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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사람 Apr 13. 2024

시험과 인생 - 인생은 단권화

어차피 해야할 시험준비가 의미있는 시간이 되려면

인생은 단권화


가끔 노량진 학원가를 지나갈 때면 심심챦게 단권화 특강..단권화 전략 같은 말을 본다. 단권화라는 용어는 고시학원이나 취직학원 같은데서 숱하게 듣던 말이라, 오히려 그 의미가 시험준비용 같이 퇴색되버린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보니 시험공부나 취직준비나 회사생활이나 개인사나 결국 인생은 단권화가 핵심인거 같다.


살아가면서는 널부러져 있던 관심사를 점차 줄여가고 좁혀가면서 집중시켜야한다. 공부에서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료, 주장, 책내용들을 모아가며 분류하고 정리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에서도 처음 업무를 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때 처음엔 천변숲 훑기처럼 전방위적으로 관련 자료와 현황을 긁어모아야한다. 그런 다음부터는 조금씩 가지를 치고 몇개의 큰 줄기에 잔가지들을 붙여넣으면서 줄여나가야한다. 개인사라고 크게 다를것 같진 않다. 결국 인생은 여러 권의 책을 하나의 책으로 모아 정리해가는 과정, 즉 단권화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빨리 하느냐에 달려있는것 같다.   


고시준비때 단권화 경험, 언제적 얘기인고...


내 단권화의 습관은 고시준비할 때 길러졌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원 공부할때도 단권화학습과정이 컸지만, 고시공부할때는 워낙 오랫동안 집중해서 여러과목을 공부해야 하기에 단권화에 더 집중하게 된 것 같다.


단권화의 핵심은 category 분류, delete 버리기, think & judge 판단의 과정이다.


책 10권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주장들을 유사, 차이, 핵심 등 분류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액기스만 남긴후 버려야한다. 공부하는 내내 10권을 갖고다닐 순 없다. 그러니 핵심은 버리기에 있다. 잘 버리려면 핵심을 추리고 나머지를 버려야한다. 핵심을 추리면서 이 내용을 기존 파일에 넣으려면 어느 부분, 어느 카테고리 속에 들어가야 할지 판단해야한다. 그래서 분류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결국 분류와 버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매번 핵심이 뭔지, 그리고 버려야 할 기타는 뭔지 판단하게 된다. 모으는 것은 주는대로 받으면 그만이지만, 버리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보지 않으면 하기 어렵다.   


경제학, 정치학 등 과목별로, 혹은 주제별로 매번 단권화의 과정을 반복한다. 읽는 책이 많아지고 사회적 이슈나 판례, 법적 쟁점이 새로 나와도 기존의 분류체계에 따라 판단하고 정리하면 된다. 대분류, 소분류를 세워놓고 늘어놓을 것이냐, 대분류 속에 집어넣을 것이냐 고민해야한다.


막판 예상문제만 100개 vs. 체계분류와 단권화


결국 어떤 시험이든 마지막 한달, 한주, 하루 전날 최종 예상문제, 최종 점검 리스트를 몇개로 압축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그런데 이 최종 리스트가 과목별 100개나 된다면 그 시험은 보나마나다. 예상문제가 100개라는 것은 이 문제, 저 문제 나올만한 건 다 넣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뭐가 나올지 몰라 아무것도 버릴 수 없으니 다 모아놓은 것이다. 심지어 그 리스트들을 보고있자면, 제목만 바뀌었지 대동소이한 질문들이 많다. 이런것도 구분 못해서 완전히 다른 문제로 본다면, 시험장에서 문제를 약간만 비틀어도 당황할 것이다. 아무것도 버릴수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건진다.


반면, 평소 주제별 체계분류와 단권화를 습관화해 놓으면, 마지막에는 사실 예상문제가 필요 없다. 단권화한 하나의 체계가 한 장에 그림처럼 그려져 있을 것이다. 외람되지만, 나의 경험상 나는 문제 하나하나를 각개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목이나 주제, 학문을 하나의 구조와 체계로 보고자 하였다. 하나의 구조 안에서 본 줄기가 있고, 잔가지, 즉 아류가 생긴다. 개별 잔가지별로 역사속 사건도 있고, 전쟁도 있었고, 대공황도 있다. 각 가지별로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 있고, 적용되지 않았던 이론도 있는 것이다. 예상문제를 볼 것이 아니라 그 과목과 주제의 전체 구조와 체계를 정리하고 나면, 무슨 문제가 나오든 다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지 시험을 준비하려고, 취직을 하려고,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려고 한건데, 지나고보니 세상에 대한 생각과 역사를 꿰뚫는 체계를 정리하게 된것 같다. 그 생각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생각이든, 어떤 사건이든, 어떤 경우에든 내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스스로 구조화해두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 머릿속에 어떤 구조와 프레임을 정리해둬야 어떤 사안이 닥치든 1차적으로 판단을 내릴수가 있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라.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 생각만 하고, 묵혀두는 것은 제대로 된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판단은 외부에 나의 생각을 공표하는 것이고, 나라는 사람이 알려지는 것이다. 판단 이후, 일어날 일과 변화될 것들에 대해서도 나는 내 판단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은 많이 하지만 판단내리기를 주저하고 섣불리 판단내리지 말라고 한다.


판단을 내려보지 않고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는 입장이 서지 않는다. 입장이 없다는 것은 의견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판단을 내리지 않고는 역으로 생각도 정리되지 않는다. 판단 내리기를 반복하고 실행하고 시행착오를 거쳐온 사람들은 안다. 판단을 내려보지 않고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는 입장이 서지 않는다. 입장이 없다는 것은 의견이 없는 것이다. 흔히 시간순서상 생각이 정리되어야 판단을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생각 -> 의견 -> 판단) 그러나 사실은 외형상 판단을 내린다고 먼저 결심을 해야 내안의 생각도 정리된다. (판단 <- 의견 <- 생각) 순간순간 판단을 내려보는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시험을 위한 공부 말고, 인생을 위한 시험


우리는 매일 시험에 든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취직시험, 면접준비, 인터뷰준비 등에 고시원에서, 노량진에서, 대치동에서 날밤을 새고있는가. 이 지긋지긋한 시험만 끝나면.. 하는 생각으로 매일을 버틸 것이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서 오늘 어느 자리에서 무얼 준비하건 간에 인생을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시험에 임해보자. 시험을 준비하는게 아니라, 살아가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 주제를 버릴까 말까? 어디에 분류해야하나? 이 카테고리에 넣으면 기존 다른 내용은 버려야하나? 버렸다가 나중에 기억 못하면 어떡하지? 나의 경우 하루 10시간 공부한다고 할 때, 순수한 공부나 관련 자료 찾고 보강하는 게 8시간이면 나머지 2시간은 보통 단권화의 과정이다. 자르고 붙이고, 다시 정리하고, 포스트잇에 붙였다가 뗐다가를 반복한다. 새로 알게된 정보를 넣고 빼는 과정에서 사건이나 이론도 다시 찾고 용어나 개념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건지 확인해야한다.  


돌이켜보니 내가 시험공부할 때 했던 단권화 과정이 사실은 매일 판단하기의 훈련을 한 셈이다. 시험이나, 일이나,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내 판단이 서는게 얼마나 어렵고 중한 일인지 이젠 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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