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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Nov 01. 2023

<추상화, 형상을 지우다>
책이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의 시작점이 궁금했다. 맑은 날, 비 오는 날, 날씨에 따라 변하는 감정은 왜 그런 것인지 부질없이 물었던 사춘기를 보내며 고전에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디에서 구입하셨는지 문학전집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전집을 사들이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외판사원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성품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지독히 내향적이었던 나는 이 책과 함께 외롭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파리 VIII대학에서 만난 Elodie Vital 교수는 그런 나에게 추상화 공부를 추천했다. 칸딘스키 연구를 추천한 것도 물론 비탈 교수였다. 이후 나를 맞이한 건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로 수두룩한 어려움이었다. 이해되지 않은 채 리포트를 쓰고, 면담을 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가운데, 그야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내 영토가 생기기 시작했다. 책도 비싸지만 복사비도 만만치 않아 꼭 필요한 것 외에 가질 수 없었던 나는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무궁무진한 자료가 있는 곳, 언제든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까지 구비되어 있는 도서관이 무척 고맙고 좋았다. 

이 시절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훗날 나는 이때 사지 못한 책을 사기 위해 파리 여행을 두 번 했다. 아마 마음속에 당시의 결핍이 멍울로 맺혔었나 보다. 


추상화의 매력은 성찰에 있다. 마음먹고 자신에 관하여 뚫어지게 관찰하거나 되새김질한다고 스스로를 알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날 줄 알아야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을 추상화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단박에 생각의 회로를 타고 명료한 답이 툭 튀어나오는 것에 익숙한 정서는 추상화와 멀다. 추상화는 느린 그림이다. 추상화는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어떤 한 가지에 매몰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일깨우게 한다. 


텔레비전의 상담 프로는 대체로 인터넷 검색어 상위 그룹에 속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확인시킨다. 물론 타인의 사연은 흥미로운 볼거리이다. 구경꾼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타인이 곧 내가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나는 내 삶을 구경꾼처럼 바라만 볼 수 없다. 이 사실은 비극일까? 적어도 녹록지 않은 현실을 헤쳐나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비극이다. 처세술이나 부자가 되는 방법이 도서 순위의 상단을 차지하는 건 현실의 절박함이다. 농경사회의 공동체 정신은 바랄 수 없더라도,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공동체 의식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의 척박함이다. 


기후 변화의 시대는 자연의 균형을 새삼스럽게 논의한다. 이 와중에 인간은 마치 자연의 보호자가 된 것 마냥 착각하며 웅변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연은 원래 있는 그대로 제자리에 있을 뿐이다. 순환을 거듭하며 변화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자연의 얼굴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에게는 허용된 시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균형을 중심으로 거듭나지만, 인간은 균형이 아니라 감정으로 거듭난다. 배려, 평화, 사랑 등 긍정의 감정이 인간을 정화시키며 발전시킨다. 예수는 벌써 이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예수는 사람들이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당부했다. 그러나 예수의 유언은 표어로 남았고, 한 편에서는 누군가의 생업이 되었다.  


'추상화'라는 과제를 인지하고 여기에 투신한 초기 추상화가들의 노력은 혁명가 수준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끌었을까? 왜 형상을 지워야만 했을까? 초기 추상화가들의 생각과 고민을 따라가면 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를 흔든다. 거창한 시대정신을 운운하지 않아도, 나는 나의 삶 속에서 때로는 혁명가로, 때로는 음유시인으로, 또 때로는 관찰자가 되어 주어진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추상화에는 망각했던 회로를 재건시키는 힘이 있다. 


문학 작품은 작품 자체로 소개된다. 작품을 앞서 문학사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미술은 다르다. 작품으로 소개되기보다 흔히 미술사로 이야기한다. 나는 이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회화 작품은  '삶'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놓인 화가들의 생각과 투지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읽듯 그림도 보이는 대로 보면 된다. 우리 모두는 제각기 독특한 감정과 시선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느낌과 판단을 가져오는 각자의 여과지이다. 이처럼 다양한 시선에 응답하는 게 회화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그림 감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구체적인 시선과 관점이다. 


역사에 획을 그은 화가의 메시지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초기 추상화가들이 사물을 묘사하며 설명하기를 그만둔 이유는 인식, 집착, 습관 등 한계를 지닌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거나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칸딘스키는 '내적 필연성'이라는 이론으로 세상만물에 깃든 독자성을 논했고, 몬드리안은 '자연의 리얼리티와 추상적 리얼리티'를 통하여 평형을 이야기했다.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를 제창하며 완전한 세계를 향하여 질주했고, 클레는 음악과 회화 요소의 분석으로 통합과 조화로움을 펼쳤다. 


먼저 삶을 살아 낸 이들의 흔적은 절절하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나침판과 같아 종종 내 인식의 범주와 나를 옭아매는 것에 대하여 돌아보게 한다. 행여 무언가에 사육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익숙함이라는 유형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추상화는 여운을 남기며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생각을 정리하여 '추상화, 형상을 지우다'의 출판 원고에 마침표를 찍었다. 세상에 내보내도 되려나 여러 생각이 교차되는 가운데 '내보내기' 항목에 클릭을 눌렀다. 추상화를 먼 나라 이야기처럼 여기는 이들의 요청이 있어서 용기를 냈다. 많은 이들이 추상화를 통하여 공감과 위로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한 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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