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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사람 Feb 20. 2024

사기열전-8.상군열전

장서의 효용 - 사기열전 가볍게 읽기

상군은 기원전 361년, 진나라에서 법가 확립한 재상이다.  

지도출처 : 목포시민신문, 2016.3.23


상군(공손앙, 위앙)은 위나라 사람이나 진나라에 등용되어 법가를 실천하고 변법을 만듦. 덕치보다는 법치로 부국강병을 우선시하고 진나라 효공의 재상으로서 이후 통일 진나라의 기초를 다진것으로 평가된다. 법을 세우고 엄격히 적용하고자 했는데 이과정에서 원한도 생기고 결국 이런 각박한 성품으로 인해 진나라 효공 죽음 이후 태자에게 멸족당했다.


공손앙이 젊은 시절, 처음 위나라 혜왕이 인재를 찾다가 공손앙을 추천 받고도 머뭇거리자 추천한 공숙좌가 이렇게 말함. “왕께서 공손앙을 등용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죽여 국경을 넘지못하게 하십시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혜왕은 이말도 듣지않아 결국 공손앙은 후에 진나라 효공의 신하로 들어가고 나중엔 위나라를 치게된다.


공손앙 상군 왈, “진나라와 위나라의 관계는 사람의 배 속에 질병이 난것과 같아 반드시 합쳐서 치유해야 합니다.” 결국 상군이 군대를 지휘하며 모략을 써 위나라를 치고 위 수도를 동쪽으로 물러나게 함. 그러자 위나라 혜왕이 후회


교훈 1.등용하지 않려면 죽여라..라는 말은 그만큼 공손앙의 영민함이 탁월했음을 의미. 한편으로는 뛰어난 사람이 있을때 내편으로 만들지 못할것 같으면 차라리 죽여라.

2.법가, 새로운 제도 혁신의 어려움. 법치와 덕치를 어찌 조화롭게 할 수 있나? 한 국가에서 혹은 사회에서 기존의 법을 지킬 것이냐 새로운 법으로 개혁할 것이냐 논쟁은 생각할 만하다.

3.법치를 너무 강하게 해 진나라 왕의 아들도 코를 잘리게 하고 이것이 결국 원한으로 작용. 그러나 결국 멸족하게 되었다하여 상군 공손앙의 인생이 실패한거였나? 사마천도 공손앙을 각박한 사람이라며 평가를 박하게 하긴하지만, 진나라 역사 측면에서는 큰 기여를 한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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