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찾아온 작은 흔들림… 1
저는 프랑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새치기를 잘하며 새치기했다고 뭐라 하면 당당하게 대꾸하는 한마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싹수가 없는 나라거든요. 오죽하면 ‘신이 아름다운 프랑스를 만들고 다른 나라들과 공평하게 하기 위해 프랑스인들을 데려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아무튼 프랑스는 그렇게 별로였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니 ’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 싶었습니다. 전 1년에 42일이나 되는 휴가가 있었고, 또 아프면 2,3일 쉬는 건 기본에 야근을 하려면 인사과 팀장님과 저의 직속 상사에게 미리 허락을 받아야 했고, 제가 야근을 두 번 했더니 인사과에서 전화가 와서 팀장이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것 아니냐면서 불만 사항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사람들과의 신경전과 계속되는 야근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던 제게 이곳은 바로 천국 그 자체였습니다. 일을 특별히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제 날짜에 리포트만 제출해도 칭찬일색이었으니 정말 일 할 맛이 나는 곳이었죠. 그리고, 그곳이 좋은 이유엔 뭔가 굉장히 프렌치스러운 보스도 한몫을 했습니다.
프랑스에는 제가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인사 문화가 있는데, 아침에 출근해서 동료나 상사를 처음 만나면 ‘봉쥬르!‘라고 말하며 악수를 하면서 동시에 양볼에 키스를 합니다. 이게 한두 명이면 괜찮은데 만나는 사람마다 다 하려니 매일 출근 후 30분은 인사만 하다가 끝나는 것이었죠. 그래서 전 아침엔 커피도 안 마시고 화장실에 가는 것도 피하고 저와 동료 한 명이 같이 쓰는 작지만 아담한 사무실에 숨어서 이 아침인사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꼭꼭 숨어있어도 아침마다 찾아와 인사를 해주는 저보다 5살 연하의 프렌치 보스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두 명의 팀장을 위해서 일을 하면서 매출예산 시스템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었죠. 저의 직속상사는 쾌활하고 재미있는 사이먼이라는 이름의 영국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살짝 여성편력이 있어 보이는 하지만 회사 안에서 승진을 위해 제일 열심히 일하는 프렌치 보스였네요. 그는 살짝 마른 체격에 살짝 붉을 빛이 도는 갈색 곱슬머리를 가진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고 싶었는지 정성껏 다듬은 턱수염이 있는 전형적인 프랑스 남자였습니다. 그 문제의 프렌치 보스는 굉장히 친절했습니다. 아침에 인사를 할 때마다 아주 상큼한(?) 바디샴푸향이 진동했던 게 기억나는 걸 보니 아마도 전 그의 아침인사를 부담스러워하진 않았던 듯싶네요.
사실 제 얘긴 아직은 TV조선의 막장드라마가 아니어서, 회사를 다니는 2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냥 가끔 출장도 같이 가고 회식도 했었지만 보면 기분 좋은 사람(?) 딱 그 정도였죠. 그러던 어느 날 애 아빠가 ‘홍콩’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는 다시 아시아에서 주재원으로 일하고 싶어 했고, 너무나 좋은 조건과 직책이었기에 우리는 함께 기뻐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가까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덩달아 너무 좋았고요. 그래서 전 본의 아니게 꿈의 일자리를 버리고 떠나야 했는데, 프렌치 보스가 마지막으로 네덜란드의 공장에 출장을 가줘야겠다고 했습니다. 저희 회사는 유럽 내에 12개의 대규모 공장을 가지고 있었기에 출장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번 출장이 달랐던 건 프렌치 보스와 저… 단 둘이만 간다는 거였죠. 우린 업무성격상 늘 4,5명이 함께 출장을 다녔었던 터라 둘이만 간다는 건 굉장히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거기다 출발시간은 오후 2시…. 보통 유럽 내의 출장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공장에 가서 회의하고 일 보고 다음 날 종일 일하다 파리로 돌아오는 일정인데 오후 출발이라니 ’무슨 스케줄이 이럴까 ‘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정을 결정하는 건 제 소관이 아니었던 탓에 전 ’ 보스가 오전에 중요한 회의가 있나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출장 준비를 했습니다. 막상 출장 가서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니 거의 저녁시간이 다 되었고, 저희가 가야 할 공장은 차로 꽤 가야 하는 다른 도시에 있었는데, 갑자기 보스가 제게 ‘암스테르담’에 와 봤냐고 물었습니다. 전 비행기를 갈아타 본 적은 있어도 제대로 구경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가 지금 운전해서 공장이 있는 도시로 가서 저녁을 먹을지 아니면 암스테르담을 구경하고 늦게 갈지 결정하라고 하시네요. 흠… 제가 뭐라고 했을 것 같으세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