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단어가 마음에 일었다 가라앉았다. 그사이 녹은 눈이 스민 땅 위로 꽃이 피고 진다. 계절의 당도와 점진을 알리던 목련과 진달래, 개나리, 벚꽃은 순서 없이 이곳저곳에서 일제히 명멸한다. 해가 다르게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더는 가늠할 수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햇살이 내리쬔다. 꽃이 필 무렵의 추위 대신 찾아온 이른 더위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은 부산하다. 한 무리를 앞세우면 다른 무리가 뒤따라오니, 처음 걸음한 산에서 길을 잃을 일은 없다.
오대산에서 뻗은 차령산맥 줄기가 서해를 향하다 우뚝 솟은 가야산을 둘러싼 예산, 서산, 보령, 홍성, 태안, 당진을 아우르는 충남 서북부 지역을 '내포(內浦)'라 했다. 조선 후기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곳은 내포라 하며, 토지가 비옥하고 평평하고 넓고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하며 임진, 병란 두 난리의 피해도 이곳에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산맥' 대신 대간, 정간, 정맥, 금맥, 지맥이라는 최근의 개념에 따르면, 차령산맥은 충청지역에서는 금강을 경계로 금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나뉘는데, 가야산은 지령산에서 칠장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에 포함된다.
상왕산으로 불리다 산 아래 절의 이름을 따라 가야산으로 바뀌었다지만, 가야사 자리에는 절 대신 무덤이 하나 있다. 당시 세도가인 안동 김씨의 눈을 피해 한량 노릇을 하며 기회를 엿보던 흥선군에 지관 정만인(鄭萬仁)은 광천 오서산에 "만대에 걸쳐 영화를 누리는 자리(萬代榮華之地)"와 가야산 동쪽 덕산에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자리(二代天子之地)"가 있으니 둘 중 한 곳에 선친의 묘를 쓰라고 한다. 만대의 영화보다는 최고 권력을 원했던 흥선군이 주지 혹은 충청감사를 사주해 불을 질러 없어진 절이 가야사이고, 그곳에 선 무덤이 부친 남연군의 묘다.
가야사터 위로 보이는 남연군 묘
흥선군의 아들과 손자는 황제가 되었으나 그 둘을 끝으로 조선은 멸망했고,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개방을 압박하며 이곳을 파헤치려 한 여파로 다시금 이어진 천주교 박해에 피바람이 불었다. 살펴보지 않으면 무덤 한 구에 얽힌 인간의 야욕과 스러져간 역사를 알 길이 없고, 새로이 피워 낸 봄꽃 앞에 모두 덧없다.
평지에 우뚝 선 산의 풍광은 생경하다. 버석거리는 공기 넘어 희뿌연 평야가 펼쳐지고, 곳곳에 모인 물은 하늘을 담아 빛을 낸다. 먼지와 모래가 엉겨든 땀을 훔치며 모처럼 한산한 산의 표시석 앞에서 낯선 이에 카메라를 부탁한다. 카메라 끝에서 흔들거리는 노란 리본에 시선을 멈춘 그는 지레짐작한 고까운 말 대신, 해져서 더는 달 수 없는 제 리본을 떠올리며 얕은 탄식을 뱉는다. 스쳐 지난 적지 않은 이들 중 6년 전 오대산 산길에서 마주친 비구니와 그만이 알아챈 리본의 존재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함께 안타까워했다.
연두와 초록이 미치지 못한 고도의 땅에 진달래가 잎보다 꽃을 앞세운다. 신록이 사방을 뒤덮기 전, 지금의 시선은 저 먼 곳을 향할 수 있다. 먼 곳의 초록은 진달래와 트지 않은 눈이 맺힌 허전한 나뭇가지를 채운다. 한 대 오르면 한 대가 내려가는 좁은 차도의 질서는 산길에서 유효하지 않고, 한 명이 지나도록 기다리는 사람의 무리를 마주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한참을 비켜서서 오른쪽과 왼쪽의 먼 곳을 고루 바라보는데, 뿌연 저곳이 바다인지, 평야인지 쉬이 구분되지 않는다.
소담한 사찰에는 시선마다 사람이 가득하다. 사찰의 어떤 꽃은 보기에 늦고 어떤 꽃은 이르다는 데, 자연이 하는 일이 그러하나 절의 이름처럼 마음을 열어 깨달음을 얻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다름없다. 이것저것 다 들여다보기에는 식견이 얕고 걸음이 느려, 매번 뒤늦게 모르고 스치고 못 보고 지난 것들로 초조하고 미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