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이네 책놀이터를 찾아가다
봄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는 망원역 2번 출구를 나와 성산동으로 걸어 올라가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성미산마을에 자리한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이다.
'서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개 조용하고 정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2022년 4월 8일, 처음으로 마주한 개똥이네 책놀이터의 첫인상은 다른 서점(책방)과는 다르게 꽤나 시끌벅적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에 가까웠다.
골목을 들어서며 마주한 책방의 전경 '마을을 품은 집, 공동체를 짓다(류현수)'에 대한 리뷰에서 언급되었듯이 성미산마을은 육아공동체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마을로 공동체 재생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 역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방문과 동시에 마주한 아이들의 모습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듯싶었다.
아이들의 낙원에 외지인이 침범하는 기분이 들어 주변을 한참 서성이던 나는 10분이 지나서야 어렵게 안으로 첫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선 문에서 '재건축으로 4월 29일까지만 운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문을 마주했다. 예상하지 못한 소식에 순간 당혹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아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재건축 후, 내년 3월 정도에 재입주 예정이라는 다행스러운 문구가 함께 적혀있었지만, 지금의 모습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들었다.
제3의 장소란 모름지기 평범하고 친숙한 장소에서 더 잘 유지되고 발견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남은 기간이나마 가까이서 지켜보며 현재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있는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를 대상지로 삼아 4/30일까지의 현장 체험 기록을 3~4개의 시리즈물로 담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 방문인 4월 8일 자의 기록에서는 2011년부터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를 운영해오고 있는 정영화 책방지기와의 인터뷰를 통해 장소에 담긴 생생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책방지기와 함께 한 인터뷰
인터뷰이: 정영화(그대로),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 대표
개똥이네 책놀이터는 어떤 공간?
Q. 성미산마을은 육아공동체에 뜻이 있는 이들이 모여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는데요. 개똥이네 책놀이터도 비슷한 이유에서 조성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서점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개똥이네 책놀이터는 개인이 만든 곳은 아니고 '보리출판사'에서 조성한 공간이에요. 성미산 공동체 마을의 헤드가 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이곳에 뿌리내리게 되었고, 제가 운영을 하게 된 거죠.
Q. 주요 이용자층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주로 동네 주민들이 많이 이용을 해요.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유치부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6학년 아이들이거든요. (책방 안을 지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지금의 모습은 3년 정도 되었는데, 19년도부터 아이들이 자유롭게 와서 놀고 스스로 정리하고 가는 구조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근처에 위치한 성미산학교 학생들이 많이 오는 편인가요?)
아이들이 만든 작품이 전시중이다 / 한 아이가 나누어 주고 간 과자 거기는 아까 보신 것처럼 과자를 가져다주는 정도예요. 성서초등학교라고 여기서 3~4분 거리에 위치한 공립 초등학교가 있는데, 거기 아이들이 이곳을 주로 이용하고 있어요. 성미산학교의 경우에는 학교 자체로도 활동이 많기 때문에 그 학생들에게 또 다른 혜택을 주는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대안학교와 같이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볼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희 아이들도 두 명 다 여기서 지냈었고요.
일반 공립학교에 다니며 단체생활에 익숙해져야 하는 아이들의 사정이 안타까웠고, 새롭고 창의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이걸 목표로 지금까지 '학교 밖 교실'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런저런 활동을 계속 펼쳐왔네요.
Q. 책방의 공간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문화놀이터와 자치 활동공간으로 향하는 계단에 아이들의 신발이 줄지어 놓여있다 / 서점으로 운영되는 1층 지하층은 개똥이네 문화놀이터라고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놀 수 있는 공간이 있고요, 1층은 보이다시피 책을 파는 서점이에요. 2층은 이전까지는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2019년부터 고학년 아이들의 자치 활동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방문했을 때 놀랐던 게 서점의 담장 안쪽에 작은 놀이터가 있더라고요.)
1층 한 켠에는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 책방 외부에 있는 나무 놀이대는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장소 중 하나이다
아 그건 책방에서 진행하는 문화활동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아이들이 와서, 건축하는 선생님과 함께 3일간 작업한 거예요. 저희가 나무 구입비와 강사비를 일부 지원하고 강사분들이 오셔서 아이들이랑 어떤 집을 원하는지를 같이 그림도 그려보고. 그걸 실현한 거예요.
개똥이네 책놀이터에서 일어나는 활동에 대해서
Q. 제가 여기에 오기 전에 좀 찾아보고 왔는데요. 아이들이 하는 기자단 활동도 있고, 아침에 부모님들이 와서 책을 읽는 모임도 있는 거 같더라고요. 현재는 어떤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지가 궁금했어요.
말씀하신 기자단 활동은 글쓰기 수업을 유도하기 위한 거였어요. 제 아이들이 여기 다닐 때만 해도 얘들이 적어서 글쓰기 수업보다는 다른 수업을 원하고 그랬거든요. '그럼 기자단 할래?'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응' 하면서 기자단 활동이 시작되었어요. 지금 이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나서는 글쓰기 수업으로 전환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글쓰기 수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모임은 이 지역에 사는 분들이 그런 모임에 대한 욕구도 많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강해서. 책 읽는 모임이 한 12개 정도 이 동네책방에서 운영되고 있어요. 다 읽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팀도 있고, 함께 모여서 같이 소리 내어 강독하는 분들도 있고요. 지금은 맹자를 읽고 있는데 이렇게 세계사 책을 꾸준히 읽는 팀도 있고, 토요일 아침에 와서 돌봄 관련된 책을 읽는 모임도 있어요.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책 그전에는 아이 돌봄이 책방의 주된 목표였다면 이제 여기 동네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기 부모에 대한 돌봄이 필요하게 되었거든요. 그런 돌봄에 대한 이야기도 이제 공감이 필요한 거잖아요? 어르신 돌봄, 죽음과 관련된 책을 읽는 팀이 있고, 또 폐경기 이후의 여성, 우리 몸에 대한 고민을 하자는 취지에서 책을 읽고 있는 팀이 하나 있어요. 이렇게 여러 가지 책 모임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를 대표하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대표 모임이라고 하면 '이런저런'이라고 동네책방이 만들어지기 3개월 전에 아빠들 세 명이 모여 만든 책모임이 있어요. 한 달에 두 번씩 격주로 모이고 있는데 이번이 아마 200회일 거예요. 처음에는 남자 분만 12분 이렇게 있었는데 중간에 이사도 가시고 그래서 지금은 남자, 여자 섞여서 12명 정도가 모임을 계속하고 있어요. 책방과 같이 시작한 모임이니 대표 모임이라고 볼 수 있죠.
Q. [개똥이네 책놀이터]라는 잡지가 있던데, 이곳과 관련이 있을까요?
이 건물 소유주가 '보리 출판사'라고 개똥이네 책놀이터 잡지를 만드는 출판사예요. 어린이 문화활동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취지에서 이 공간을 내어준 거예요. 2019년까지는 무상임대였고요. 2019년 이후부터는 전세로 전환해서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올해 있을 재건축 공사가 끝나면 다시 1층으로 들어올 예정이에요.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와 아이들을 위한 여러 서적들 동네책방의 운영, 그리고 성미산 마을과의 관계성
Q. 동네책방을 운영하시면서 겪었던 어려움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책이라는 게 생각하는 것보다 입문이 어렵고 수익은 적어요. 예를 들어 만 원짜리 책 한 권을 팔면 10% 할인하고 나면 2천원이 남거든요. 2천원에서 또 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가 빠지고 그럴 때엔 2천원도 안 남는 상황이라 15% 정도 남아요. 또 책은 음식처럼 자주 사 먹어야 하는 품목이 아니라 한 번 사면 하루 이틀은 읽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매출이 생각보다 적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저도 잘 모르고 시작했다가 책 장사라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하면서 깨달은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 저희는 후원 회원을 모집했어요.
책방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출자자의 벽' 좋은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운영을 할 터이니 당신들은 이런 문화 공간을 유지하는 데에 후원을 해라 이래 가지고 한 100여 명 정도 후원을 하고 있어요. 이 부분이 제일 고마우면서도 기억에 남는 일인 것 같네요.
(지원해 주시는 분 중에 마을 주민도 많은 편인가요?)
주민분들이 훨씬 더 많아요. 이사하신 분들 중에도 꾸준히 지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고요. 대부분 개똥이네 책놀이터를 아는 분들입니다.
Q. 또 궁금했던 게 이곳에는 성미산 학교 외에도 성미산 마을극장이라던가 주민들이 꾸민 곳들이 많잖아요. 혹시 성미산마을 내에 있는 다른 집단과 연계해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있었을까요?
그런 건 당연히 할 수밖에 없죠. 마을 축제에 참여하는 것도 같이 하게 되는 거고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어요. 이 동네에 아이들을 위한 돌봄 공간이 5군데 정도 되는데 그들이랑 같이 돌봄 공동체라는 네트워크로 묶여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어쨌든 서점이니까 마포구에 있는 서점끼리 모여서 협동조합을 하고 있습니다.
Q. 여기 와서 느낀 건데 아이들이 어른과 말을 굉장히 편하게 주고받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도 어떤 의도가 있으셨던 것인지 질문드립니다.
성미산마을이 평등 문화를 바탕으로 시작한 육아공동체였기 때문에 이곳의 아이들도 자연스레 반말 문화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른들한테 '선생님' 이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구야 나 좀 도와줘 이런 식으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 거죠. 책방에서도 이런 부분을 지향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아이들이 어른에 대한 두려움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을 편하게 느끼게 되고 어른에 대한 신뢰가 있는 편이죠.
Q. 마지막 질문입니다. 4월 29일 이후로 이주를 앞두고 계신데, 그때까지 어떤 일이 진행되는 건가요?
이주하기 전까지는 여기에 있는 짐을 비워야 하니까 책은 반품을 할 거고 일부 집기는 성미산학교에 있는 도서관에서 일부를 가져갔으면 좋겠다 싶어요. 또 악성 재고들이 있거든요. 팔지도 못하고 반품도 안 되는 그런 책들이 있는데 재고 판매를 다시 한번 하고, 안 쓴 집기들은 후원금을 내고 가져갈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주까지 이런 일들을 진행하고, 4월 30일에는 이사를 가야죠. 책방은 이 장소가 없는 기간에도 계속 운영될 예정이고요.
(네. 준비한 질문은 여기까지였고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활동공간 입구에 자유분방하게 놓여진 아이들의 신발 '아이'와 '어른'이 격 없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는 장소가 있다니!
어린이와 어른을 '미성숙함'과 '성숙함'으로 구분 짓는 것에 익숙하고, '노키즈존'과 같이 공간에서 마저 분리하고 싶어 하는 요즈음의 못난 사회 분위기를 떠올리니, 이곳은 참 드물고도 소중한 공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인터뷰를 통해 개똥이네책놀이터는 아이를 위한 공간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마을의 어른들을 위한 커뮤니티 거점의 역할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이런 장소가 필요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배려 속에서 자라왔다. 어린이가 호기심을 가지는 것, 뛰어노는 것은 발달 과정 상 자연스러운 일이며 반드시 누려야 하는 권리이다. 그리고 어른은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조금씩 배려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첫번째 답사를 통해 책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활동과 배려에 대해 책방지기(운영자)의 시선에서 대략적으로 알아보았다. 두번째 방문에서는 책방의 주이용자인 아이와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