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의 행복을 바라지 않아
비밀사내연애 후 사원들의 급여와 보너스 금액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스페니쉬 CFO 부사장과 결혼을 하고 나니 갑자기 회사생활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사실 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저의 희망사항이었죠. 일부 동료들은 제가 회사를 그만두길 기대한 것도 같았지만 전 일하는 게 좋았고, 우린 1년 후에 프랑스 본사로 발령이 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게 좀 불편하더라도 참고 견뎌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거기다 임신 휴가도 있으니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과 달리, 원하든 원치 안 든 간에 전 사내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되어버렸죠.
신혼여행을 다녀왔더니 회사엔 저랑 여전히 대화하는 동료들과 저를 갑자기 무시하는 동료들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장과 부사장의 비서 2명은 대놓고 저를 신분상승한 ‘신데렐라’ 취급을 하더군요. 그리고, 누군가 사무실 가운데 위치한 공용 프린터기에 남겨둔 인사자료를 보고, 부사장의 급여가 일반사원의 4-5배가 넘는다면서, 제가 ‘지난달에 카드를 너무 많이 써서 이번 달엔 좀 아껴 써야겠네’라는 말을 했더니, 바로 제 뒤에서 ’ 재수 없다 ‘고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험담하는 사람들과 그걸 고맙게도(?) 제비처럼 날라다 전해주는 지나치게 친절한 다른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회사에서 종종 사극을 찍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는데, 그 ’ 사극‘ 속에서 전 감히 ’ 중전마마‘ 역할을 맡고 있었죠. 누구는 욕하고, 또 다른 누구는 본인이 원하는 정보를 얻거나, 싫어하는 동료를 망치기 위해서 전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일을 제게 열심히 고자질하곤 했습니다. 자기가 말한 게 부사장 귀에 들어가길 은근슬쩍 바라면서 말이죠. 사실 이때 힘들었던 회사생활이 제가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답니다. 사람들은 남의 사생활에 너무 관심이 많았고, 앞에서 또 뒤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며 끊임없이 떠들었습니다. ‘이대리, 회계팀장이 보너스를 엄청 받았대. 결혼하자마자 큰 보너스라니 그 여자 부사장이랑 무슨 사이였던 거 아냐?’라고 제게 대놓고 마치 농담처럼 묻던 상사도 있었고, 대각선에 위치해 있던 부사장 사무실 문이 닫히면 ‘여자 친구랑 전화하나? 왜 문을 닫지?‘라는 아저씨 조크를 저에게 날리며 웃던 상사도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남이 승진해서 잘되거나, 행복해지거나, 아님 돈을 많이 버는 걸 그렇게 시기하는 줄 몰랐습니다. 특히 저한테 보너스를 받은 팀이나 동료에 대한 욕을 어찌나 해대던지… 견디기가 힘들었네요. 저는 저를 갑자기 나 몰라라 하는 동료들 때문에도 당황했지만, 친하게 굴며 이 얘기 저 얘기 전하는 동료 때문에 더 맘고생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남 앞에서 싫은 소리나 거절을 못하는 성격의 저는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다 ‘라는 말도 못 하고 그저 그렇게 맘이 썩어 들어가는 걸 방관하며 회사생활을 견뎌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속상사와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수출팀에서 일하면서 회계팀에 매달 넘겨줘야 하는 매출 관련 자료가 있었는데, 이것과 관련해서 일개 수출팀 대리인 제가 감히 회계팀 팀장님께 ‘보고서’에 관련된 질문을 직접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회의실에 불려 갔고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전 펑펑 울면서 계속 대꾸했습니다… 그는 제게 왜 우냐고 소리쳤고, 전 ’ 차장님이 그렇게 고함을 치시니까 우는 거죠!‘라고 대들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실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팀장은 다른 회사사람들에게 제가 부사장 마누라 건 뭐 건 자기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고 큰소리를 질러가며 오버했던 걸로 간주됩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때의 억울했던 감정이 그대로 다시 밀려오네요. 아무튼 결혼 후 저의 회사생활은 너무 힘들어졌고 잘해주거나 무시하거나 상관없이 동료들이 다 싫어졌습니다. 전 변한 게 없는데, 그들은 마치 내 직위가 결혼으로 인해 변한 것처럼 저를 대했고, 결혼 후에 새삼스레 알려주는 부사장의 전여자 친구들에 대한 상세한 얘기를 들으며… ’이 사람들 진짜 내가 행복한 꼴을 못 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