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사, 박사 논문 쓰면서 날밤 새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이나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논문 쓰기는 정말 어렵다. 아니 대학생들에게도 한두 장짜리 리포트 쓰기는 결코 쉽지 않다. 쓰고 싶은 것이 많아도 문제, 없어도 문제이다. 쓰고 싶은 게 있어도 실제로 글로 쓰기란 얼마나 어렵던가. 머릿속에선 노벨문학상 감으로 그랜드 리포트가 펼쳐지는데, 막상 노트북을 열면 이모티콘 몇 개만 날아다니지 않던가.
“The best dissertation is one that is done.
최고의 논문은 다 쓴 논문이다.”
이 말은 어느 미국 교수가 박사과정의 학생들에게 논문 쓰는 법이라고 하며 쓴 글의 첫 줄에 있었다. 아무리 좋은 구상과 주장과 논문이어도 일단 끝까지 쓰라는 말이다.
일단 끝까지 써라.
지도교수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때쯤 되면 통과한다.
“박사논문은 특정한 전문분야에 대해 깊이 쓰는 것이므로 내가 제일 잘 안다. 따라서 지도교수는 내 논문주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데 지도교수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때쯤 되면 통과한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이지? 했다.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내가 왜 지도교수한테 이걸 설명하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학문세계의 절차이고 필요한 과정이다.
사실 지도교수나 기존 선배들, 기존 학자들은 이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으나, 일반적인 학문체계, 논리구성, 논박법, 증거구성, 전개, 통계, 방법론, 문체 등 일반적인 논문 쓰기 과정이나 학문체계를 잘 안다. 기존 교수님들은 이런 과정과 논문지도활동을 오래 해오면서 학생들이 저지르는 흔한 오류, 구성상 문제, 부족한 점, 보완할 점 등을 숱하게 보아왔다. 따라서 이런 경험을 토대로 학생들에게 일반적인 조언과 구체적인 보완사항을 지도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 분야에선 제일 잘 아니 굳이 교수의 의견을 들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큰 패착의 배경이 된다.
그러다 보면 내용적 측면에서도 정말로 내 지도교수가 나의 주제에 대해 알게 될 때쯤 논문도 통과된다. 사실 형식이나 절차 외에 논문의 내용도 해당 학생이 제일 잘 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잘 아니 적어도 내용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교수의 의견을 들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큰 패착의 배경이 된다.
잘 모르는 보통사람들의 리뷰가 중요하다.
학생은 지도교수가 나의 논문주제와 나의 주장,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때까지 설명하고, 의견교환 하고 묻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실은 그다지 상관없는 사람들의 리뷰가 정말 중요하다. 즉 내 전문분야를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의 글이 잘 읽혀야 한다.
결국 박사학위는 학생 본인이 쓰지만 마지막에 논문발표, 즉 defense를 거쳐 통과하게 된다. 디펜스를 잘하면서 보완하고 최종적으로 디펜스를 통과하면 학위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디펜스 때 나 혼자 말해서는 힘이 없다. 어차피 내 주장이니 내가 아무리 주장한다 한들 심사위원으로 온 다른 교수들이 그건 네 주장이고... 하면서 반박하면 대응하기 쉽지 않다.
식은땀이 흐르고 모두가 나를 공격하고 내편은 하나도 없어 보일 때, 나의 지도교수가 등장한다. 그가 혹은 다른 교수가 이미 내 논문의 내용을 숙지하고 있으면 나의 주장을 거들어주기도 하고, 보강 설명을 해줄 수도 있다. 어떨 때는 학생 본인이 당황하여 충분히 말 못 하는 게 답답하여 지도교수가 끼어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지도교수도 이미 이 내용을 충분히 알고 내 주장에 동의하면서 자기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의 입에서 내 말이 나오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상사의 입에서 내 프로젝트가 나오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나 역시 이 경험을 하고 나니 예전에 들었던 그 말이 절절이 다가왔다. 내 주장을 지도교수가 알 때쯤 통과한다. 그리고 이 말은 이후 사회생활, 회사생활에서 절절이 다가왔고 커다란 교훈이 되었다.
회사에서도 내가 주장하는 바나, 추진하려는 일이 있으면, 관련 자료를 보강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상사에게 보고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상사의 입에서 내 주장이 나오면 그때부터 이 일은 나를 벗어나 상사의 프로젝트가 되게 된다.
상사의 입에서 나왔다는 말은 상사가 이 프로젝트를 충분히 이해했고, 설득력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으니 상사도 설득이 된 것이다. 심지어 상사가 뛰고 상사의 입에서 내 주장이 나오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이제 그 일은 상사의 일, 회사의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