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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스카이 Dec 03. 2022

나의 Ex- 스페인 시어머니 3

부사장은 사랑꾼? 아님 사기꾼?!

제 경험으로는 대부분의 연애가 처음 3개월에서 6개월까지 ‘마약 기간* (세상이 온통 무지개 빛으로 보이고 상대방의 단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행복한 기간)’이었지만 이런 걸 다 떠나서 초기 사내연애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바쁘게 일하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가까이에서 같이 일하고 있다는 게 뭔가 든든하기도 하고, 끝나고 같이 맛있는 거 먹으며 데이트할 생각을 하니 ‘엔도르핀, 세로토닌, 도파민에 다이돌핀’까지 모든 행복 호르몬들이 뿜뿜하는 느낌도 들고 마냥 좋았습니다.


우린 둘 다 외동으로 자라서 외로움을 많이 타고 혼자 있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 탓에 출근해서 집에 갈 때까지 매일 쭉 붙어있는 연애스타일을 선호했어요.  심지어 집에 갈 때도 계속 통화를 했고 아파트 주차장이 보이면 그제야 전화를 끊고 자기 전에 또 메시지 하고… 뭔가 극기훈련 같은 연애를 했었네요.  그러다 보니 잠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우린 가끔 점심시간에 지하주차장에서 만나 차 안에서 20분쯤 에너지 충전을 위해 낮잠을 자기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혹시 JTBC에서 방영한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2021)’라는 드라마를 보셨나요? 저의 사내연애도 그 드라마처럼 아니 그보다 더 스릴 있고 재미있었어요.


하루는 누군가 제게 들고 가기에도 벅찬 큰 꽃바구니를 회사로 보내왔죠. 전 아직도 비서분이 그 바구니를 어렵게 들고 활짝 웃으며 제 쪽으로 걸어오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사실 제거라고 절대 생각을 안 해서 너무 놀랐어요.  살짝 자랑 같지만, 전 일주일 전쯤에 예전 썸남(?) 아니 잠깐 데이트했던 분께 꽃바구니를 받았었거든요. 그분께 너무 죄송한데 다른 내용은 기억이 안 나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고 쓰여있던 메모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분이 더 큰 꽃바구니를 또 보냈을 것 같지 않아서 당연히 제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머 이대리님, 너무 부러워요”라고 말하면서 비서분이 제 자리에 꽃을 올려놓았습니다.  이미 꽃이 배달되었을 때부터 동료들은 누구 건지 궁금해서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제 앞으로 오다니, 그 분위기 상상이 가시나요?  아무튼 꽃을 받고도 전 그 꽃이 부사장이 보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국말은 하나도 못 하고 영어도 스페인어 억양이 너무 강해서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들어했거든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꽃을 주문했겠어요?! 하지만 전 그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거죠.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회계팀 대리님께 부탁해서 이렇게 이유 없는 깜짝 이벤트를 벌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는 웃으면서 그저 예전 썸남보다 더 큰 꽃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쓸데없이 호연지기를 펼치는 폼이 딱 바람둥이 스타일이었는데 눈에 엄청 두꺼운 콩깍지가 씌운 전 그것조차도 귀엽다고 생각했었네요.  하지만, 모든 소설이나 영화엔 끝이 있는 법… 저희의 완벽한 세상에 금이 가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약 기간: 작가가 만들어 낸 말로 연애 초기에 사랑에 빠져 약에 취한 사람처럼 몽롱한 기분을 강조하고자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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