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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Apr 03. 2024

시선의 선물 - 감각

세잔은 아내의 모습을 여러 점 그렸다. 비슷한 포즈로 구성된 거의 같아 보이는 그림, 세잔이 얻으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가 거듭해서 그린 건 부인의 모습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 이와 같은 반복에는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영역에서든 과거의 방식을 탈피한다는 건 그만한 실험정신과 수고와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화가는 그가 발견한 신대륙이 얼마나 휘황찬란한지 안내하고 공유함으로써 존재감을 확인하고, 자존감을 유지한다. 화가가 제시한 새로움이란 거부반응이 일어날 정도로 당혹스러운 것이지만, 그는 참신한 설득력으로 자신의 세계를 세상에 호소한다. 이것은 예술이라는 호칭이 흔하게 쓰이지만 진심 예술에 속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가늠하게 한다.   


세잔, 세잔 부인의 초상, 1890.


세잔은 누가 등장하고, 무슨 일이 있고, 어떤 상황이 전개되는 주제 중심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서술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그는 하나의 소재를 마르고 닳도록 살필 줄 알았고, 진지한 태도로 사물을 대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세잔이 멈춘 곳은 시선의 각도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환하는 감각의 세계였다. 자연관찰이 그에게 감각의 보물창고를 선사한 것이다.


세잔은 감각을 묘사하고 싶었다. 그는 인간 생활과 무관하게 대상 자체가 발산하는 감각이 있다고 믿었다. 시선에 따라 달리 보이는 대상, 변화무쌍한 감각이 빛처럼 생동하며 공기 중에 퍼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세잔은 시선의 각도에 따른 감각을 최대한 경험해 보고 싶었을 터이다. 따라서 그는 자연을 더 많이 관찰하기를 원했고, 그에게 대상은 감각의 매개체로 남았다형태와 색채의 변증법은 세잔이 풀어야 할 과업이었다.


세잔은 은밀히 묻는다. 과연 그림의 주체는 무엇인가? 그림을 완성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제기되자 면, 색채, 무게, 구도 등 회화요소 자체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극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로부터 세잔의 후배들은 세상을 면으로, 구도나 무게, 색채 등으로 판단하고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세계를 수립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세잔, 노란 의자에 앉아 있는 세잔 부인, 1888.


때때로 세잔의 그림은 거시적인 시점을 위한 하나의 구성체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관찰일기처럼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나가는 화면이 시대의 관심을 고스란히 떠안고 파노라마처럼 이어가기 때문이다. 세잔이 살았던 시대는 광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색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사진술이 본격화된 때이다. 당시 화가들은 평범한 시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색채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했다. 


과학의 발달이 신기술을 나열하며 신세계를 보여주지만 우리는 이것을 예술로 분류하지 않는다. 역사에 남은 화가들이 제아무리 새로운 세계를 선보였다고 해도 이들의 시선이 예술로써 빛날 수 있었던 건 인간 본질을 향한 꿋꿋한 의지 때문이다. 


세상은 증명할 수 있거나, 증명할 수 없는 복합체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세상을 단순한 물질로만 안다. 거창한 사회학이나 철학을 거론하지 않아도 사람이 물질일 수 없는 노릇인데, 세상은 자꾸만 사람을 물질로 보고 값을 매긴다. 1+1, 세일 품목은 마트에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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