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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연 Nov 10. 2022

마을을 꿈꾸는 도시, 그리고 아파트

[서평] 공간으로 세상 읽기 - 2장. 터


이어지는 글



터: 마을을 꿈꾸는 도시, 그리고 아파트


공유하는 풍경이 없으면 함께 사는 마을이 아니다. (p92)


 책의 3장, 터는 읽으면서 가장 많이 감탄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동시에 가장 자주 뜨끔했던 장에 해당한다. 자연스레 형성된 마을이 계획을 통한 도시가 되기까지의 권력 구조 변화와 장소성의 의미 변천에 대해 다루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부분은 '풍경'을 마을 공동체의 향유물로 해석한 것과 한국의 단지 아파트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었다. 사실 ‘풍경’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아름다운 자연의 장면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풍경은 공통의 기억을 기반으로 여러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유형, 무형의 장소를 말하고 있다. 마을이 있어야 성립하는 개념인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공간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평생을 유리하는 유목민의 삶을 살아간다
....
이렇게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머물러 사는 기간이 짧다 보니 마을을 꾸리고 공동체성을 확보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당연히 동네의 특성과 문화는 감쪽같이 실종되어 버린다. 과거 어느 동네를 가든 흔하게 만날 수 있었던 '토박이'들은 천연기념물 혹은 일급 멸종위기종이 된 지 오래다.

-류현수(2019), 마을을 품은 집, 공동체를 짓다 239p


  위 구절은 '공동체주택'의 가능성에 대해 다룬 <마을을 품은 집, 공동동체를 짓다〉를 읽으며 공감했던 부분이다. 책에서 이들을 유목민이라 표현했듯이 현대인의 경우 한곳에 정착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 그들은 ‘더 좋은 집(보통의 경우 아파트)을 찾아 끊임없이 방랑하며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동네도 잃고 동네에서 향유하던 풍경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가 무의식중에 '아파트'를 싫어했던 가장 큰 이유는 '유목민'이라는 표현과 닿아있는 듯싶다. 서울에 자리하지만, 아파트가 거의 없는, 골목길이 즐비한 동네에서 살아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돌았던 재개발에 대한 소문은 소문으로 끝날 것이라 여겨졌지만, 시간이 흘러 20대를 넘기자 현실이 되어 슬금슬금 동네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나의 집'은 우연히, 운이 좋게도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친구의 집'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그들은 유목민이 되어 마을을 떠났다. 원하든 원하지 않은 재개발이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기까지의 10여 년을 지켜본 나로서는 아파트를 고운 눈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음은 서평 작성보다 앞서 브런치 계정에 업로드한 다른 글의 일부이다. 친구들이 유목민이 되어 떠나고, 익숙했던 풍경을 잃는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필자에게 아파트는 정이 없고, 결코 마을을 이룰 수 없는 장소로 여겨졌다. 그리고 '터'의 장을 읽으며 자주 뜨끔했던 것은 이러한 평소 생각과 맞닿아있다. 책에서는 아파트의 업적으로 '개인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또 아파트에서 공동체를 이루기 어려운 것이 아파트의 형태가 아닌 시민의식과 정부, 사회의 주택 제도의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를 자세히 읽고 나니 이는 맞는 말이다. 필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파트의 구조를 탓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아파트를 집이 아닌 부동산적 가치로 보고 욕망하는 우리의 모습과 그것을 더욱 부추기는 사회적 제도가 자리하고 있던 것이다. 아파트에서의 공동체 탄생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현대판 유목사회'라는 현실이다. 21세기 유목사회에서 벗어나 주거가 안정적인 자아의 공급처로서 작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외부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아파트에서도 마을을 꿈꿀 수 있게 될 것이다.


 반드시 '집'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오늘날의 집은 이미 '자아의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잃기 시작했으며, 이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 없이는 해결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집'밖의 공간, 동네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필자는 '제3의 장소'에서 새로운 '자아의 공간'이자 마을 만들기의 시발점으로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3의 장소: 작은 카페, 서점, 동네술집까지 삶을 떠받치는 어울림의 장소를 복원하기, 레이 올든버그>에서는 '제3의 장소'를 사람들이 가정과 일터밖의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격식 없이 자주 찾는 공공장소를 통칭하는 용어로 정의한다. 혼자만의 사색이 가능하며 원한다면 언제든지 '함께'가 될 수 있는 곳, 그리고 나와 잘 맞는 이웃을 만났을 때 정착할 수 있는 장소(가게가 존재하는 한)가 동네에 존재한다면 우리는 도시 속에서도 동네가 마을이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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