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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스카이 Oct 20. 2023

나의 Ex-스페인 시어머니 13

난 살인자보다… 이혼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사실 그날은…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날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직접 경험했습니다.  제 원래 성격은 느긋하고 걱정할 일도 걱정을 안 하는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스타일이라 오히려 엄마는 늘 그런 저의 성격을 못마땅해하셨어요.  그리고 화를 잘 못 내는 저의 성격은 아이 아빠에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죠.  그는 늘 불평했어요… 밖에서 자기가 화내는데 같이 화내주지 않으면, 자기와 같은 편이 아닌 것 같다고요.  그땐 정말 별 걸 다 가지고 불평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게도 ‘피가 끓는다’는 말을 직접 느끼게 된 날이 찾아왔습니다.  원래 순한 사람이 확 돌면 더 무서운 거 아시죠?  바로 그 순간이 제게 찾아왔더랬어요.


저흰 사실 파리로 이사 와서 서로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었어요. 프랑스 회사에서 일하며 한국에 주재원으로 있던 아이 아빠는 결혼과 동시에 회사에서 복지등급을 올려주어 72평의 새 빌라로 이사했습니다.  물론, 한국 집은 넓고 편했죠.  하지만, 파리로 발령이 나서 오면서 화려했던 주재원 생활은 끝을 맺고 그냥 일반 회사원이 되었습니다.  그건 더 이상 회사에서 집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우린 맘에 드는 아파트를 살 때까지 렌트비를 아끼려고 작은 아파트를 빌렸는데, 넓고 모든 게 새 거였던 옛 집을 생각하면 이 집은 너무 좁게 느껴졌어요.  가구의 절반을 스페인으로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집엔 자리가 모자라 가구 위에 다른 가구를 올려놔야 했습니다.  거기다 아이 아빠의 일도 바빴고 저흰 둘 다 불어를 거의 못해서 이래저래 불편한 게 많았어요.  엎친데 덮친다고, 전 장염 비슷한 병까지 걸려 열흘 동안 5kg가 빠질 정도로 아프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해외이주로 인한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가던 어느 날…  작지만 선명하게 똑딱거리던 그 시한폭탄이 터졌습니다.


그날은 날씨가 꽤 괜찮았던 주말이었던 것 같네요.  프랑스의 많은 아파트나 집들이 그렇듯이 우리 집도 바닥이 ‘빠껫 (parquet)’이라 불리는 나무로 된 바닥이었는데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거슬린다는 얘기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떻게 대화가 진행되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제가 어느 부분에서 미치게 화가 났던 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날도 별 이유 없이 기분이 더러웠던 남편은 절 슬슬 긁고 있었는데 전 이미 전조를 느끼고 가급적 다투는 걸 피하고 있었어요.  근데 그 인간이 치사하게 우리 부모님 얘길 꺼내더라고요.  사실 너네 부모님이 해 준 게 뭐  있냐며… 제 부모님 욕을 시작하더라고요.  그는 웬만해선 화를 안내는 제가 부모님 얘기엔 반응하는… 바로 그게 저의 ’ 아킬레스건’이라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제 부모님은 결혼 전에 남편이 외국인이라 반대하셨던 것을 빼곤 그 후론 뭐든 끝없이 주시기만 했어요.  감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늘 주기만 하신 분들을 이용해서 시비를 거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전에 우연히 들은 얘기가 있는데, 그건 국제결혼을 한 부부들이 진짜 화나서 싸울 때 각자의 언어로 욕을 한다는 얘기였어요.  전 그 얘길 듣고 ‘과연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황당한 상황을 당해보니 그게 사실이더라고요.  전 저도 모르게 한국어로 ‘ㅆ’이 들어가는 욕을 내뱉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이 미친 XX야!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냐?!!‘를 시작으로 제가 아는 욕이란 욕은 마구 해댔습니다.  물론, 다툼의 이유가 제 부모님 욕만 있는 건 아니었죠.  어느 순간부터 그는 독기 서린 얼굴로 입으로 뱉을 수 있는 악담이란 악담은 다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한 그날 그 모습은 제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사람에게 악귀가 씌면 저렇게 변할까 싶은 얼굴이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통스럽게 제 심장에 비수가 되어 꽂혔고, 전 오직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저 입을 아니 주둥이를 막을 수 있을까?’하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거실에 놓여있던 다리미가 눈에 들어왔어요.  ‘아, 저거면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저 다리미로 저 인간의 입을 내리치면 되겠다… 그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전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다리미를 집으려 달려가면서 그 다리미로 온 힘을 다해 그의 머리를 내려치는 상상을 했습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치솟고,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지면서 그 간절함만이 제 온몸을 감쌌습니다…


물론, 제가 감옥에 안 간걸로 봐선 다리미로 그를 내려치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는 걸 아실 거예요. 아무리 제 가 뭘 휘둘러도 그는 184cm에 꽤나 건장한 체격이었거든요.  그를 후드려 패고 머리통까지 날려버릴 생각이 있었던 저였지만, 결과는 그러느라 제 몸뚱이만 엄청 멍이 들었다는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때리려 한 제가 두드려 맞은 듯 보였어요.  그쯤 되니 그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그 사악한 주둥이를 닥쳐주었답니다.  ‘이 여자가 미쳤구나’하고 생각했을 듯싶네요.  어쨌든, 전 그날 ‘이러다가 사람들이 살인도 하는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요… 이러다 내가 살인을 저지를 만큼 순간 돌아버릴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 때는 너무 달콤했던, 너무 설레게 사랑했던 사람…. 내 아이의 아빠고, 든든한 남편이었던 그를, 난 잠깐이지만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어요.  바로 그때 결심했습니다.  ’ 이혼을 해야겠다…  살인자보다는 이혼녀로 살아야겠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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