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불이 났다. 2023년 3월 11일 오후 1시 20분이었다. 지리산국립공원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 도로 옆 야산에서 시작된 불은 지리산 남쪽 사면을 따라 퍼졌다. 산불 발생 두 시간여만에 산불 대응 2단계가 발령됐다. 산불 대응 2단계는 피해 추정 면적이 30~100ha 미만, 평균 풍속이 초속 7~11m, 진화 예상 시간이 8~24시간일 때 발령된다.
오후 4시 30분 보도 기준, 진화 헬기 20대, 장비 30대, 인력 270명이 긴급 투입되었다. 현장의 순간최대풍속은 초속 10m, 산불 영향 구역은 약 57ha, 불길이 이어진 화산의 총길이는 약 3.4km, 진화율은 약 10%로 파악됐다. 초속 10m의 바람은 우산을 들고 서 있기 힘든 강풍이다. 깊은 산속으로 산불은 번지고 진화는 더욱 어려워졌다.
오후 7시 기준, 산림청은 산불 영향 구역은 약 85ha, 산불의 총길이는 약 4.3km, 진화율은 46%로 추정했다. 해가 지면서 물을 실어 나르던 헬기는 움직일 수 없었고, 대부분의 인력과 장비가 철수됐다. 현장 인근 2개 마을 주민 79가구 190여 명이 대피했다. 현장에 투입된 진주시 산불예방진화대원 1명이 심정지 증세로 쓰러져 사망했다.
이튿날 아침, 철수했던 인력과 장비가 다시 동원됐다. 그러나 연무로 인한 시계 제한으로 헬기를 이용한 공중 진화 작업이 지체됐다. 오전 9시 기준 진화율은 오전 7시와 동일한 63% 수준이었다. 연무 상황이 개선되고 진화 헬기와 장비, 인력 다시 대거 투입됐다. 산불이 발생한 지 20시간이 흘렀지만, 완전 진화까지는 아직 멀어 보였다.
오전 11시, 단비가 내렸다. 폭우 급의 많은 비로 불길이 잡혔다. 소방 당국은 오후 12시 주불 진화 완료를 선언했다. 산림청 진화자원이력 기록에 따르면, 이틀 동안 헬기 59대, 장비 104대, 인력 2,295명이 동원됐다. 산림청은 진화 직후 피해 면적을 91ha로 발표했고, 4월 3일 지리산 산불 피해 민간조사단은 121ha로 분석했다. 91ha는 축구장(7,140㎡) 127여 개를 합친 규모, 121ha는 축구장 170개에 달하는 면적이다.
피해 파악과 식생 복원을 위해 세석대피소에서 의신마을에 이르는 국립공원의 탐방로는 2023년 산불 통제 기간이 아닌 때에도 통제됐다. 원인으로 화목 보일러의 재가 버려지면서 산으로 옮겨붙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정확한 산불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적어도 공개된 자료에 한해서는 명확하게 밝힌 곳이 없다.
(2024년 8월 19일 추가) 2023년 통계를 취합한 2024년 국립공원기본통계(2024년 2월 발행)에 따르면, 피해면적은 128.5ha, 원인은 주민실화(쓰레기소각)으로 기록되어 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국립공원 내 산불 피해 면적은 총 148.56ha로, 2023년 3월 지리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난 5년간 발생한 산불 피해 면적의 86%, 2023년 총 피해 면적의 97%를 차지했다. 2023년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13건의 산불 중 입산자 실화가 7건, 주민 실화가 4건, 기타(낙뢰)가 2건이었다.
삼(三) 도에 걸친 지리산은, 크게 동서로 전라남도 구례군에 속한 노고단에서 경상남도 산청군과 함양군에 접한 천왕봉으로, 남북으로 전라북도 남원시의 바래봉에서 전라남도 구례의 노고단으로, 또 경상남도 함양군의 세석대피소에서 하동군의 삼신봉으로 이어진다. 2023년 산불은 세석대피소에서 삼신봉을 향해 남쪽으로 뻗은 능선 중간에서 서쪽으로 들어 대성골을 따라 의신마을까지 이어진 길에서 났다.
11일 오후 하동 산불 현장 ⓒ경남소방본부 / 2023-03-11 하동 산불 현장 및 진화, 출처: 산림청 / 2023-03-13
장터목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를 거쳐 의신마을로 내려가 볼 생각으로 백무동을 오른다. 소지봉 일대의 조릿대 무리가 일제히 잎을 떨구고 빈 가지만 빼곡하다.
지난달 노고단으로 가는 능선길의 조릿대가 일제히 꽃을 피웠다. 조릿대는 5~7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운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고, 그 원인이 기후 스트레스, 특히 건조하고 가문 날씨이거나, '개화병'이라고도 하고, 혹은 때가 되어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꽃을 피운 조릿대의 지상부는 죽는다. 뿌리로 연결되어 있어 무리가 생사고락을 함께한다.
상층부가 고사하기 전까지 지상의 조릿대는 사계절 내내 왕성한 삶을 산다. 키 큰 나무가 잎을 떨군 가을의 숲속으로 깊게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키운 잎은 겨우내 하얗게 내린 눈 속에서도 짙푸르다. 무리 지어 촘촘하게 잎을 드리운 까닭에 조릿대 아래로 다른 식물이 잎을 틔우거나 자라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숲의 천덕꾸러기라는 억울한 취급을 받는다.
푸르고 무성한 조릿대의 잎 층은 다양한 곤충들의 쉼터와 먹이를 제공하고, 겨울철에는 포유동물의 먹이나 은신처가 된다. 길게는 100년 이상의 개화주기를 가지는 대나무와 달리 수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지는 조릿대는 다른 식물이 자랄 기회를 주기적으로 제공한다. 대나무 숲은 있어도 조릿대 숲이 없는 이유라고 한다.
조릿대가 떨군 잎은 낙엽층으로 토양에 양분을 공급해 다음 생명이 자랄 건강한 기반 형성을 돕는다. 다른 하층식생보다 많은 잎과 줄기는 이산화탄소 흡수에도 효과적이다. 다 헤아리지 못할 자연의 일과 그 존재들의 사정은 제 입맛과 편익에 치우친 인간의 좁은 시선으로 빈번하게 속단된다.
2024년 6월, 백무동에서 장터목대피소로 향하는 길의 조릿대
장터목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로 이르는 길 위의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높게 떴다. 자연이 개별의 선호를 맞춰줄 일은 만무하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지만, 오랜만의 구름에 발걸음이 자주 가다 선다.
연하봉 건너편에서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라고 외치는 청년은 앞서 백무동에서 만났다. 랜턴은 고사하고 물 한 병 없던 그에게 내민 530ml의 물은 곧장 절반으로 준다. 어두운 터미널을 서성이던 그는 뒤이어 온 산행객 무리를 만나 이것저것 나눠 받으며 따라 오르고 있었다. 날씨만큼 명랑해서 표정 없이 지나던 이조차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보다 장비는 갖추었을지 모르나 산길과 나에 대한 이해와 체력과 요령이 턱없이 부족했던 어느 겨울, 희방사를 거쳐 소백산을 오르며 허벅지까지 오는 눈에 몇 번을 고꾸라지고 박혔다. 가파른 길을 계속 오를지 내릴지 울고 싶은 심정의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산객 무리의 대장과 일행은 우우, 소를 몰 듯 이끌고 능선까지 올랐다. 그중 하나가 쥐여준 귤은 참 달았다.
도봉산 Y 계곡은 당시 나의 팔다리 힘과 지금도 마찬가지인 다리 길이로는 발돋움도 벅찼다. 뒤따르던 당시 아버지 연배의 산객들은 팔을 교차해 가마 같은 계단을 만들어 보였다. 아슬한 외길에 매달린 처지가 안타까워 보인건지 자신들이 길을 나아가기 위함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생면부지의 팔을 밟고 바윗길을 무사히 올랐다.
대체로 소란한 무리를 피해 다니느라 늘 고전하지만, 이따금 무리의 도움을 지금에 이르렀다. 낯선 이가 나눈 선의와 넉넉함은 기억 속에 아스라이 남았다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제 손을 내밀 수 있는 작은 싹을 틔운다. 가진 것은 많지 않고 남은 것이 넉넉하지 않아도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이 손을 내미는 너그러운 곳, 산은 그런 곳이었다. 청년에게도 오늘이 그저 지리산을 오른 하루의 모험에 그치지 않고, 갖추고 방비하여 다시금 산을 찾아 웃음과 여유를 나눌 수 있는 씨앗이 되길 내심 바랐다.
백무동에서 오르는 길에 내린 작은 꽃 / 장터목대피소
세석대피소에서 음양수를 지나 남부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한동안 고도를 크게 높이거나 낮추지 않는다. 나무와 풀의 만발한 초록이 한들거리고, 그 사이로 햇빛이 드리운 길은 고즈넉하고 안온하다. 동서로 뻗은 능선의 가운데에서 남쪽을 향한 길을 걷다 뒤돌아선다. 마주 본 촛대봉과 영신봉 위로 지나는 구름 사이에 서 있으니, 신선이거나 혹은 무어라도 된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진다.
산의 높은 지대 땅속 어딘가에서 시작되었을 물은 세석대피소에서 음양수에 이르는 길에 드문드문 보인다. 이내 작은 물줄기가 골짜기로 흐르는 걸 보니 대성골에 접어든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모인 물줄기들은 이제 크고 세찬 소리를 내며 바위를 내리친다. 계곡과 골짜기에 붙은 대성(大成)이라는 이름은 지리산 남부 능선의 물이 모여든다고 해서 붙었다.
마주본 두 봉우리 2023년 3월 산불은 해발고도 600m 중턱쯤부터 체감된다. 탐방로 가까이에서 시야가 닿는 제법 먼 곳까지 그을린 나무들이 서 있고, 드문드문 모조리 불탄 나무의 밑동 옆으로 숱한 세월을 지났을 굵은 나무줄기가 쓰러져있다. 종종 산객이 쉬어 가던 산속 민가 두 채는 모조리 불에 탔고, 갈 곳 잃은 잔해가 켜켜이 쌓였다. 민가 끝에 묶여 사납게 짖던 개는 이제 없고, 빈 개집만 남았다.
지리산국립공원 화개 대성골 산불 피해 민간조사단(이하 조사단)이 산불 직후부터 한 달에 걸쳐 4번의 현장 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산불로 인한 피해 면적은 121ha(정부 발표, 91ha)로, 최근 20년간 국립공원 내 산불 피해 면적 총 111.8ha와 비교할 때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산불이다. 그러나 위성 영상을 통한 산불 강도 분석 결과, 산불 강도가 낮은 지역이 전체의 80%, '매우 높음'에 해당하는 지역은 없고, '높음' 지역은 전체 피해 면적의 3%를 차지해 대부분의 지역에서 산불 강도가 높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리산국립공원의 숲은 인위적인 간섭 없이 자연적인 숲으로 발달했다. 소나무림이 쇠퇴하고 낙엽활엽수림으로 발달하는 천이 과정에 있었다. 활엽수의 밀도가 높은 숲 내부의 바람이 세지 않아 산불이 나무의 가지 끝과 잎까지 태우는 수관화(樹冠火)로 이어지지 않고, 지표에 있는 풀, 관목, 낙엽을 태우는 지표화(地表火)로 천천히 이동하다 능선부의 소나무림에 이르러서야 나무의 몸통부터 가지와 잎(수관)까지 태웠다.
재가 된 지표면의 낙엽층은 일시적으로 토양의 양분을 늘리지만,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용탈) 산불로 생물이 죽은 그 자리에 더는 유입되는 영양분이 없어 토양의 산성화가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다. 지난 산불은 지표의 낙엽을 태웠지만 그 아래 토양층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낙엽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유기물을 직접 공급받는 표토층과 달리, 낮은 층의 토양은 회복에 수년이 걸린다.
숲의 많은 나무들은 죽지 않고, 그을린 채 살아있었다. 조릿대와 같은 하층식생의 뿌리가 살아있어 장마철 집중호우가 아닌 이상 토양침식의 우려는 매우 낮고, 되려 응급 복구 공사가 토양침식을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 당시 이미 초본 식물이 흙과 재 위로 싹을 드러냈다.
1년이 지난 숲에서는, 살아남은 뿌리로 흙을 지탱하던 조릿대가 펼친 잎이 나무 사이로 바람에 잔잔하게 물결친다. 초록과 초록이 모인 이맘때의 여느 숲과는 달리, 움트기 시작한 연초록은 검게 그을린 나무의 색과 두드러진 대비를 이룬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은 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길렀고, 기어이 서로를 일으켜 함께 살아낸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소를 무엇 때문에 잃었는지를 아는 일이다. 정확히 하나로 파악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방비해야 한다. 정부의 발표는 산불의 진화 과정과 즉각적인 피해 규모 정도에 그쳤다. 산불 직후 민간조사단이 나서 실제 피해 규모와 숲속 생태계와 토양 등에 미친 영향을 들여다봤다.
우리나라 산불의 대부분은 사람 때문이다. 자연발화와 같은 자연적 요인으로 발생한 산불은 극히 드물다. 2024년 산림청의 자료를 보면 산을 찾는 사람들의 소각, 취사 행위로 인한 산불이 지난 10년 평균 32.9%, 쓰레기 소각이 12.6%, 영농 부산물 소각이 11.9%, 담뱃불 실화가 6%를 차지한다. 도합 63.4%다. 2023년 소방청의 자료에 따르면 5년간 발생한 산불 4,495건 중 담배꽁초로 인한 산불이 1,237건, 27.5%였다. 2023년 9월 발표 당시, 그해 발생한 산불 490건 중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가 126건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는 '만약'의 다음을 예방할 수 있도록 왜 산불이 발생했고 어떻게 번져나갔는지, 피해지역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하기보다, 산림청을 통해 산으로 이어지는 도로(임도)를 더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산불은 어차피 날 테니 빨리 끄기라도 하자는 얘기로 들렸다. 외양간 이야기로 돌아가면, 소는 어차피 (죽거나 도망치거나 도둑 맞아) 잃을 테니, 주인이든 경찰이든 빨리 올 수 있도록 외양간 앞 도로나 트자는 비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산림청은 근거로 같은 해 합천에서 발생한 산불은 임도가 있어 쉽게 진화했고, 지리산 화개의 산불은 임도가 없어 불을 지켜봐야 했다는 점을 들었다. 임도가 있는 합천 산불이 더 오래, 더 많은 면적을 태웠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지리산 화개 산불을 조사한 민간조사단의 동일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합천 산불 피해 면적 중 산불 강도가 '매우 높음'으로 파악된 지역은 전체 피해 면적의 12%, '높음' 지역까지 합하면 전체 면적의 21%로, 지리산의 산불 대비 7배 높았다.
같은 해 4월 충남 홍성과 전남 함평 등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는데, 임도가 있었지만 산불은 빠르게 진화되지 못했다.
산불정책연구소 황정석 소장은 '임도가 낮은 곳의 산불을 고지대로 끌어올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진화대가 임도로 올라왔을 때는 이미 산불이 주변이 확산된 후'라고 설명했다. 벌목 지역, 임도가 있는 지역, 산림이 우거진 지역 3곳의 바람 강도를 비교, 조사한 한 연구는, 임도가 있는 지역에서 벌목 지역처럼 강한 바람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임도의 강한 바람은 산불을 퍼트리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이 낸 불을 키우는 것도 사람 탓일 소지가 다분하다. 부쩍 늘어난 우리나라 대형 산불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인공조림을 꼽는다. 산불이 지나간 숲은 죽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숲은 죽지 않았다. 그대로 두면 자연은 천천히 제 속도로 회복해 다양한 생명이 숨 쉬는 건강한 숲 생태계를 만든다. 초본 식물이 자라고 하층식생이 구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상층식생이 자란다. 지리산의 숲이 그 예다.
인공조림은 이러한 숲의 천이 과정을 건너뛰고 균형을 무너뜨린다. 산림청은 빠른 복원 그리고 목재와 송이 생산이라는 이유를 들어 산불에 약하다는 걸 알면서도 소나무 위주로 조림해왔다. 숲 가꾸기라는 이름으로 활엽수를 베어내고 소나무만 남기기도 했다. 소나무림이 산불에 취약하다니, 이번에는 자연 복원으로 조성되는 활엽수림을 만들겠다며 애먼 돈을 쏟고 다시 숲을 파낸다.
인공조림을 위해 임도 개설과 중장비가 투입된다. 불탄 나무와 주변을 베고 나무를 심는 과정에서 토사가 쓸려 내려간다. 특히 우리나라 토양의 80% 이상이 침식성 토양임에도 수십, 수백 헥타르에 달하는 불탄 숲을 싹 쓸어 벤다. 불탄 나무의 재와 유실된 토양은 인근과 하류의 물을 오염시키거나 산사태 위험을 높인다.
영국 산림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숲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저장하고 있는 곳은 나무 아래 토양이다. 나무 기둥과 잎, 가지를 합쳐 17%인데 비해, 토양의 탄소 저장량은 72%다. 임도나 건물, 골프장 등을 만든다고 땅을 파내고 벌목하며 포크레인이 땅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수십 년간 토양에 저장된 탄소가 일시에 배출된다. 벌목 후 돈이 되는 나무줄기는 펠릿과 펄프 공장으로 옮겨졌지만 수익성이 없는 잔가지는 그 자리에 남았는데, 쌓아둔 잔가지가 이후 산불의 통로가 되거나 홍수 피해를 가중했다. 그래서 수거하겠다며 다시 와서 또 땅을 헤집는다.
멀리 보이는 산불의 흔적 산에 불을 들이면 불이 날 수 있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도시가 아닌, 산에서 난 불은 끄기가 무척 어렵다. 지극히 상식적이다. 탐방로 구석구석에 설치된 현수막의 흡연/취사/샛길 탐방 금지와 같은 문구에서는 상식에만 온전히 의지할 수 없다는 불안이 묻어난다. 불안은 지나친 걱정에 그치지 못하고, 산의 쉴 만한 곳마다 심지어 푯말 바로 아래에서도 담배꽁초가 흔히 발견되는 현실이 되었다.
'설마'라는 개별의 생각은 안일하고 어리석으나, 쉬이 자각되지 못한다. 하지 말라는 것은 들키지만 않으면 되고, 기어이 하고 난 경험은 수치를 망각한 채 망령 난 모험담이 되어 떠돈다.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을 포함한,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상식)은 일반적으로 이해되거나 분별되지 못하므로 크게 기댈 것이 못 된다.
예전에도 지금도 탐방로 곳곳에 보이는 금지 행위 안내
권력을 쥐고 큰 목소리를 내는 소수는 제 주머니를 채울 이해득실만을 따져 다수를 기만한다. 다수의 무관심한 이들은 듣고 보고 싶은 것에만 잠시 눈과 귀를 열었다 닫으므로, 나름의 최선과 차선을 두고, 최악을 피할 방안을 찾는 논의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지속되지 못한다. 함께 바로잡고 함께 살아 나갈 길은 여전히 멀고 아득하다.
사람이 문제다. 언제나 그랬다. 그럼에도 거대한 기만과 무관심에 맞선 고된 싸움에 지치지 않고, 무력감을 딛고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사람이었다. 몰상식과 기만과 무관심의 문제와 '그럼에도'라는 희망 모두 사람에서 온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자문하며 걷는 사이, 산길은 산 아래의 마을에 닿았다. 해는 저물어가며 멀어지는 산의 불에 타고 타지 않은 자리를 차별 없이 노란빛으로 물들인다. 혹여 못 보고 지나칠까 조바심이 난 버스 기사는 다음부터는 꼭 손을 흔들라는 당부를 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산 중턱에서 아래로, 도시로, 사람을 실어 나른다.
주요 참고
1. 경남 하동 지리산 인근 산불 관련 보도 및 통계
[지리산국립공원 크루(Crew) 활동 기록]
주 능선에서 벗어나 음양수를 지나서 대성골을 따라 걷는 길에서는 지표에 날리거나 가볍게 묻힌 쓰레기를 집기보다, 깊이 박힌 쓰레기를 발굴하는 것에 가까웠다. 쓰레기의 색이나 형태로 보아 최근의 것부터 연식을 짐작하기 어려운 오래된 것까지 다양하다. 플라스틱 재질은 연식을 불문하고 썩지 않고, 다만 찢어지거나 부서져 있었다.
산 중턱에서 발굴한 라면과 과자 봉지들. 지금은 모를 이름도 있다. 취사의 흔적일 수도 있겠다
사탕 하나에도 무심결에 내 손에 들어오는 '쓰레기'를 자각하는 것이 시작이다. 일상생활에서 일회용이 아니라 재사용을 염두에 둔다. 일회용 페트병에 담긴 물 대신, 재사용할 수 있는 물병에 물을 담아 마시는 것은 어렵지 않은 방법이다. 지리산 곳곳에서는 빈 물병에 산에 샘솟은 청량한 물을 다시 채울 수 있다.
물병과 워터백. 물병이 비면 가방에서 워터백을 꺼내 다시 채운다
덧/ 멀리서 보고 곰이거나 덩치 큰 산짐승인 줄 알았는데, 나무에 벗어둔 사람 옷이었다. 계곡가도 아닌 산길 위에 웃옷과 하의, 신발을 벗어두고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알 길은 없었지만, 혹여 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올까봐 신경이 곤두선다. 그렇게 걸린 옷을 두 번 봤다. 괜한 일에 휘말릴까 싶어 쓰레기 주머니에도 담지 못했다.
- 2024년 6월 / 지리산 백무동-장터목대피소-세석대피소-의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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