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스카이 Dec 07. 2022

나의 Ex-스페인 시어머니 4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새로 시작한 사내연애에 푹 빠져있던 어느 날, 우린 한남동에 있는 부사장 집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밤 12시가 다 된 시간에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목소리는 여자였고 “ Hey, Alonso (가명)!!! Please come out and buy us some drinks! (헤이, 알론소! 나와서 우리 술 좀 사줘!)”라고 이미 잔뜩 취한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소릴 지르는지 옆에 있는 제게도 다 들렸어요.  전 당연히 그들이 누구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그냥 이태원에서 술 마시다가 알게 된 여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한밤 중에 맘대로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는 아는 여자???’  저도 밤에 부담 없이 전화할 수 있는 남자 동창들이 있었지만, 그냥 아는 사람들이 오 밤 중에 나오라고 전화를 해대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물론, 저는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라 눈치가 빠른 그는 잽싸게 제 불편한 속 마음을 알아채고는… “Don’t worry! I’ll fix everything.     They are not important to me. (걱정 마! 내가 다 해결할게. 그들은 내게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뭘 했냐 하면요…  다음 날 바로 새 핸드폰 두대를 사서 전화번호 끝자리를 저와 맞춰서 제게 주었어요. “이젠 니 남자 동창들도 너한테 밤에 전화하지 말라고 해’라고 하면서.


연애 초기라 그랬겠지만, 제가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면 다 제게 맞춰주었어요. 드라마에나 나올 듯한 ‘네가 원한다면 뭐든지 다 해줄게.’라고 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더라고요.  하지만 그의 화려한(?) 과거를 감추기에는 전화번호만 바꾸는 걸로는 부족했죠. 저희는 회사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여의도는 피해서 주로 한남동, 이태원에서 데이트를 했었는데 하루는 하얏트 호텔에 있는 라이브 바에 가기로 했답니다.  그날의 기억은 정말 생생해요… 너무나 달달했던 저희 사이에 제대로 금이 가기 시작했거든요. 저희는 식사 후 기분 좋게 JJ바에 들어섰고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려고 앞쪽으로 갔어요.  그쪽에는 진하게 화장한 뭔가 묘한 분위기의 두 아줌마가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우릴 보자 손을 흔드는 거예요.  ‘알론소, 네가 여자를 만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사실이었네.  이 여자분인가?’라고 하면서 부사장한테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두 분들과 부사장 셋이 웃으며 얘기하는데 알론소(부사장)가 불편해하며 제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어요. 저는 속으로 ‘이 아줌마들은 뭐지?’하면서 혼란스러웠는데, 그와 동시에 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내 앞에서 백마 탄 왕자님처럼 굴던 그가 뭔가, 밤업소를 누비는, 되게 방탕한 사람 같다는 느낌에…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전 당연히 ‘저 사람들은 누구냐’며 물었죠.  그는 그들이 미국 장교들과 결혼한 남편 있는 여자들이라고 했어요.  담배 피우다가 알게 되었다나 뭐라나…  그의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결혼한 유부녀들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전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죠 ‘난 당신을 많이 좋아하지만, 우린 아닌 것 같아요…’라고.            






작가의 이전글 나의 Ex- 스페인 시어머니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