리는 발칸식 소시지는 크로아티아에서도, 보스니아에서도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김밥이나 혹은 국밥쯤 되는 국민 음식이랄까. 먹고 살만 해야 문화가 발전하는 것인데, 아직 발칸은 식문화가 발달하기에는, 먹고살기가 바빴다. 그래서 이들의 음식은 소박하고 단순하다. 그리고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함이 있다. 그런 날것의 원시적인 느낌이 본능과 충실하게 맞닿는다. 본디 먹는 것은 우리의 본능적 욕구 아닌가. 그래서 크로아티아의 음식은 꾸미지 않은 편안하고 친근한, 격식 없는 푸근함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하루 저녁을 저녁식사하는 것에 쓸 마음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난 늘 '양고기'를 추천한다. 크로아티아 전통 요리 방식 중 'Under the bell', 굳이 직역하자면 종 아래에서 굽듯이 찌는 요리 방법이 있는데, 이 방법은 고기를 굉장히 부드럽고 촉촉하게 요리해주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일반적인 식당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리이다. 주로 양고기나 어린 송아지 고기, 바닷가라면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문어를 이 방식으로 요리한다. 무거운 종 모형의 무쇠 팬 아래 위로 숯을 올려 구우면서 찌는 방법이다. 만약 우연히 들어 간 식당의 메뉴표에 이 'Under the bell' 요리가 있으면 꼭 먹어보길 바란다. 같이 나오는 감자는 그야말로 환상이다.


Under the bell 요리법, 출처 Google


 개인적으로 채식에 가까운 식성이라 양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데, 이 방법으로 요리한 양고기는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아마 양고기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크로아티아의 양고기 요리에는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생 쪽파와 같이 먹는다는 점이다. 그것도 생 쪽파 그대로를 손에 들고 입으로 베어 물어 먹는다. 양고기 한점 먹고 쪽파 한 입 먹고. 처음에는 낯설고 신기했는데, 먹어보면 왜 그렇게 먹는지 단박에 이해가 된다. 환상의 궁합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크로아티아의 쌈장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Ajvar아이바르 소스(훈제한 피망과 가지로 만든 크로아티아 소스)와 서양 고추냉이인 Hren흐렌 소스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물론 유럽의 여느 나라들처럼 이 소스들은 꼭 따로 주문해야 한다.


쪽파 또한 Mladi luk믈라디 룩 을 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아마 쪽파를 주문한 순간, 당신은 양고기 좀 먹어본 사람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곁들이는 음료로는 Gemish게미쉬를 추천한다. 현지 스파클링 워터인 Jamnica얌니챠와 화이트 와인을 반반씩 섞어 마시는 음료이다. 파전에는 막걸리라는 공식처럼, 이곳 크로아티아에는 양고기는 게미쉬이다. 하지만 주의해서 마셔야 한다. 시원하고 톡 쏘는 청량감에 꿀꺽꿀꺽 들이키다 보면 어느샌가 거나하게 취하게 된다. 게미쉬는 조심해서 마셔야 하는 술이다. 나도 모르게 취해있는 나를 발견하지 않으려면.


 자그레브에서 어느 식당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두 곳을 꼽는다. 두 곳 모두 여행자가 가기에는 조금 먼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그래도 최고의 양고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자그레브가 서울처럼 큰 도시는 아니어서 자그레브 센터에서라면 택시로 20분이면 갈 수 있다. 한 곳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고, 한 곳은 자그레브 시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위치를 자랑한다.




Zelen Dvor에서 생파를 잘 먹던 신기한 아들들의 어린 날의 추억


Zelen Dvor

주소 : Samoborska cesta 170, 10000, Zagreb

전화번호 : 01 3496 222

Zelendvor.com


자그레브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Lagvic


Restoran Sestine Lagvic

주소 : prilaz Kraljičinom zdencu, 10000, Zagreb

전화번호 : 01 4674 417



 어느 누군가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 또한 여행지에서의 추억의 맛을 떠올리면서 다음 번엔 크로아티아의 해물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한 끼로 마무리 된 소소한 날이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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