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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근 Mar 29. 2022

목련

잊고 있다 마주친 아름다움

살짝 남아 있던 추위도 이젠 다 가고, 이제 한 해가 바뀌었다는 느낌이 피부까지 와닿는 봄입니다. 마음이 들떠서인지 하늘도 점점 푸르러지고, 겨우내 가지만 남아 있던 가로수에서도 조금씩 새 봉오리가 움트기 시작합니다.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벚꽃이 아닐까요. 푸르른 하늘에 분홍빛이 감도는 흐드러진 벚꽃들이 수 놓이면 보는 사람 마음이 어찌나 설레는지. 해마다 벚꽃이 만개할 때면 사랑하는 연인과 벚꽃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고 봄노래들의 가사는 모두 벚꽃을 노래하는 걸 보면 분명 벚꽃은 우리의 마음속에 봄처럼 연분홍빛 설렘을 불어넣어 주나 봅니다.


점점 피기 시작하는 벚꽃


모든 사람이 아직은 앙상한 나무를 보면서 그 간질간질하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를 기대하고 있을 때, 벚꽃보다 한 발짝 앞서 그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이 있으니 바로 목련입니다. 눈이 내리는 겨울부터 피기 시작하는 동백꽃과 길가의 그리 높지 않은 곳에 노란 나비가 앉은 듯한 개나리 등 아름다운 봄꽃은 얼마든지 있지만, 저에게 가장 애틋하고 진한 여운을 남기는 꽃은 목련이고, 그중에서도 새하얀 백목련이 가장 생각납니다. 벚꽃나무에 꽃봉오리가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하여 벚나무 가지가 수줍은 자홍빛으로 물들고 있을 때쯤 피어나는 목련은 벚꽃 생각을 잠깐 잊게 만들 만큼 아름답습니다.


하이얀 꽃의 모습이 마치 연꽃과도 같다 하여 지어진 목련은 참 한결같습니다. 벚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 커서인지 목련에 대한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다가도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순백의 목련은 어찌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한결같은 나무는 목련뿐만이 아님에도 제 기억이 희미해지든, 다른 나무를 기다리고 있든 매년 눈앞에 나타나 몽실몽실 인사를 건네는 목련이 특히 한결같다고 느껴집니다. 저희가 자신을 생각하지 못하고 벚꽃을 생각하는 걸 보면 서운할 법도 한데, 마주치면 반가워할 것을 알기 때문인지 흰 아기새 같은 꽃봉오리를 같은 시기에 꽃 피우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여러 송이가 모여서 피어 하늘을 촘촘하게 수놓는 벚꽃과는 다르게 가지 끝마다 한 송이씩 피어 한 손을 포근하게 채울 듯한 목련은 그 모양새도 참 수더분하니 매력적입니다. 부드럽고 폭신해 보이는 하이얀 꽃잎은 빨리 떨어지지만, 바닥에 포근하게 쌓여 앞으로 올라올 생명들의 요람이 됩니다. 벚꽃처럼 비가 내리듯 수많은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진 않지만, 갓 떨어진 꽃잎을 주워 보면 부드러우니 은은하게 달콤한 향이 퍼집니다. 길 양 옆을 가득 채워도 향은 희미한 벚꽃과는 다르게, 앙상한 다른 나무들 사이 외로이 피어 있어도 근처에 가면 잔잔하게 코를 간지럽히는 향은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더욱 굳건해 보이게 합니다.


길 가다 마주친 목련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목련이 가득 핀 나무를 마주치기 전까지 그 하얀 꽃을 잊고 있었습니다. 볼 때마다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필 철이 되니 잊고 있던 게 부끄러우면서도 미안해서 이젠 잊지 않고자 적어 둡니다. 제가 잊어버렸음에도 한결같이 벚꽃 봉오리가 보이기 시작할 때쯤 활짝 피어 은은한 봄내음을 선사합니다. 지금은 대부분 지고 벚꽃이 피어 있지만 우리가 디디고 벚꽃잎도 떨어질 땅을 포근하게 덮어 준 목련에게 따스한 감사함을 느끼며, 저도 모자라지만 목련처럼 포근하고 따뜻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신 - 백목련의 꽃말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내년엔 목련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혹시 잊으셨다면, 당신도 목련을 기억하고 있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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