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스카이 Mar 14. 2023

나의 Ex-스페인 시어머니 10

가장 빠르게 언어를 배우는 법

결혼이 늘 나쁜 것 만을 아니었어요.  그래도 뭔가 좋은 게 있으니 몇 년을 함께 살았겠죠.  그중에 젤 좋았던 건 아기가 태어났을 때로 기억합니다.  작고(ㅋ~ 출생 몸무게 3.8kg) 소중한 … 딸아이를 얻었습니다.  전 무남독녀 외동딸이라고 하지만 남동생이 어렸을 때 익사를 해서 어쩌다 외동이 된 거라 늘 붙어서 싸우던 동생이 그립고 혼자인 게 너무 외로웠습니다.  저만의 가족이 생기고 나서야 처음으로 외롭지 않다고 느꼈고, 많이 행복했습니다.  스페니쉬 남편도 외동에, 자랄 때 친척네 집에서 커서 외로움을 많이 탔었는데, 아기가 태어나니 예상보다 더 헌신적인 아빠가 되었답니다.  결혼 초에 갑자기 변한 남편 때문에 맘고생을 했지만,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속상했던 사소한(?) 일들은 거의 잊고 셋이서 알콩달콩 깨가 쏟아질 때쯤이었어요.  다들 말하길 행복은 순간이라고 하죠(moments of happiness)…  정말 두 달 남짓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스페인에서 그녀가 왔습니다. “  원래 카르멘(스페인 시어머니)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한국에 온다고 연락을 해 왔는데, 저희가 처음 석 달은 아기와 있고 싶다고 그 후에 언제든 오시라고 말씀드린 상태였어요.  하지만, 그녀는 비행기 티켓이 세일하길래 벌써 구매했으니 그렇게 알라고 하셨습니다.


그녀가 도착한 날 회사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가는데, 그녀와 인사도 하기 전에 주방 쪽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주방 모든 식기들이 바닥에 있었기 때문이죠.  전 ‘안녕하세요?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시죠?’라고 영어로 말했고, 남편이 스페인어로 통역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마자 그녀는 주방 정리가 제대로 안되어 있어서 정리하고 있었다고 하셨네요.  ㅎ~ 누가 그랬나요? 서양사람들은 개인을 존중하고 사생활 침범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고.  결혼한 아들 집에 와서 며느리도 집에 없는데 주방을 다 뒤집어 놓고 마치 도와주신 듯 얘기하시는 이 분….  바로 감이 왔습니다.  물론, 도착하기 이전부터 남편은 그녀의 강한 성격에 대해 누누이 말해왔었죠.  미리 예상 했듯이 그녀가 한국에 온 이후 전 단 하루도 맘 편하게 쉴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한시도 가만히 두시질 않으시더라고요.  


하루는 퇴근 후 집에 오니 갑자기 저의 핸드백 하나를 들고 나오시면서  ’original? no original? (이거 진짜야? 가짜야?)‘라고 강한 스페인 억양이 섞인 영어를 하시더라고요.  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서 ’ 진짜죠 ‘라고 대답했는데 그러자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남편을 찾았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남편한테 ’니 와이프 핸드백이 다 진짜라더라.  저게 다 얼만 줄 아니?‘라며 들들 볶으셨다고 합니다. 네, 저도 어릴 때 명품백 좋아했었죠.  그래서 해외로 나갈 때 면세점 세일 때 사서 여러 개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회사 간 사이 제 방을 뒤지신 스페니쉬 시엄니께서 가방 가격이 궁금하셔서 이태원에 나가서 안 되는 영어로 가짜, 진짜 핸드백 가격을 다 물어보시고 오셨답니다.  저희가 그때 한남동에 살고 있어서 이태원이 가깝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꽤나 귀찮은 일이었을 텐데 귀찮음 보다는 궁금한 걸 못 참으신 거죠.  


하지만, 이런 생각도 못했던 시집살이도 나름 장점이 있었는데, 저의 스페인어 실력이 두 달 만에 일취월장(日就月將)했다는 사실입니다.  태어나서 언어를 이렇게 빠르고 무섭게 배운 적이 없었는데 아무튼 겁을 줘서 혼내며 가르치는 (negative reinforcement) 방법도 나름 효과가 있다는 걸 직접 체험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녀가 pañal (빠냘: 기저귀)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전 처음에 뭔 소린지 몰랐다가 알아들었는데 그녀가 두 번째 ‘빠냘’이라고 했는데 제가 못 알아들으면 엄청 짜증을 내셨기 때문에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저의 어휘력은 빠르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스페인어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저의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엔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함부로 막 뱉어내는지 몰랐어서 그냥 크게 말씀하시는 스타일이신가 보다 했는데, 알아듣게 되니 말하실 때마다 맘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제가 사 온 것마다 일일이 얼마냐고 물어보시고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너 바보냐? 뭐 이렇게 기억하는 게 없어?‘라며 괴롭혔고 집을 뒤지고, 가구 위치를 바꾸고, 가구를 보호한다며 가구마다 문구점에서 사 오신 투명 플라스틱을 씌우셨습니다…   뭐 다 말해 뭐 하겠어요.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전 제 인생에서 제일 빠르게 스페인어를 배웠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나서부터 회사에서 퇴근하지 않고 계속 야근한다며 집을 회피했습니다.  아무리 귀여운 아기가 날 기다려도… 전 집이 무서워서 마치 가출한 청소년들처럼 하염없이 집 밖을 배회했습니다.


사진 속 책의 언어는 포르투갈어 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Ex-스페인 시어머니 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