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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머리 앤줌마 Mar 11. 2022

삶을 위한 노래

긴 것은 싫어

나는 확실히 이성보다 감성의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굳이 따지자면 눈으로 보는 시각이 잘 발달되어 예민하다.

무엇이든지 두어번 훑어보면 고유의 성질을 대충 이해한다.

의식주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도 그리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

한번도 사보지 않는 재료를 고를 때에도 눈의 감각이 실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냉장고 속에 넣어둔 반찬들을 눈으로 보며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삶에서 선택을 만날때에 그리 고민하는 편이아니다.

친한 지인들이 뭔가 선택할 일이 생기면 도움을 요청 하기도 하여 자주 소환을 당한다.

오랜 세월동안 훈려된 것일수도 있으나 아무튼 가게에서 좋아하는 손님이다.

제품을 사와서 교환해 본적이 별로 없다.

이러한 감각들이 눈치로 연결되고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는 시간이 주어지면 상대의 마음을 보는 온도가 조금더 따뜻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익어가는 나이라서 이런 감각도 조금은 느슨해졌다.       



코로나전 일이다.

추석명절에 아들가족이 귀성하는것보다 우리부부가 올라가는것이 편할것 같아 복잡한 때를 피하여 추석전에 미리 다녀오기로 했다.

체력이 떨어지다보니 여행도 두려워져 1~2시간 오가는길 아니면 되도록이면 피하며 살고 있는 터이라 아들집으로 가고오는 길도 내게는 먼 여행길이다.

일주일 전부터 미리 체력을 조절하며 아이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마음근육을 키워서 출발했다.

아직은 추석연휴가 아니라서 고속도로도 한가롭다.

퇴근시간과 부딪치지 않으려면 수원 톨게이트를 늦어도 4시30분까지는 통과해야 함을 알기에 휴계소에 머무는 시간도 짧고 단조롭다.

다행히 시간안에 도착하여 좋은 컨디션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손자손녀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쇼파에 앉으려는데 길게 누워있는  모양새만 보고도 내 표정이 경직 되어버린다. 손자손녀가 놀랄까봐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며눌에게 치워달라고 청했다.

며눌은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재차 물었다. "어머니 뭘 말씀하시는지...."

"저거 뱀...."

"어머니 저거 천으로...."

"그래도 싫어"

며눌은 치우면서 나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어머니 천으로 된건데도 싫으세요? 주안이가 좋아하는건데.... 직접 골랐어요"

"미안, 내 눈에 안보이는 곳에 치워주" 손자의 최애 장나감이라도 싫다. 어쩔수가 없다.

평소와 다른 나를 보고 또 한번 빙긋웃는다.

아마도 한지붕 아래에 함께 살때 있었던 장면이 생각난 모양이다.

손자가 좋아하는 낱말 카드에 뱀그림과 글자가 있었다. 그때에도 며눌에게 그 카드를 버리면 안되겠냐고 물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고서 집으로 돌아올때면 손에 무엇인가가 들려 있었다.

햄스터 병아리 매미.... 어느날은 집으로 돌아오더니 거실창문에 무엇인가를 힘껏 집어던진다.

나는 바로 소리를 지르고 아들을 노려보았다.

끈전끈적한 무엇이 척 달라붙더니 스르르 타고 내려온다.

내 눈에는 꼭 살아있는 뱀이다. 혀를 날름거리며 스스르 내려오는 폼새가 나를 향하는것만 같았다.

설상가상 남편은 학생들을 인솔하여 수학여행을 다녀온 가방에서 뱀을 꺼내어 흔들흔들 흔들며 내 앞에다 던진다.

나는 속으로 앗~~ 이런 말미잘 해삼 멍게(이것은 요즘 언어로 순화된 표현이다) 등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순간 당황한 마음은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이 안된다.


긴거를 싫어한다.

긴거에 당한 특별한 기억이 없음에도 왜 그렇게 싫은지 나도 모른다

아무튼 싫다. 그냥 싫다.

송충이부터 지렁이 지네....등등 그림이나 사진이나 천으로 된 모형이든 무엇이든지 무조건 싫다.

아들과 손자가 원한다 할지라도 마음을 내는것이  어려울듯하다.

이부분에서는 이해도 양보도 용납도 안된다.

그런 나의 모습에 실망을 하거나 어른답지 못하다 하여도 어쩔수가 없다.

꽃을 좋아하니 어린시절부터 화단이나 화분을 가꾸고 즐기는 것이 일상임에도 지렁이와 친해지지가 않는다.

분갈이나 옮겨심기를 할때에 지렁이를 만나면 일단은 십리밖으로 도망을 갔다가, 마음을 진정한 후에 돌아와서 그부분의 흙을 다 파내어 버린다.

나의 이런 감각은 다른사람들보다 더 눈으로 느끼는 예민한 무엇이 있는거 같다.

TV로 보는 장면들도 내게는 현장처럼 전달된다.

요즘 인기있는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는 날엔 늘 운다. 그들의 아픔과 상처가 내것이 되어 서럽게 운다.

그래서 폭력적인 드라마나 영화와 뉴스도 멀리하려 애쓴다.


한 밤중에 딸램과 파서방이 함께 이불을 말아들고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씩씩거린다.

"엄마 지네가 지네가.... 이불속에...."

"뭐.. 지네.... 여보.... 지네...."


2주전 쯤에 딸이 내려오더니 욕실에서 큰 지네를 보았는데 잡으려다가 놓쳤다고 해서

딸이 사는곳이 5층이니 지네가 있을수가 없다 하면서도 지네퇴치기를 구입하여 여기저기 두게 했다.

그동안 잠잠하여 죽었든지 집밖으로 도망갔나보다 했는데

이불을 펴고 자려고 누웠더니 파서방 종아리에 뭔가 느낌이 이상하여 일어나보니 지네가 종아리에서 떨어져 이불속으로 들어가기에 발로 밟아서 죽이고 이불로 싸서 내려 왔다는 것이다.

5층까지 지네가 올라간것이 의문이었지만 잡혔으니 그걸로 지네는 일단락 되었다.

내 평생에 집안에서 지네를 본적이 없었으니.


며칠후 "여보.....지네....지네...."

아직은 새벽이라 남편이 놀랠까봐 속삭이듯이 말했지만 남편의 온몸을 두손으로 흔들어 깨웠다.

불을 켜고 남편의 침대로 올라가며 "메트리스 밑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 내방으로  가서 지네를 잡고 시체를 처리하는 동안에도 온몸이 굳어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불면증이라 새벽3시쯤 잠이 들었다.

막 단잠에 빠져들 즈음에 발 뒷꿈치가  뜬금없이 따끔했다.

순간적인 반사로 일어나서 불을 켜고 이불을 드니 지네가....맙소사 내 생전에 그렇게 큰 지네는 처음 보았다. 남편을 깨우지 않고 잡아보려고 휴지를 뭉쳐서 던졌더니 메트리스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굳이 기억하지 않으려 하지만 요즘도 나도 모르게 이불을 한번씩 들추어 보곤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낀다.

예민한 눈으로 지네의 실체를 직접 대면했으니 아마도 오래오래 나의 뇌속에서 꿈틀거릴것이다.

이글을 쓰는 동안에도 싫어서 온몸을 진저리치며 버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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